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대사관 | 유관기관 | 한인회 | 유학생회 | 기타한인단체 | 한인동포업체 | 주재상사 | 유럽내 추천사이트 | 해외동포 언론사이트

단독 사설
단독 칼럼
단독 인터뷰
독자기고/특별기고
엣세이/여행기/장편소설
유럽한인 취재뉴스
유로저널특집/기획취재뉴스
취재/독자/동영상
한인사회 게시판
정부/대사관 공지
재미있는 유머
경제뉴스
국제뉴스
정치뉴스
사회뉴스
기업뉴스
문화뉴스
연예뉴스
건강뉴스
여성뉴스
스포츠뉴스
내고장소식
독일뉴스
영국뉴스
베네룩스
프랑스뉴스
유럽뉴스
동유럽뉴스
스칸디나비아
스페인/이탈리아
오스트리아/스위스
그리스/터키/포르투갈
유럽각국 전시정보
유럽각국 이민정보
유럽각국 생활정보
유럽각국 교육정보
유럽각국 문화정보
여행기사 정보제공
유럽각국 여행정보
유럽각국 연금제도
유럽소비자 제품평가
공공기관/기업광고
동포업체 및 기타/해외
번역/통역, 관광, 가이드
민박, 하숙, 호텔

2013.02.24 19:34

600파운드짜리 이야기

조회 수 252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회사 화장실을 찾았는데 좌변기칸을 열고 들어가보니 누가 양복 재킷을 좌변기칸 문 안쪽에 걸어두고 나간 것이었다.

 

그냥 내 볼일만 보고 나가려 했는데 막상 나가려 하니 발걸음이 안 떨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재킷을 만져보았다.

 

그것은 겉으로는 재킷을 두고 간 사람의 신원을 알 수 있는 물건을 찾는 것이었지만, 속으로는 혹시나 큰 돈이라도 담겨 있나 하는 순수하지 못한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안주머니에 묵직한 종이 뭉치와 플라스틱 카드가 만져졌다. 역시 본능적으로 그것들을 꺼내어보았더니 헬스클럽 회원카드와 20파운드짜리 수십 장 뭉치였다.

 

그랬다, 나는 족히 600파운드(100만원 가량)는 될 것으로 보이는 돈 뭉치를 발견한 것이다.

 

보통 이렇게 큰 현금을 지니고 다니는 경우가 매우 드문데, 재킷을 놓고 간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에서 이렇게 큰 현금을 지녔으며, 또 그 큰 현금이 든 재킷을 두고 간 것인지...

 

여하튼 생각지도 않은 돈 뭉치를 발견하니 갑자기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하필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고 정적만 흘렀다.

 

물론, 그 돈은 한 푼도 내 돈이 아니고, 당연히 나는 그 재킷을 그냥 그 자리에 걸어두고 나오거나 아니면 어떻게든 주인을 찾아줬어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 순간에 정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닌가, 혹시 나만 빼고 다들 그렇게 하려나?

 

어쨌든, 적어도 나는 그 순간 너무나 사악하고 간사한 나 자신의 내면과 엄청난 혈투를 벌여야 했다. 그 부끄러운 혈투를 이 글을 통해 만천하게 공개하리로다!

 

일단, 신기하게도 영국에 와서 억울하게 돈을 잃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것도 딱 600파운드 정도의 돈을 잃었던 순간들로만.

 

노트북을 소매치기 당한 일, 집 렌트 중 억울하게 보증금을 떼인 일...

 

아마도 나의 사악하고 간사한 본능은 나 자신에게 그 동안 니가 그렇게 억울하게 잃은 돈을 보상할 절호의 기회다.”라고 속삭이고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가난한 사람의 돈을 훔치면 좀 더 죄책감이 느껴질텐데, 재킷 주머니에서 같이 나온 고급 헬스클럽 회원권을 보니 적어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일 것 같지는 않았다.

 

가난한 자의 돈을 훔치건, 부자의 돈을 훔치건, 둘 다 똑같은 도둑질이건만...

 

그렇게 나는 이 돈을 훔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오만가지 핑계를 찾으며 나의 도둑질을 정당화시키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이 돈을 어떻게 쓸까 하는 상상이 이어졌다. 평소 갖고 싶었던 것, 먹고 싶었던 것을 살 수도 있고, 아니면 통장에 입금해서 통장 잔고를 높일 수도 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지금 남의 돈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얼른 그 돈을 다시 재킷 주머니에 넣고 그냥 재킷을 그 자리에 놔두고 좌변기칸에서 나왔다.

