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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산업화시대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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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산업화시대를 관통하는 단어들은 무수히 많다. 그 중에서도 리더십의 관점에서 본다면 아무래도 '영웅시대'로 요약할 수 있겠다. 끊임없는 기술의 발전과 물질적 풍요는 무한증식할 것 같은 경제적 성장을 초래했다. 이 과정에서 창의적인 한 개인의 '혁신' 혹은 '영웅적 행동'은 이러한 변화를 지탱하는 핵심적인 요소였다. 어딘가엔 그 나라의 등소평이 있었고, 케네디가 있었고, 대처가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 역시 정치적, 경제적으로 수많은 '영웅'들이 피고 지었다. 그들이 행한 '기적'에는 비록 심각한 과정의 오류는 있었으나 이를 덮을만한 엄청난 결과물로 대중의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 정치적으로 '3김'시대는 이러한 '영웅시대'의 황혼이었다. 재계에서도 이미 2세, 3세 승계로 넘어가면서 이러한 산업화시대의 가치들은 종언을 구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 탈 산업화시대의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 개인의 행동이 전체 시스템 속에서 올바르게 노정되고 작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고민하기 시작한 시대가 바로 노무현 정권이었다.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수많은 정치구조 속에서 자신의 의사를 결정해야만 하는 것, 즉 권력을 하향화하면서도 뛰어난 여러 명의 개인들이 서로 교차 검증을 하여 올바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산업화시대의 가치의 대표자가 집권하면서 여전히 미완의 성과로 남았다. 여전히 '성장'과 '부'를 열망하는 산업화시대의 가치가 우리에겐 공고히 자리잡았던 결과인 셈이다. 그리고 이제 2012년 대선을 맞는다. “사실 대통령 한 사람의 힘으로 5년 만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이미 현명한 국민들과 많은 전문가들이 요소요소에서 각자가 역할을 하는 커다란 시스템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속에 이미 답이 있습니다. (중략) 현명한 국민들과 전문가들 속에서 답을 구하고, 지혜를 모으면 그래도 최소한 물줄기는 돌려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9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제 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는 이러한 의미에서 조용하나 도발적이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대통령, 또는 리더와 전혀 다른 개념을 내세운다. 그는 조직을 주도하는 리더가 아니라 시스템 안의 리더가, 결정을 전달하는 리더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전달받아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한다. 안철수는 리더를 뽑는 가장 큰 이벤트에 나서며 리더의 색깔을 지우겠다는 말로 오히려 다른 후보와 자신을 차별화 시켰다. 안철수가 자신의 말을 얼마나 실천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리더가 아닌 시스템을 화두로 꺼낸 그의 문제제기는 이미 사회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조직이 한 개인에게 의지하는 것보다 시스템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조직 시스템의 모든 영역에서 조직원들이 각자의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자신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검토에 검토를 한다. 리더의 말 한마디, 또는 능력 좋고 주장 강한 사람에 의해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답답해 보일 수도 있다. 조직원들의 의견을 하나씩 수렴하는 강재인의 리더십은 약해보이지만 같은 문제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다.

모두에게 직급에 맞는 권한과 역할을 이상적으로 분배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리더가 권력을 나누고, 그만큼 시스템에 가려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정권을 시스템에 얼마나 부여하고, 누구에게 책임을 맡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리더의 몫이다. 리더가 나서지 않아도 단계별로 의사 결정이 제대로 이뤄지는 시스템은 이상에 가깝다. 리더는 조직원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동시에, 시스템에 의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관료주의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러한 수평적 리더십은 힘이 없어 보인다. 비효율적이고 지루해보이기까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조직원들이 문제의 해결 과정에 대해 납득할 수 있고, 한 방향으로 힘을 모을 수 있으며, 같은 문제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다. 개인에게 의지하기보다 각자가 열심히 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그것을 매끄럽게 운영하는 것.

이러한 관점이 마냥 옳다고만은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 문제에 대해 그만큼 많은 대중이 공감하고 알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히어로는 없지만, 모두가 주인이 될 수는 있는 조직의 시스템. 그것은 정말 가능한 일일까. 미래는 이미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남은 일은 미래가 퍼져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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