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반가운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필자가 유럽에 근무할 당시 오리엔탈 식품을 전문적으로 수입하는 바이어였다.
“한국식품은 유럽에서 더 이상 동양계 마켓에서만 판매되던 시기는 지났다.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대형매장에서도 유럽식품과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유럽의 소비자들도 이제 한국산 소스, 라면, 스낵, 음료, 김을 즐겨 찾으며, 김치와 불고기가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음식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그는 한국식품을 수입하며 제법 재미를 본 듯 하며, 한류와 한국의 식문화에 푹 빠져 있는 듯 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세계 농식품 시장을 주도하는 국가들이다. 유럽은 풍부한 농산물과 선진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식품을 발전시키면서 농식품의 세계화를 주도해 왔고, 특히 선진화된 마케팅 기법을 토대로 세계 각국의 소비자들이 유럽산 와인이나 치즈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이처럼 유럽의 농식품이 세계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보니, 처음에는 우리 농식품 수출에 큰 기대를 걸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10여년 동안 유럽시장의 문을 꾸준히 두드린 결과, 까다롭기로 유명한 현지의 대형마켓에서도 관심을 보이는 등 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어쨋거나 바이어나 벤더들에게 한국식품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된 것은 다행이라 하겠다.
유럽에 대한 우리 농식품 수출은 꾸준히 증가해 2010년 3억달러, 2012년 4억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이어가며 한국 농식품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유럽이라는 독특한 시장구조를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
첫째는 문화적 접근이다. 농식품은 일반 공산품과 달리 ‘먹을거리’라는 하나의 문화이다.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유럽의 소비자들에게 한국 음식문화의 우수성과 전통성은 커다란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오피니언 리더를 대상으로는 한국의 식문화를 컨텐츠화 하여 홍보함과 아울러, 일반대중에게는 한류를 앞세워 우리 식문화의 저변을 확대하는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둘째, 지역별 차별화 전략이다. 유럽은 매우 복합적인 시장이다. 유럽연합 27개 나라와 동유럽 국가, 외국계 거주자 등 입맛이 천차만별이고 대형유통매장에서부터 고급백화점에 이르기까지 유통채널도 복잡하다. 따라서 유럽의 수입업체, 전문유통업체들과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동시에, 이를 국가별•지역별 특성에 따라 관리할 필요가 있다. 좀더 자세히 언급하면 네덜란드는 유럽 전역으로 중개무역이 활발한 나라인 만큼 바이어들과의 직접적인 만남에 주력하고, 동유럽은 타 음식문화에 대한 수용성이 높은 시장인 점을 고려해 전문벤더들과의 제휴를 확대하며, 스페인 등 남유럽은 수산식품과 관련한 네트워크를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세계 농식품 문화의 교류가 활발한 프랑스에서는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홍보를 통해 한국 농식품의 건강한 이미지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몇년전 김치 홍보행사를 열었을 때만 해도 파리 시민들은 김치를 시식한 후 잔뜩 인상을 찡그리곤 했지만, 이제 김치는 과학적이고 개성 있는 한국의 발효식품으로 꽤 널리 알려져 있다.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유럽시장에서 우리 농식품은 이처럼 조금씩 인지도를 높이고 저변을 넓혀가는 중이다.
바이어와 전화통화를 마치고 나서, 우리 전통식품인 막걸리와 된장을 유럽인들이 즐기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들이 와인과 치즈를 즐길 수 있다면, 유럽인들도 당연히 막걸리와 된장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그 방법론을 면밀하게 분석함과 아울러, 수출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우리 농식품과 식문화에 대한 국민들의 애정과 자신감이다.
세계 각국으로 뻗어 나가고 있는 우리 농식품에 대해 자신감을 갖자. 그리고 한국에서 혹은 외국에서 만나는 외국인들에게 우리 식문화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맛보게 해주자.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한국 농식품의 전도사이자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한국 농식품의 세계로 통하는 길, 가까운데서 찾아보자.
변동헌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aT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유럽지사장 역임
aT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본부 근무
경영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