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3% 수준의 경상수지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90년대 후반 외화유동성 부족으로 국가부도 위기를 겪었고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외화위기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경상수지 흑자가 경제 안정의 한 기둥이 되고 있다.
올 들어서도 1~8월 경상수지는 222.5억 달러 흑자를 기록 중인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21.7억 달러보다 101억 달러가 늘어난 수치다.
올해 경상수지 흑자는 지난해의 270억 달러보다 27% 늘어난 340억 달러로 GDP 대비 3%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LG경제연구원은 이와같이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이후에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이어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기업의 생산성 증가가 밑바탕이 된 것으로 풀이했다.
기업의 구조조정의 결과 경쟁력이 향상되면서 상품수지 흑자와 서비스수지가 개선됐기 때문이다.
상품수지 흑자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
올해 1~8월과 작년 같은 기간을 비교해 보면 상품수지 흑자는 작년 동기와 비슷한 189억 달러를 기록했다. 상품수출은 3,628억 달러로서 작년 동기 대비 0.5%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조선과 정보통신기기 수출이 크게 줄어들었다. 조선 수출은 장기적인 해운업 불황에 따라 작년 358억 달러에서 올해 267억 달러로 25%나 감소했다. 정보통신기기 수출은 올해 1~8월 사이 197억 달러를 수출하여 지난 해에 비해 59억 달러 감소했는데, 이는 스마트폰의 해외 생산 비중이 2011년 57%에서 올 1분기에 80%로 상승한 결과이다. 반면 자동차는 미국 및 유럽과의 FTA 타결로 280억 달러를 수출하여 8% 증가했다. 상품수지 흑자 흐름은 9월에도 유지되고 있다.
통관 기준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9월에도 상품수지 흑자가 31.5억 달러를 기록했다. 조선과 자동차 수입의 부진 및 유가 상승으로 국제수지 기준 상품수지 흑자는 8월보다 소폭 감소할 것으로 전망이다.
수입액 역시 작년 같은 기간과 비슷하지만 업종과 성질 별로 증감이 갈리고 있다. 수출이 지난 해 수준에서 제자리 걸음을 보임에 따라 수출과 직결되는 원자재는 1.6% 늘어나는데 그쳤다. 수입액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원유는 국제원유가격이 작년보다 소폭 상승하여 1~8월의 수입액이 717억 달러를 기록하여 작년보다 9% 늘어났다.
소비재 수입 역시 국내경기 부진으로 0.3% 늘어나는데 그쳤다. FTA 협정 타결로 유럽으로부터 수입이 증가하면서 자동차 수입이 작년 동기 대비 11% 증가한 27억 달러를 기록했고, 그 이외의 소비재 수입은 전반적으로 저조했다. 원자재와 소비재의 수입이 소폭이나마 증가한 반면, 자본재 수입은 4.3% 감소했다. 자본재 가운데서도 정보통신 관련 자본재의 수입이 24% 감소했다.
서비스수지 개선이 경상수지 흑자 확대 불러와
올해 경상수지 흑자 증가에 기여한 것은 서비스 수지이다. 서비스 수지가 작년 1~8월 46억 달러 적자에서 올해 20억 달러 흑자로 66억 달러가 개선됐다. 이는 전체 경상수지 흑자 증가액 101억 달러 가운데 65%에 해당한다. 서비스 수지 개선 가운데 특히 건설서비스수지와 여행수지의 개선세가 뚜렷했다.
장기 해외건설공사는 2010년 11월부터 금융계정(구 자본수지)상의 직접투자에서 경상수지의 건설서비스로 개편됐다. 최근 국내 건설경기 불황을 극복하고자 건설업체들이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하면서 건설서비스 수지가 지난해 72억 달러 흑자에서 111억 달러 흑자로 늘어났다. 지역적으로는 중동지역의 건설 수주가 늘어나면서 건설서비스 수지의 흑자폭이 커졌다.
여행수지도 중국과 일본의 외국인 관광객의 증가로 대폭 개선되어 작년 62억 달러 적자에서 올해는 37억 달러 적자로 줄어들었다. 일본의 대지진과 방사능 누출 사건에도 기인하지만 외국인 관광객 수가 최근에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힘입은 바 크다.
올해에는 한국관광공사 추산으로 1,100만 명의 외국관광객이 입국할 것으로 보여 올해 여행수지는 작년에 비해 적자폭이 상당히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업서비스 수지나 지적재산권 사용료와 같이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 산업의 수지는 각각 107.9억 달러, 31.6억 달러로 여전히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본원수지도 흑자폭 확대
본원소득수지의 개선도 경상수지 개선에 도움을 주었다. 해외에서 생산활동에 참여한 임금과 해외자산으로부터 얻은 이자, 배당과 같은 투자소득을 내용으로 하는 본원소득수지는 해외 직접투자기업으로부터의 배당수입이 증가하여 작년 1~8월 기간의 3억 달러 흑자에서 올해는 31.5억 달러 흑자로 크게 늘어났다.
우리나라의 경우 생산성 증가에 따라 경상수지가 개선된 것은 기업의 수익이 호전됐지만 그에 따른 투자가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기업들에서 규모 확장보다는 수익 위주의 내실 경영이 자리잡으면서 투자율이 외환위기 이전보다 낮아졌고 그에 따라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경상수지 흑자, 과거와는 다른 시각으로 보아야
이와같은 현재의 경상수지 흑자가 수출이 거의 정체하거나 줄어드는 가운데 수출 및 투자 부진 등과 맞물려 수입도 덩달아 줄어 흑자가 이어지는 이른바 ‘불황형 흑자’라서 국내 경제 활동이 위축되고 있어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소비가 감소하여 생산 정체로 고용이 늘어나지 않고 특히 투자부진과 맞물린 자본재 수입 위축은 장기적인 성장잠재력을 제약하게 될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될 경우 무역마찰을 유발할 수 있다. 실제 최근 우리나라를 상대로 한 다양한 무역보복 조치나 비전통적 수입규제 정책이 취해지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는 외환시장의 불균형을 가져와 원화의 절상을 초래할 가능성도 높다.
지난 달 미국 의회의 일부 의원들은 행정부에 서한을 보내 우리나라가 지속적인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원화가치를 인위적으로 저평가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를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수석연구위원은 "이제 외환보유고도 많이 확충됐고, 국가 신용등급이 선진국 수준으로 오르는 등 외환위기의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어 경상수지 흑자기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내수를 진작하고 기업의 투자율을 높임으로써 우리 경제의 대외 의존도를 낮추고 외부 충격에 대한 감내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로저널 김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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