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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3 01:04
제인 오스틴 생가를 다녀와서
조회 수 6523 추천 수 0 댓글 0
토요일이었던 어제, 영국의 대표적인 여류 작가인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생가에 다녀왔다. 내가 재영한인사회에서 가장 존경하는 원로분께서 초청해 주셔서 너무나 좋은 분들과 함께 일종의 유적지 답사 형식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명색이 영어영문학과 출신임에도 대학 시절에는 정작 영문학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다. 교수님들이 요구했던 것은 그저 당신들께서 수십 년 동안 똑같이 가르친 영문학 강의를 우리 역시 똑같이 듣고서, 또 시험 역시 해당 문학 작품에 대해 수십 년 동안 전해져 온 시각을 그대로 외워서 쓰는 것뿐이었다. 내가 해당 문학작품을 접하고서 갖게 되는 나만의 생각이나 느낌을 조금이라도 덧붙이면 여지없이 형편없는 점수가 나왔더랬다. 그런 쓰라린(?) 경험 때문인지, 영문학 애호가들의 성지와도 같은 영국에 살면서도 정작 나는 영국의 영문학이나 작가들에 대해 그저 무심히 지내왔다. 그랬던 까닭에 그 유명한 제인 오스틴의 생가가 내가 사는 뉴몰든(New Malden)에서 불과 한 시간 가량 떨어진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도 몰랐었다. 영화,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이성과 감성(Sense and Sensibility)’,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등의 대표작으로 유명한 제인 오스틴은 1775년도에 잉글랜드의 햄프셔주(Hampshire)의 스티븐턴(Steventon)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후 잉글랜드의 바스(Bath)와 사우스햄튼(Southampton)에서 거주하다가, 1809년도부터 훗날 4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향이 있는 햄프셔주의 초튼(Chawton)에서 거주했는데, 바로 이 곳이 현재 제인 오스틴 생가와 함께 박물관(http://www.jane-austens-house-museum.org.uk)으로 운영되고 있다.
제인 오스틴 생가에 들어서면 당시 시대의 부엌이나 거실, 침실 등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고, 실제로 제인 오스틴이 사용했던 액세서리나 자필 원고 등도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관람객들이 당시 시대를 체험해보도록 하기 위해 당시 글을 쓰는 수단이었던 깃털로 된 펜과 잉크를 구비해두었는데, 직접 시도해보니 그렇게 깃털 펜에 잉크를 묻혀서 글을 쓰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잉크를 한 번 듬뿍 묻혀도 몇 글자 쓰고 나면 다시 잉크를 묻혀야 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녀가 실제로 앉아서 저 유명한 작품들을 집필했다는 작은 책상이었다. 지난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골동품 책상에서 까닭 모를 경이로움이 느껴지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아무리 제인 오스틴이 체구가 작은 여성이었을 지라도, 어떻게 저 작은 책상에서 불편하게 글을 썼을까 싶기도 했다. 제인 오스틴은 저 작은 책상에 앉아 깃털로 된 펜에 잉크를 수 만 번씩 묻혀가며 한 글자, 한 글자를 쓰면서, 먼 훗날 그녀의 작품들이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베스트 셀러가 될 줄, 더 나아가 그 작품들이 아카데미상까지 받는 영화로 탄생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저 평범한 영국 교외의 주택일 뿐인데, 유명한 작가의 생가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의미 있는 명소가 되어 아직도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니, 역시나 영국은 문화유산과 전통을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지, 또 그것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너무나 잘 안다. 제인 오스틴 생가 박물관 건너편에는 그녀의 살아 생전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었던 (그녀는 평생 독신이었다) 그녀의 언니 카산드라의 이름을 딴 ‘카산드라의 잔(Cassandra’s Cup)’이라는 작은 카페가 자리하고 있는데, 역시나 손님들로 북적였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오래된 문화유산과 전통을 잘 보존해서 그것들을 보기 위해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도록 해야 하는데, 한국에 갈 때마다 여지없이 옛 모습들을 갈아엎고 휘황찬란한 새 것만 으리으리하게 세워대는 모습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 편으로는 이렇게 의미 있는 명소가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그것조차 모른 채 지내왔던 나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음만 먹으면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영국에 살면서도 정작 그런 영국을 충분히 만끽하지 못하며 지내왔으니 말이다. 제인 오스틴의 생가 방문은 그런 나에게 ‘아! 내가 영국에 살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새롭게 각인시켜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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