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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동네를 걸어다녔더니 내 복장이 튄다. 대부분이 긴팔에 긴바지 차림, 거기에 점퍼나 외투까지 입은 사람들도 눈에 띈다.

 

워낙 더위를 많이 타고 추위를 잘 안 타는 체질인 나조차도 오늘은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 다소 쌀쌀했다.

 

아닌 게 아니라 어느덧 9월 중순, 벌써 올해의 절반이 훌쩍 지나고 한 해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어떻게든 올해를 잘 넘겨야 하는 깊은 사연(?)이 있는 나로서는 2012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언제 또 한 해가 지나가나 싶었는데, 벌써 올해가 넉 달도 채 남지 않았다니...

 

그러고 보면 늘 그랬던 것 같다, 새해가 시작되고 여름이 오기까지는 시간이 상당히 더디게 가는 듯 하다가, 여름이 지나고서부터는 연말까지는 시간이 갑자기 쏜 살 같이 지나간다.

 

, 한 해의 절반이 지나고 나면, 나머지 절반은 가속도라도 붙은 듯 처음 절반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작년에도 여름이 지나고 10월에 중요한 공연 몇 개가 잡혀서 그 공연들을 준비하고 하나 하나 치르다 보니 어느새 연말이 되었고, 연말 분위기를 만끽하다 보니 어느새 한 해가 끝나버렸다.

 

그런데, 올해 10월에는 작년보다 더 중요한 공연들이 더 많이 잡혔다.

 

난생 처음 방문해보는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국제행사에서, 또 런던의 대표적인 대형 행사장인 O2에서 열리는 또 다른 국제행사에서 한국을 알리기 위한 연주가 잡혔으며, 그 외에도 본질적으로는 자선공연이지만 외국인 관객들을 대상으로 티켓을 유료로 판매하게 되는 단독 콘서트도 잡혔다.

 

이 공연들을 하나 하나 준비하고 치르다 보면 올해 하반기 역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것 같다.

 

회사 일도 이제 올해 연말까지의 성과들이 어느 정도 예정되어 있으니, 역시나 빠르게 지나갈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처음 절반이 지난 뒤 나머지 절반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은 한 해가 지나가는 속도에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모든 것에 있어서 처음 절반을 전반전이라고 치면, 나머지 절반인 후반전은 언제나 전반전보다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실제 스포츠 경기에 있어서도 항상 후반전은 전반전보다 짧게 느껴지고, 특히 승부가 아슬아슬한 경우에는 후반전 말미에 시간이 조금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가득할 때가 많다. 분명, 전반전을 치를 때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듯 여겨짐에도 말이다.

 

연휴나 휴가도 그렇다. 영국에서 가끔 주말을 끼고 3~4일 정도 되는 황금연휴가 있을 때면, 연휴 첫 날만 해도 아직 연휴가 많이 남은 것처럼 여유가 있는 것 같지만, 연휴 중반을 넘어서고 나면 어느새 출근이 코 앞에 다가와 있다.

 

한국으로 2주 넘게 휴가를 다녀올 때도 그렇다.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만 해도 보름 가량 되는 일정이 제법 길게 느껴지건만, 휴가의 절반이 지난 시점부터는 하루 하루가 쏜 살 같이 지나가버려서 어느새 영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출국날이 다가와있다.

 

휴가 초반에만 해도 분명 시간이 여유롭게 흘러간 것 같은데, 절반이 지나고부터는 왜 그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인지...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렇게 빠르게 지나가는 후반전이 가장 아쉬운 것은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싶다.

 

요즘 같은 고령화 시대에 과연 어느 정도의 나이를 인생의 절반으로 봐야 할 지 애매하지만, 어쨌든 인생의 절반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나머지 인생의 후반기는 너무도 빠르게 지나갈 것 같다.

 

물론, 나는 아직 인생의 후반기를 논하기에는 너무나 어리다면 어린 나이다. 하지만, 그렇게 어린 나조차도 그래도 지금보다 젊었을 때에 비하면 요즘은 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인생의 전반전을 거의 쫓기듯 바쁘게 산다.

 

대학, 취업, 결혼, 자녀양육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삶의 과제들을 정신 없이 해결하다 보면 인생은 어느새 후반전에 접어들고, 그 후반전은 야속할 만큼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어느새 인생의 전반전을 마치고 난 뒤에는 만감이 교차할 것 같다.

 

인생의 전반전 동안 무엇을 위해서 인생을 살았는지, 그래서 무엇을 이루었고, 또 앞으로 인생의 후반전 동안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여력이 있는지...

 

아무리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았던들, 인생의 전반전을 마치고 난 뒤에는 누구나 어떤 까닭 모를 서글픔이나 허무감을 느끼지 않을까?

 

언제 이 세상을 떠나게 될 지는 그저 하늘의 뜻에 따를 뿐이지만, 어쨌든 이제 인생이 절반 밖에 안 남았다니 말이다.

 

지금같은 속도라면 나 역시 곧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전반전을 더욱 소중하게 잘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의 후반전은 과연 어떤 시간들일까? 두려움과 기대감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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