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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1 23:58
Exmoor 여행기 (1)
조회 수 2065 추천 수 0 댓글 0
누구나 인생살이에 저마다의 고단한 짐들을 지고 살지만, 유독 최근 들어서 지치게 되는 일들이 여럿 일어났다. 하나의 고민거리가 해결될만하면 또 다른 고민거리가 찾아오고, 그렇게 ‘산 넘어 산’처럼 삶의 과제들이 끊이질 않았다. 게다가 평범한 직장인 헤드헌터로서 지난 6년 간 같은 자리를 지켜오면서 어느새 ‘사람’에 대한 피로가 많이 누적되었다. 철저하게 정시 출퇴근이 지켜지는 직장이니 순전히 일하는 시간만 따진다면 업무 강도는 그다지 높다고 볼 수 없지만, 업무의 대부분이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게다가 때로는 사람들과 그야말로 지지고 볶는 상황도 생기다 보니 그 스트레스와 피로감이 상당했다. 콩나물 시루떡에 몸을 부대껴야 하는 출퇴근, 고층 건물들과 복잡한 도시, 사람들과 지지고 볶는 일상, 그 모든 것들로부터의 탈출이 간절해지던 차, 마침 찾아온 부활절(Easter) 연휴를 이용해 2박 3일로 여행을 다녀왔다. 행선지는 Exmoor. 런던에서 서남쪽으로 3시간 반 가량 거리에 위치한 곳이며, 지리적으로는 North Devon에 속하는 곳이고, 이 지역을 통틀어 Somerset 지방이라고 부른다.
Exmoor는 국립공원(National Park)에 해당하는 지역이며, 나는 Exmoor 중에서도 Bossington이라는 아주 오래되고 작은 시골 마을과 Bossington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바닷가 마을인 Lynton and Lynmouth을 다녀왔다. 숙소는 Bossington에 있는 오래된 B&B로 잡았다. 이번 여행은 어떤 흥미로운 볼거리를 즐기기 보다는, 일상으로부터의 온전한 탈출이 될 수 있는 휴식이 목표였고, 그러기에는 깔끔하고 편리한 호텔보다는 오히려 한적한 시골 마을의 B&B가 어울렸다. 내가 머문 B&B는 무려 1400년대에 지어진, 정말 오래된 주택이었다. 친절한 영국인 부부가 운영을 하고 있었는데, 전에 이곳에 숙박했던 동양인은 일본인 한 명이 유일했고, 한국인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지역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혹은 인기가 없는 지역이고, 오히려 토종 영국인들이 선호하는 지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행 중 동양인뿐만 아니라 유색인종 자체를 거의 마주치지 않았다. Bossington은 정말 작고 한적한 시골 마을이라 길도 차 한 대만 다닐 수 있는 옛날 도로 그대로였고, 그래서 반대편에서 오는 차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둘 중 하나는 넓은 터가 나올 때까지 뒤로 후진을 해서 길을 비켜줘야 했다. 그럼에도 너무나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마을, 대부분 나이 지긋한 토종 영국인들이 오랫동안 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고, 말을 타고 여유롭게 마을을 산책하는 멋진 할머니도 있었다. 동네 사진을 여럿 찍었는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내가 찍은 사진과 거의 같은 각도에서 찍힌 흑백 사진을 발견했는데 1955년도에 촬영된 사진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진 속 모습은 지금과 거의 같았다.
한국의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들 역시 이렇게 그 모습 그대로 남아주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하지만 아쉽게도 어릴 적 살던 동네는 고사하고 지금의 고향집이 있는 일산 신도시조차 1년이 멀다하고 갈 때마다 너무 많이 바뀌어 있다. B&B에서 10분 가량만 걸어가면 광활한 해변이 있고, 그 해변을 좌측으로 끼고서 산을 따라 하이킹 코스가 있다. 하필 날도 흐려지고 콧물이 날 만큼 찬 바람이 불었지만 혼자서 이 코스를 밟아보기로 했다. 좁은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올해 3월이 지난 50년 중 가장 추운 3월로 기록되는 만큼, 아직 꽃들이 제대로 피어 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간간히 노란 꽃들이 살짝 피어 있었다.
어느새 발 아래 펼쳐지는 멋진 풍경, 비록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흐리면 흐린 대로 그렇게 멋진 풍경을 내려다보며 마음에 쌓인 짐들을 잠시나마 덜어내 보았다. 저 광활한 자연을 바라보니 우리가 일상 속에서 지지고 볶는 그것들이 사실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닌데, 무엇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아둥바둥 살아가야 하는지... 왼편의 멋진 풍경은 엄청난 높이의 절벽 아래 있었고, 좁은 길에서 발이라도 헛딛거나 미끄러지는 날에는 바로 하늘나라로 갈 수 있는 다소 위험한 하이킹이었지만 그래도 너무나 멋진 경험이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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