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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8 22:54
한국 드라마를 싫어하는 이유
조회 수 2627 추천 수 0 댓글 0
나는 원래 한국에
있을 때부터 TV를 그다지 많이 보는 편이 아니었다. 그냥 어쩌다가 TV 앞에 앉게 되면 그냥 그 순간 방영 중인 프로그램을 별 생각없이 봤을 뿐, 특별히 챙겨보는
드라마나 오락프로도 없었다. 그러다가 오히려
영국에 와서 한국의 오락프로나 VJ특공대 같은 프로들을 챙겨보게 되었다.
정작 한국에
있을 때는 관심도 없었던 한국의 TV 프로그램들이 영국에서는 어찌나 재미있던지,
아마도 나는 그러한 한국의 TV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 것
같다. 그런데, 반대로 한국에서는 별 생각없이 봤던 한국의 드라마들은 오히려 영국에 와서 보니 점점 싫어진다. 그것은 아침
드라마나 주말 연속극과 같은 가장 평범한 한국의 현대극 드라마들이 가장 많이 할애하는 부분이 가족, 친척과 지지고 볶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살
때는 그런 드라마들을 보면서 그게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는데, 영국에 와서 살면서 한국의 드라마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니 그것들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그 중에서 안 그런 드라마들도 종종 있다. 가령 나는 ‘추노’같은 드라마를 너무나 재미있게
보았고, 또는 전문직의 세계를 다루거나 어떤 독특한 소재나 주제를 다룬 드라마들은 좋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들은 결국 가족, 친척들과 지지고 볶는 내용이고, ‘출생의 비밀’, ‘반대하는 결혼’, ‘불륜’ 등의 소재들도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대부분 한국인들은
주말 저녁 그런 드라마를 보면서 가족, 친척들 간 갈등을 빚고, 누구는 위세를 떨고 누구는 굴욕을 당하고, 때로는 고함을 치며 때로는 오열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어떤 쾌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나왔다 하면
항상 기본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여러 명이 우글거리는 대가족의 풍경이 아닐까? 한 개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없고, 모든 일에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끄러운 집안 풍경
말이다. 김수현 작가는
이렇게 가족들 간, 친척들 간 지지고 볶는 대사를 가장 맛깔나게 칠 줄 아는 작가다.
아마도 기성세대 시청자들이 여전히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극중
인물 중 한국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표준적이고 순종적인 인물을 놓고 시청자들은 ‘국민 남편’이니, ‘국민 며느리’니 하면서 칭찬한다. 아마 실제 현실에서였더라면
‘국민 남편’이나 ‘국민 며느리’는 개인의 삶이나 자유시간은 없고, 평생 가족들과 친척들 눈치 보고 비위 맞추느라 무척이나
숨막히고 스트레스 받는 일상을 살다가 우울증에라도 걸렸을텐데 말이다. 그런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들 속에서 ‘개인의 선택, 개인의 삶’은 존재하기 어렵다. 남녀간의 교제, 결혼, 직업, 사업, 유산상속, 각종 집안일 등을 놓고 가족, 친척들이 참견하고,
반대하고, 작전을 세워서 일을 만들고, 여하튼
난리 부르스를 떤다. 그런 드라마를
재미있게 시청하니 한국인들은 실제 현실에서도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렇게 평생 지지고 볶는 게 한국인들만의 ‘끈끈한 가족 문화’라느니 ‘사람 사는 정(情)’이라느니 하면서 미화시킨다. 그러면서 정작
친척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본인보다 불행한 일을 겪으면 위로해준답시고 오히려 그것을
즐긴다. 남의 일에 실컷 참견하고 함부로 판단해놓고서, 정말 그 사람이
진심어린 공감과 위로를 필요로 할 때는 오히려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외국인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갈 것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 하기에도 바쁜 시간에 왜들 그렇게
남의 일에 참견을 하고 서로 지지고 볶는지, 그 사람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면서. 외국 드라마를
보면 가족, 친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등장하지 않고, 어쩌다가 등장한다고 해도 한 사람의 삶을
놓고 함부로 판단하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왕족, 귀족이 등장하는 시대극이나, 특별히 한 집안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춘 드라마가 아닌 이상 외국
드라마에서 가족, 친척들이 비중 있게 등장하는 경우는 없다. 드라마는 결국
현실을 반영하는 것인 만큼, 결국 한국인들의 삶에서는 가족, 친척들과
지지고 볶는 일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면, 외국인들의 삶에서는 그런 일이 별 비중이 없다는 얘기도
된다. 그보다 외국
드라마의 내용은 철저히 그 드라마가 다루고자 하는 명확한 소재와 주제에 충실하고, 주인공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소신껏’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것은 결국
‘가족주의’ 혹은 ‘집단주의’로 대변되는 한국문화와 ‘개인주의’로 대변되는 서양문화
간 차이일 수도 있다. 그리고, 둘 중에서 어느 한 편이 무조건 옳거나 무조건 좋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나는
아무리 영국에 살고 있어도 결국 한국인이니 죽는 날까지 한국문화를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길지 않은 소중한 인생을 그렇게 가족, 친척들과 지지고 볶느라 허비하는 한국 드라마
속 풍경을 결코 좋아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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