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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5 00:40
‘열정’으로 미화된 ‘착취’
조회 수 2080 추천 수 0 댓글 0
“한국에 있는 CG 기술팀이 미국에 가서 '어벤져스'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6개월 동안 2컷 만든다고 하더라. 하지만 한국에서는 6개월에 한 명이 200컷을 작업 해야한다. 미국의 자본력과 인프라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자본이 적고 인원이 부족하지만 불 같은 열정이 있다"라고 말하며 다시한 번 미소를 지었다.” 요즘 한국에서 제법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연출한 감독의 인터뷰 내용이다. 이 감독님의 얘기인 즉슨, 한국에서는 같은 시간을 일해도 미국보다 100배의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며, 그게 바로 한국인의 열정이라는 것이다. 구세대라고 하기에는 그래도 비교적 젊은, 그리고 그 누구보다
깨어있고 열려있어야 할 영화 감독마저 아직도 이런 구시대적이고 후진국스러운 마인드를 갖고 있다니. 천연자원도 변변치 않고 땅덩어리 좁은 우리 나라가 오늘날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한국인들 특유의 성실함과 열정이었음은 부정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서 100원을 투자하여
500원짜리 제품을 만들면, 우리는 50원을
투자하여 그들과 비슷한 품질 혹은 더 나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고 400원에 판매하면서 경쟁력을 키워왔을 것이다.
100원이 투자되어야
하는 제품을 50원에 만들었다면 결국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희생했다는 얘기인데, 기업이나 고용주가 자신의 몫을 희생했을리는 없고, 그렇다면 결국 노동자가 임금을 적게 받고
일은 더 많이 했다는 얘기다. 기업과 고용주는, 그리고 한국사회는
이를 가리켜 ‘한국인의 열정, 한국인의 성실함, 한국인의 능력’이라고 한껏 치켜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말로 하면 이는
‘근로자의 희생, 고용주의 착취’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정당한 댓가도 받지
못하면서 모든 것을 바쳐온 근로자의 쇠약해진 심신, 비정상적인 업무강도와 근로시간에 빼았긴 여가시간,
또 그에 따른 가족들과의 단절이 있었을 것이다. 눈 부시게 빨랐던 한국의 성장 뒷면에 자리하고
있는 이 어두운 그림자는 어쩌면 우리 나라가 지금의 위치까지 오기 위해서는 불가피했던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가 된 지금,
세계 속의 대한민국이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선 지금도 이런 식으로 근로자의 희생으로 경쟁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열정과 성실함은 참 좋은 단어들이지만, 그렇다고 정당한 댓가도
받지 못하면서 부당함을 감수하는 게 열정과 성실함으로 미화되면 안 된다. 개인의 삶, 여가시간,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는 시간들을 포기하고 일만 하는(혹은 강요당하는)게 열정과 성실함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그 부당함을 감수하면서조차 그 일자리를 꼭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을 터, 더구나 우리 나라처럼 단체문화가
강한 곳에서는 더더욱 흐름을 거스르기 힘들다. 이 돈을 받고 이 시간 안에 이 일을 한다는 게
비정상이라는 것을, 부당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면서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의를 제기하면 그것이 고쳐지는 게 아니라, 이의를 제기한 당사자만
제거될 뿐, 곧 다른 인력이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이기에.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일하려는 사람은 넘쳐나니, 부당함 따위는 얼마든지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는 이들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줄을 서 있고, 이러한 사정을 아는 기업과 고용주 입장에서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대우, 정당한 댓가를 제공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조직의 사정이 정말 여의치 않아서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모두가 그 희생에 동참하면 된다. 가령, 앞서 언급한 영화
감독의 경우, 그렇게 예산이 부족해서 기술팀이 미국의 근로자보다 100배나 더 많이 일하는 희생을 했다면, 억대 개런티를 받는 주연배우나 감독도 자신의 몫을 일정
부분 희생했어야 한다. 아니면 영화가 성공할 경우 그 이익이 기술팀에게도
분배되어야 한다. 즉,
그들의 열정에 대한 보상이 정당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미국의 기술팀이 한국의 기술팀보다 100배나 느리게 작업했다는
얘기인데, 아마도 이들은 정해진 근로시간을 준수하면서 일했을 것이고, 한국의 기술팀은 거의 밤샘 작업을 하면서 일했을 것이다. 결국, 다른 점은 고용주가
그만큼 인건비 지출을 더 했느냐, 덜 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한국의 고용주는 그만큼 인건비를 아낌으로서 자신의 배를 더 채웠을 뿐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이러한 기술직에서 고용주들의
인건비 절감 노력이 눈물겨울(?) 정도로 열심이다. 한국에서 이런 기술직이나 각종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해외에 취업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한국에서는 고만고만한 임금을 받으면서 일은 죽도록 하느라 삶의 질이 낮았는데,
외국에서는 정시 출퇴근하면서도 임금은 더 받는다면서 절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거나 한국 회사에서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참 안타깝고 씁쓸하지만 그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너무나도 상식적이고 맞는 얘기일 뿐이다. 예전처럼 공장에서 물건 만드는 사업일 경우라면
그렇게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 일은 몇 배로 많이 하는 근로자의 희생을 담보로 사업이 성공할 수 있겠지만, 앞으로는 점점 그런
방식으로 성공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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