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선진국 중에서도 인구고령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면서 복지의 혜택이 고령층에 치중되어 있어 국가 재정 적자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명목GDP의 200%를 넘는 재정적자 문제가 특히 심각하다. LG경제연구원이 지난 해 12월 초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복지수준은 유럽보다 낮으나 복지의 혜택이 고령층에 치중되어 있기 때문에 인구고령화의 급속한 진행으로 재정지출 규모도 가파르게 확대되었다.
더욱이 생산가능인구의 감소가 경제의 잠재성장력을 떨어뜨리고 재정지출의 파급효과마저 약화시켜 재정지출은 계속 증가하지만 세입은 더욱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공공투자 보다 사회보장지출 확대가 주된 원인
일본의 재정수입과 지출의 추이를 인용한 이 보고서에의하면 1990년을 기점으로 세입이 감소세를 보이는 한편, 세출이 계속적으로 확대되어 일본정부는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계속 공채를 발행해 왔다.
1990년부터 2012년 동안의 누적 기준으로 보면 세출 측면에서의 적자 확대 요인 중에서 사회보장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61%에 해당하며, 이는 공공투자 20%의 3배 정도의 비중이다. 고령자 복지지출 사회보장 지출이 팽창하여 일본정부는 각종 사회보장기금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재정지원을 확대해 왔으며, 그 결과 일본 재정의 악화가 초래되었다. 2011년 회계연도를 보면 사회보장 지출은 105.5조엔에 달하고 그 중 사회보험료로 부담한 것은 58.7조엔에 불과해 정부 재정지원 27.8조엔, 지방정부 부담 9.5조엔 등이 발생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세출 구조를 보면 2011년 일반회계 예산 92.4조엔 중 사회보장 지출은 28.7조엔으로 이자 등의 국채비용 21.5조엔을 능가하여 최대의 지출 항목이 되고 있다. 반면, 문교·과학은 5.5조엔, 공공사업은 4.9조엔에 불과해 사회보장 지출 부담 때문에 다른 분야의 지출을 크게 늘리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일반회계에서 국채 원리금 상환, 지방교부금 등 고정성 지출을 뺀 정책 관련 지출을 의미하는 일반세출 중에서 사회보장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975년의 24.8%, 1990년의 32.8%에서 2011년에는 53.1%로 급상승해 왔다. 일본정부의 경우 사회보장 지출 이외의 분야로 정책적 자금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실정이다.
인구고령화가 사회보장지출 부담을 확대
일본의 재정 악화를 초래한 것은 저출산·인구고령화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유럽 복지국가와 비교하면 복지 수준이 낮고 GDP 중에서 복지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상대적으로 낮지만 1990년대 이후 복지지출이 가파르게 증가한 것이 재정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일본의 1인당 복지지출은 2000년 실질가격(OECD 실질구매력평가환율 기준)으로 2009년 5,660달러로 프랑스의 9,232달러, 독일의 8,016달러, 미국의 7,762달러에 비해 낮지만 1980~2009년 동안 283%의 높은 증가세를 기록했다.
일본의 복지 제도는 유럽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낙후된 수준이긴 하지만 인구고령화로 인해 자동적으로 복지지출이 확대된 영향이 컸다. 1990~2009년 동안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층에 대한 1인당 복지지출은 실질가격으로 연평균 2.2%의 증가율에 그쳤지만 고령층 인구 증가로 인해 고령자 복지지출의 총액은 연평균 5.9%의 증가세를 기록했다.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가 1990년의 1,489만명에서 2010년에는 3,083만명으로 급증,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990년의 12%에서 2012년 24%로 두 배나 늘어나는 과정에서 고령자를 위한 연금, 의료보험 등의 복지지출이 확대되었다. 일본의 연령별 사회보장 지출과 개인부담의 구조를 보면 고령층에서 의료비 지출이 집중되고 있고 연금도 고령층이 수령하기 때문에 인구고령화가 진행되면 복지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복지의 수준 자체보다 인구고령화에 따른 복지지출의 자동 증가세가 일본의 재정 악화를 가져온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구고령화는 일본의 세입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충격으로 작용하였다. 일본의 15~64세 생산가능인구는 1990년대 중반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섰으며, 이에 따라 세금을 부담하는 인구규모 자체가 해마다 감소하는 압력을 받게 되는 구조로 변했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는 경제성장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세수 확대가 더욱 더 어려워진 것이다.
