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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사면, 이제 고쳐야 할 때다.


888-사설 사진.jpg



예외가 있긴 하지만, 봉건제 국가에서 죄에 대한 처벌은 주로 공동체로부터의 격리, 배제를 통해 이루어진다. 

다만 범죄인들은 계속 발생하기 마련이므로 이러한 격리는 항구적일 수 없고 따라서 대부분의 사회체제는 사회의 통합 차원에서 다양한 이유를 들어 다시 공동체로 복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는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이것이 바로 사면이다. 

죄를 용서하고 형벌을 면해준다는 사면은 절대군주제 시절의 은사권(恩赦權)에서 유래했다.

나라에 큰 경사가 있을 때 임금이 비교적 죄가 가벼운 죄인들을 풀어줬다. 중국에서 사면이 제도적으로 정착된 것은 한나라 때. 왕위 계승, 연호 개원, 왕세자 및 왕후 책봉 등 4대 경사에 즈음해 시행하는 게 관례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서기 25년 신라 유리왕 2년에 '왕이 친히 시조의 종묘에 제사를 지내고 대사(大赦)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남아 있다.

왕조국가에서 사면은 나라의 길흉사가 있을 때 자주 시행됐다. 
경사 때의 사면은 온 백성이 새롭게 시작하자는 취지에서 국가가 베푸는 은전이었고, 흉사 때의 사면은 형정의 오류를 시정하고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일종의 반성 차원의 조치라고 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의 경우 오늘날 일반사면에 해당하는 대사령이 반포되면 원칙적으로 그것을 내린 시점을 기준으로 그 전의 범행 일체를 불문에 부쳤다. 가뭄이나 재이 같은 흉사가 발생했을 때는 이를 핑계로 오늘날 특별사면과 비슷한 선별적 사면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절대군주제의 잔재인 사면권은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여전히 대부분 법치국가에서 국가원수의 권한으로 인정하고 있다. 법률의 결점과 재판의 결함을 바로잡는다는 취지다. 다만 오·남용을 막기 위해 사면권 행사를 법률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실제 독일의 경우 사면은 지난 60년간 단 네 차례밖에 없었다. 핀란드는 대통령이 반드시 대법원의 자문을 구하도록 해 사법부의 판결이 무시되는 폐단을 차단하고 있다.

사면은 크게 특별사면(특사)과 일반사면으로 대별된다. 특사는 특정인에 대해 형 집행을 면제해주는 것인데 비해 일반사면은 범죄의 종류를 지정해 해당 죄목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형벌의 일부 또는 전부를 소멸시키는 것. 특사는 예로부터 정변으로 인한 정치범을 구제하려고 시행됐다는 점에서 사실 정치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측근인 최시중, 천신일을 포함한 55명의 특별사면을 추진해버렸다. 구색으로 친박계 의원과 용산철거민 구속자를 포함시켰다. 
그럼에도 셀프사면이란 꼬리표는 뗄 수 없게 되었다. 이로써 이 대통령은 유종의 미를 거둘 기회를 날려버렸다.

대통령의 특별사면권 남용을 더 이상 좌시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부정과 비리 연루자를 대통령이 임의로 사면하는 것은 선량한 대다수 국민의 법감정에 반하는 일이다.
대통령에게 사면권을 부여한 것은 만의 하나 법 적용의 잘못으로 나올 수 있는 억울한 피해자를 구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사면권 행사는 자칫 사법부와 법의 권위를 훼손할 수 있기에 고도의 정치적 판단과 신중함이 요구된다. 또 그 내용도 국민 모두가 공감하고 사회의 정의에 부합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제 그 원칙을 바로 세울 때가 되었다. 

사면권 남용을 막는 법적 장치를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미국은 실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석방 이후 5년, 기타 유죄 판결자는 형 확정일로부터 5년이 지나야 사면청원이 가능하다고 아예 못을 박았다. 프랑스는 부정부패 공직자와 선거 사범, 테러분자 등에 대한 사면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독일은 전후 60년 동안 수사과정 오류 시정을 위해 단 네 차례만 사면을 단행했다. 모두 본받을 만하다. 집권자의 의지가 그렇게 박약하다면 이제 제도로 보완할 수밖에 없는 때가 되었다. 

책임있는 자의 책임있는 논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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