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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이라는 영화를 감상했다.

 

젊은 층에는 이미 잘 알려진 영화지만, 혹시 이 영화에 대해 잘 모르실 분들을 위해 잠시 이 영화를 소개하자면, 이 영화는 강풀이라는 만화가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며,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피해자들의 자녀들이 성인이 되어 광주 민주화 운동을 촉발시킨 ‘그 사람’을 처단하고자 하는 시도를 담고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의 육체적, 정신적 목숨을 빼앗아 놓고도 지금도 연희동에서 두 다리 뻗고 편히 자고 있을 ‘그 사람’, 본인의 통장에는 29만원밖에 없다면서 그의 자손들은 어디서 났는지 모를 막대한 부를 누리고 있는 ‘그 사람’ 말이다.

 

예전에 한국에서 TV를 통해 ‘그 사람’이 외출에 나서면 경찰관들이 신호등을 조작하여 ‘그 사람’의 차가 신호에 걸리지 않도록 특급 배려(?)를 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기가 찼는데, 이 영화에서도 그런 장면이 등장한다.

 

세상에는 ‘정의’나 ‘인과응보’와 전혀 상관없이 전개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지만, ‘그 사람’과 그의 자손들이 여전히 그토록 호위호식하면서 대한민국에서 막대한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는 것은 그냥 기가 막히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될 만큼 답답한 현실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정말 막중한 의무를 띄고 있었고, 다소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대선 전에 개봉을 추진했을 만큼 현실 정치에도 어떠한 영향력(?)을 끼치려 했던 영화였다.

 

하지만, ‘정의’나 ‘인과응보’가 실제 현실에서는 별 힘을 못 쓰듯, 슬프게도 이 영화 역시 별 힘을 쓰지 못할 수준으로 만들어진 너무나도 아쉬운 영화였다.

 

우리는 현실을 보면서, 특히 정치를 보면서, 아무리 바른 신념도, 옳은 의견도 현실적인 능숙함이 갖춰지지 않으면 실패하는 것을 수도 없이 봐왔다.

 

영화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무리 흥미로운 소재를 담고 있어도, 아무리 훌륭한 주제를 담고 있어도, 영화적으로 능숙하게 만들어지지 않으면 아쉽게도 별 힘이 없다.

 

26.jpg

 

일단, 칭찬부터 하자면 이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사실 그 자체다.

 

4년 동안이나 제작에 어려움을 겪다가 이 영화가 탄생하기를 간절히 열망하는 일반인들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정말 역사에 길이 남을 뜻 깊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이었더라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발상이었을 터,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어도 이 영화가 제작되지 못하도록 방해한 세력의 힘이 막강했고, 심지어 이 영화에 대해 빨갱이라며 손가락질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니, 아직도 우리 나라가 갈 길이 먼 것 같다.

 

또 하나 칭찬할 점이라면 주연배우들, 특히 진구의 열연이다. 답답한 스토리 전개와 설득력이 빈약한 연출 때문에 배우로서도 역할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도 정말 열연을 펼쳤다.

 

슬프게도 이 두 가지 외에는 이 영화는 너무나 어설프게 만들어졌고, 그래서인지 흥행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고, 현실 정치에도 별 영향을 주지 못했으며, 개봉 당시에만 사회적인 관심을 일으켰을 뿐, 이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조용하게 잊혀져 버렸다.

 

내가 강풀 만화가의 원작을 접하지 못해서 함부로 이 영화를 평하기가 참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몇 마디 해보자.

 

영화 초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아픔을 만화로 표현하고, 그 피해자들의 후손들이 그 사람을 처단하기 위한 일에 가담하게 되는 과정까지는 참 좋았다. 그런데, 정작 영화는 거기서부터 답답해진다.

 

이토록 중요한 거사를 기획했다면, 정말 철저한 사전 조사와 치밀한 작전이 세워졌어야 하는데, 이 일을 계획한 사람은 광주 민주화 운동의 피해자들의 후손들을 모으기만 했을 뿐, 이후 너무나 대책이 없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백주대낮에 무작정 연희동 그 사람의 집으로 쳐들어가려 하고, 대로변에서 그 사람이 탄 차량에 총을 쏘려 한다.

 

누가 봐도 비현실적이고 심지어 어리석게 보이기까지 하는 주인공들의 행태에 관객 역시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그들의 거사는 성공하지 못하고, ‘그 사람은 별다른 미동 없이 여전히 대우 받으면서 잘 먹고, 잘 산다는 결말을 맺는다.

 

또한, 주연배우들의 열연은 참 좋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 사람역할을 맡은 장광이라는 배우를 조금 잘못 활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외모도 실제 그 사람과 비슷하고, 악역을 참 맛깔나게 연기하는 좋은 배우임에는 틀림없지만, 예전에 출연한 도가니에서의 역할과 별로 다른 점을 느끼기가 어려울 만큼, 너무나 정형화된 그야말로 광표연기만을 보여주었다.

 

이 영화를 통해 광주 민주화 운동의 실체를, 그 아픔과 그에 대한 책임이 있는 자들의 실체를 상기시키려던, 그리고 그 사람이 여전히 한 점 부끄럼 없이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현실을, 또 그런 현실을 허용한 대한민국 사회에 어떠한 파장을 일으키려던 숭고한 시도는 그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어야 하는 것인지...

 

진실과 정의가 사라진지 오래된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이 이 영화와 오버랩되면서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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