고령자 복지에 치중한 재정지출의 경직성
결국 일본의 재정적자 누적은 인구고령화 속에서 사회보장지출이 팽창함으로써 발생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본다면 복지수준이 높은 국가는 물론, 낮은 국가에서도 인구고령화가 진행될 경우 일본처럼 재정적자에 빠질 수밖에 없어, 앞으로 각 선진국이나 한국도 일본처럼 저출산·고령화의 압력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고민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재정적자 누적 문제에서도 인구고령화와 복지지출의 팽창 문제가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미국과 같이 출산율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는 국가에서도 인구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재정적자 문제를 악화시킨 일본의 특수 요인으로서는 우선, 고령자 중심의 복지지출 구조 등 일본 재정 및 사회보장지출의 경직성을 들 수 있다. 일본의 복지지출은 고령층에 집중되고 있다. 또한 일본의 복지지출 중에서 고령자복지는 가족복지 지출에 비해 10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도 고령자 복지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고령자 복지에 집중하는 구조는 인구고령화로 인해 복지지출이 자동적으로 확대되는 효과를 더욱 강화시킨다. 또한 젊은 부부를 위한 자녀 양육 등 가정 복지는 고령자 복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진하기 때문에 출산율이 억제되는 부작용도 있다. 이는 개인 입장에서 보면 고령자 복지를 상대적으로 기대할 수 있어서 결혼을 하거나 자녀를 양육하여 노후에 대비하려는 결정을 기피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게 된다.
사회보장 관련 산업의 낮은 생산성
일본처럼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하고 사회보장지출도 확대되고 있는 독일이 재정지출의 효과를 유지하면서 재정적자도 억제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은 늘어나는 사회보장 지출에 힘입어서 활성화되는 산업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독일을 비교할 때 사회보장지출의 혜택을 받는 의약품, 의료 및 복지, 의료기기 및 정밀광학기기 등의 산업에서 생산성증가율에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이들 분야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전산업 평균증가율을 상회하여 재정지출을 포함한 경제적 자원이 이 분야로 확대되는 데 따른 경제적 자원의 왜곡이나 비효율 문제의 발생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일본의 경우 최근 의약품 산업의 노동생산성이 향상되고 있으나 사회보장 복지 관련 산업의 생산성 증가율은 전반적으로는 전산업의 평균증가율을 밑돌고 있다.
저출산·인구고령화와 사회보장지출의 확대에 따라 일본의 경제적 자원이 다른 산업에 비해 생산성과 임금 수준이 낮은 분야로 집중됨으로써 세수 확대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 의료 등의 복지 서비스 산업은 정부규제가 강하기 때문에 기업의 자유로운 창의와 혁신 활동이 저해되는 측면도 강해 경영혁신, 생산성 향상 등의 활성화에 어려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빠른 인구고령화 속도
저출산·인구고령화에 따른 재정수지 악화를 막기 위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세출 및 세입 구조의 혁신, 재정의 경제부양 효과 유지를 위한 노력, 의료 및 복지 산업의 혁신 등 다양한 과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고 이는 각종 기득권과 맞서면서 사회적 혁신으로서 성공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물론, 이러한 혁신에는 일정한 기간과 국민적 합의도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이러한 혁신 노력이 인구고령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었다.
일본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서 인구구조의 특수성으로 인해 인구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일본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7%를 돌파하여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것은 1970년경이며, 그 후 14%를 돌파해 고령사회에 진입할 때까지 24년 정도가 소요되었다. 이는 프랑스가 115년, 미국이 72년 정도 소요된 것과 비교하면 대단히 빠른 것이다. 게다가 그 후 일본의 고령인구 비중은 다른 선진국을 앞섰으며, 고령자 인구비중이 20%를 돌파해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때까지는 11년 밖에 소요되지 않는 등 인구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왔다.
이러한 일본의 빠른 인구고령화는 인구정책의 실패에도 그 원인이 있다. 일본의 경우 연령별 인구구조에서 2개의 큰 파동이 존재한다. 하나는 전후 베이비 붐 세대이다. 이 세대는 1947~49년에 태어난 세대인데,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연령별 인구구조상의 돌출이 심하다는 특징이 있다. 다른 선진국의 경우 베이비붐이 10년 정도 있었던 반면 일본의 경우 불과 3년 밖에 없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이는 일본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강력한 출산억제 정책을 전개함으로써 발생한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불과 3년의 단기에 그친 베이비 붐 세대가 고령기에 들어서면 순식간에 전체 인구의 고령화 압력이 되어 다른 세대에 충격을 주게 되었다. 그리고 저출산 문제를 인식한 이후 계속 강화되어 왔던 출산 장려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해 빠른 인구고령화를 막지 못했다.
결국, 인위적인 출산억제 조치가 수십년에 걸쳐 일본의 인구구조를 여러 번 왜곡시키고 정책 혼선과 함께 인구고령화의 속도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인구고령화 시대에 대응한 사회개혁의 부실을 초래함으로써 일본은 재정적자 폭이 갈수록 증가하는 문제점에 직면하고 있다.
<관련 기사: 본보 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