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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취임사, 긍정적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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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자신을 지칭하면서 "저는"이라는 낮춤말을 보편적으로 쓴 것은 노태우 정권 때였다. 권위주의 청산을 내걸며 국민 앞에 겸손하겠다는 뜻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나는"을, 전두환 대통령은 "본인은"을 즐겨썼다. 

대통령이 국민을 부를 때 말문을 여는 어휘도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박 대통령은 1963년 취임 때 "나의 사랑하는 삼천만 동포들이여"라고 국민을 불렀다. 이후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을 주로 썼고 이는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까지 계속됐다. 김영삼 대통령은 수식어 없이 단순하게 "국민 여러분"을 애용했다. 김대중 대통령 때에는 '존경'과 '사랑'이 등장해 늘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이후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 때에 '사랑'을 뺀 채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자리 잡았다.

온 국민이 경청하는 대통령의 연설 치고 취임사만 한 것이 없다. 취임사는 대통령으로서 가장 많은 귀에 대고 말하는 울림이 큰 연설이다. 대통령의 취임 연설은 국정 수행의 첫 단추를 끼우는 중요한 의식이기도 하다. 

그 취임사에는 새 대통령의 현실에 대한 상황인식과 함께 국정운영에 대한 철학과 비전, 구체적인 실천을 위한 청사진이 그려진다. 국민과 함께 가는 길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안겨 주는 내용도 포함된다. 

취임사의 '말'은 새 대통령의 집권 기간 중 국력을 결집시켜야 할 국정목표여서 주목 받는다. 

우리의 경우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사를 보면 국민화합, 새 시대, 변화와 개혁, 정의사회, 부패척결, 갈등해소, 복지확대, 땀과 눈물 등등 좋은 말들은 거의 다 등장했다. 좋게 보면 많은 것을 이뤄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 있으나 다른 시선으로 보면 통치철학의 빈곤일 수도 있다.

취임사에는 많은 약속이 담긴다. 약속의 원전(原典)인 셈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지 못하고 쓸쓸하게 퇴임한 이유는 바로 취임사의 정신을 훼손하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숱한 약속들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취임사가 별로 없는지도 모른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저는 이 소중한 땅에 기회가 넘치게 하고 싶습니다. 가난해도 희망이 있는 나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라, 땀 흘려 노력한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성공의 기회가 보장되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고자 합니다." 바로 5년 전 이명박 대통령 취임사의 한 토막이다. 
하지만 임기 말년에는 '경제민주화'란 가치가 왜 그렇게 많이 국민들 가슴에 와 닿았을까. 섬김의 정치'를 다짐했지만 그것이 실천됐다고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대통령이 국정을 펼치면서 가끔씩 취임사를 꺼내 읽고 또 읽어서 그 정신을 되새겼더라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취임식에서 행한 취임사는 향후 5년 임기 동안 새 정부의 국정비전을 새삼 음미해 볼 수 있는 텍스트가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날 취임사를 통해 나라가 부강하고 국민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등 세 가지의 국정비전과 목표를 제시했다. 

박근혜 시대를 이해하는 세 가지의 핵심 키워드가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의 취임사는 이 세 가지의 국정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전략도 밝혔다.

 우선 경제부흥을 위한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는 과학기술과 산업, 문화와 산업의 융합을 통해서 꽃 피울 수 있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이 추구하는 경제의 중요한 목표라고 밝혔다. 경제민주화가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되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또 국가가 발전해도 국민의 삶이 불안하다면 의미가 없다며 국민행복을 위한 복지와 교육, 안전이 절대 필요하다고 말했다. 21세기는 문화가 곧 국력이 되는 시대라며 문화의 가치로 사회갈등을 치유하고 문화적 격차를 해소하겠다고도 밝혔다. 인종과 언어, 이념과 관습의 굴레를 뛰어넘어 삶을 바꾸는 문화융성의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대체로 박 대통령의 취임사는 시대의 흐름과 가치를 반영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 취임사가 5년 후 이임사에서 긍정적 의미로 다시 음미될 수 있도록 간절히 바란다.
<관련 기사 정치면: 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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