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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0 02:24
지난 여름날로 떠나는 여행 - 마지막
조회 수 2471 추천 수 0 댓글 0
대학교 1학년 시절의 여름방학은 일산의 고향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스카이 라운지 생맥주집에서 통기타 라이브 가수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냈던 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후덥지근한 여름날, 어느덧 어둠이 내리고 그나마 선선한 바람이 살짝 불기 시작하는 저녁이 되면 나는 통기타를 둘러메고 내가 일하는 업소로 향했다. 가게 문을 열고서 들어서면 기타를 멘 나를 향하는 손님들의 시선들, 가게 중앙에 조명까지 제대로 갖춘 정식 무대가 있었으니, 내가 기타를 메고 가게로 들어서면 맥주를 마시던 손님들이 ‘저 놈이 이 가게에서 일하는 가수로구나’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곤 했다. 이 시절에는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나를 보러 우리 가게에 여러 번 찾아와서 매상을 올려줬고, 내가 그렇게 아마추어 통기타 가수가 되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외삼촌(‘해바라기’의 리더 첫 사랑과 함께 보낸 대학 2학년의 여름방학도 기억난다. 비를 너무나 좋아하는 나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는 물난리가 날 만큼 폭우가 쏟아지던 날에도 나는 여자친구를 이끌고 영화를 보러 다니고 거리를 쏘다녔다. 롯데월드에 개장할 때 들어가서 폐장할 때까지 하루 종일 놀이기구를 타고 또 탔던 날도 기억난다. 요즘은 몇 시간만 걸어다녀도 쉽게 지치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니 그 시절에는 정말 체력이 좋았나보다. 그렇게 마냥 즐겁고,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실컷 놀았던 여름방학은 이후로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군 복무를 마치고, 미국에서 1년 간 지낸 뒤에 복학해서 맞이한 대학 3학년의 여름방학부터는 더 이상 ‘방학’이라는 단어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이나 해방감은 온데 간데 없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열심히 무언가를 해야 하는 시간이 바로 ‘방학’이었다. 급기야 대학 4학년 시절은 1학기만 마치고 2학기부터는 교수님의 허락을 받고 학교를 아예 다니지 않고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이미 영국으로 떠나오기로 작정을 했던 지라 그 준비자금을 마련해야 했고, 여름방학이 찾아와도 더 이상 ‘방학’이라는 것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친구들 역시 대부분 취업준비와 미래를 향한 불안감 속에서 예전처럼 여름방학이라고 술을 퍼마시며 놀 수 있는 심리적, 경제적 상태가 아니었다. 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탐구생활과 방학숙제만 마치면 되었던 그 어린 시절의 여름방학들이 얼마나 즐겁고 소중했는지를, 그리고 그렇게 마냥 놀고 쉴 수 있는 여름방학은 이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직장인이 되고 나서 여름은 더위를 싫어하는 나에게는 그저 빨리 지나기를 바라는 반갑지 않은 계절일 뿐,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정해진 일을 하고 또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는 일상은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흘러갈 뿐이다. 따사로운 햇살이 유난히 강렬한 어느 여름날 오후, 사무실에 앉아 분주히 일을 하다가 문득 창문 밖으로 바라본 여름 하늘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아마도 지금 어디선가 어린이들은, 청소년들은 저 아름다운 여름 하늘 아래서 그 시절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잊지 못할 여름방학의 추억들을 만들면서 보내고 있겠지.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일요일 늦은 오후, 계획에 없던 1박 2일의 여행을 마친 뒤라 나른한 피곤함이 몰려온다. 어제 토요일 아침 눈을 떠 보니 그야말로 햇살이 눈부셨고 더운 기온이 심상치 않았다. 일기예보를 보니 올해 들어서 가장 덥고 화창한 날씨란다. 이런 날 집에만 있으면 바보다. 부랴부랴 그나마 내가 사는 곳에서 한 시간 반 거리로 가장 가까운 바닷가인 이스트본(Eastbourne)으로 향했고, 내리쬐는 햇살 아래서 바닷물에 몸을 풍덩 담갔으며, 저녁에는 밤 바다를 보며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여행을 다녀오기 힘들어질 만큼 더 나이를 먹으면, 지금의 이렇게 보내는 여름을 또 그리워하게 되겠지. 비록 한 달 넘도록 마냥 자유로운 학창시절의 여름방학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삶 속에서 또 다른 형태로 잊지 못할 행복한 여름방학을 여전히 보내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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