 

그런데, 화장실은 계속 아무도 없었고, 나중에 누군가가 들어와서 나처럼 그 재킷을 발견하고 결국 그 돈을 훔쳐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괜히 아까운(?) 기분이 들었다.

 

정말 부끄럽게도 나는 다시 그 좌변기칸으로 들어갔다.

 

또 다시 나 자신과의 혈투가 벌어졌다. 어차피 누군가가 훔쳐갈 돈, 이왕이면 내가 갖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돈만 챙기고 재킷은 그냥 걸어두고 나올까? 혹시 재킷에서 내 지문이라도 나오면 어쩌나? 재킷을 통째로 들고 나가는 것은 너무 위험한데...”

 

오만가지 생각들이 스쳐가는 중 문득 그렇게 나 자신과의 혈투를 벌이고 있는 내 모습이 막말로 너무나 쪽팔렸다.

 

비록 화장실은 쥐죽은 듯 적막이 흘렀고 아무도 나를 보는 눈은 없었지만, 하늘이 보고 계셨고, 부모님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고 있는 듯 했다.

 

그 돈을 훔쳐놓고서 당장 이번 주 일요일 교회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토가 나올 것 같았다.

 

그 돈을 훔쳐놓고서 그것 때문에 남은 평생 짊어져야 할 죄책감과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안 그래도 이미 너무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사느라 죽을 맛인데, 이깟 돈 몇 푼에 마음의 짐을 추가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 재킷을 들고 나와서 리셉션에 갖다주고 주인을 찾아주라고 했다.

 

이 모든 게 불과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다.

 

비록 나는 결과적으로는 옳은 결정을 내렸지만,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너무나 추악한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

 

만약 그 돈이 600파운드가 아니라 6백만 파운드, 아니 6천 파운드만 되었어도 나는 어쩌면 다른 선택을 했었을까?

 

혹시 몇 년 뒤에 똑 같은 상황을 만나더라도 과연 나는 이번과 같은 선택을 하고 있을까?

 

안 그래도 요즘 글이 잘 안 써져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비록 600파운드는 그림의 떡으로 끝났지만 대신에 오늘 한 편의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 고로 이 글은 600파운드짜리?

유로저널광고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전성민의 '서른 즈음에' - 필자 소개 file 유로저널 2007.01.19 12984
293 추억의 영화관, 그저 추억으로만... eknews03 2013.03.03 2658
» 600파운드짜리 이야기 eknews03 2013.02.24 2527
291 어디 갔니? 내 의욕들아! eknews03 2013.02.18 1925
290 '26년’, 아쉬운 현실처럼 아쉽게 만들어진 영화 file eknews03 2013.02.10 1799
289 남다른 감회로 다가온 주영한국문화원 5주년 eknews03 2013.02.05 2147
288 눈(雪), 동심으로 떠나는 여행 file eknews03 2013.01.22 2283
287 ‘열정’으로 미화된 ‘착취’ eknews03 2013.01.15 2080
286 실감되지 않는 기쁨 eknews03 2013.01.08 1769
285 ‘서른 즈음에’의 마지막 ‘해’ eknews03 2012.12.28 2594
284 잊지 못할 열 여덟 살의 12월 eknews03 2012.12.18 2672
283 생애 첫 대선 투표 file eknews03 2012.12.11 2079
282 12월 file eknews03 2012.12.04 2038
281 그 많던 생각과 느낌들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eknews03 2012.11.27 2323
280 후배들아, 기본은 갖추자 eknews03 2012.11.20 2121
279 그와 나의 차이를 만든 것은 무엇일까? file eknews03 2012.11.13 1971
278 지나버린 모든 게 아름다울 수 있는 신비 eknews03 2012.11.06 2307
277 런던에서 한국영화 잔치를 만난다는 것 eknews03 2012.10.22 2204
276 존경했던 기업인의 정치판 입문을 지켜보며 eknews03 2012.10.15 1981
275 네덜란드에서의 하룻밤 file eknews03 2012.10.08 3254
274 이민사회의 존경받는 원로가 된다는 것 eknews03 2012.10.01 2557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20 Next ›
/ 2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연락처 | 회사소개 | 광고문의 | 찾아오시는길 copyright@ EKNews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