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 잘하려면 갑을 관계만 잘 알면 된다". 개그콘서트 중 즐겨보던 코너가 있다. 지금은 폐지됐지만 보고 있노라면 직장인으로서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슬프면서 우습기도 한 상황에 '낄낄대던' 기억이 있다.
갑을 컴퍼니라는 코너다. 선배는 신입사원에게 늘 갑을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곤 했다. 이에 신입사원은 회사 선배와 희숙대리로 불리는 노처녀 상사, 만취한 상태로 등장하지만 언제나 '갑'인 사장 앞에서 쩔쩔매곤 한다. 회사 내 다양한 캐릭터와의 좌충우돌이 이야기의 큰 줄기다.
최근 보도되는 일련의 사건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가 거대한 '갑을 컴퍼니'가 된 셈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다만 상식적인 수준의 도덕적 의무만이라도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슈 중 하나는 고위직 인사들의 도덕성의 결여에 대한 것이다. 대기업 상무의 대한항공 승무원 폭행사건이 알려져 충격을 안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제빵기업 회장이 호텔 직원의 뺨을 때린 사건이 일어나자 사회 고위층 인사들의 도덕적 해이함에 대한 문제가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대한항공 승무원 폭행사건과 관련 해당 임원의 신상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라면과 관련된 패러디가 봇물을 이루기도 했다. 임원이 다니는 회사의 인터넷이 마비되기도 했으며, 당사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결국 승무원 폭행사건으로 해당 임원은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빵기업 회장이 차를 빼달라는 호텔 직원의 뺨을 지갑으로 때린 것 역시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차를 빼달라는 말이 뭐가 그리 참기 어려운 말인지, 자신의 자존심이 지키라고 있는 법이나 규칙, 질서보다 중요한 것인지 묻고 싶다.
이 사건 역시 인터넷에서 논란이 되자 해당 기업의 회장은 회사를 폐업하겠다고 나섰고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해당 기업의 직원들은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됐다.
설상가상 남양유업 본사 사원이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하는 모습은 갑의 횡포를 대표적으로 드러내며 사회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욕설이 담긴 파일은 유튜브와 SNS를 통해 온라인상에 급속하게 퍼졌으며 이에 대표이사 명의의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네티즌들의 뜨거운 관심은 이어지고 있으며 남양유업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더욱이 남양유업 사태는 본사가 대리점주를 상대로 하는 일방적인 횡포, 불공정 거래에 대해 근본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여론으로 번지고 있다. 정치권은 부랴부랴 토론회를 개최하거나 각종 방송을 통해 인터뷰를 하며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데 핏대를 세우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통한 경제적 불평등 해소, 천박한 자본주의의 병폐 해소' 등 다양한 표현이 쏟아진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 혹은 갑의 위치에 있으면서 자신 외의 다른 사람들을 낮게 여기거나 횡포를 일삼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이 참으로 씁쓸하게 느껴진다. 지금 현재 자신의 위치나 지위, 부와 권력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원래 자신의 옷인 것처럼 생각하며 안하무인인 사람들이 많은 현실이 가뜩이나 답답한 세상을 더욱 답답하고 착잡하게 만들고 있다.
계약상의 갑과 을의 관계는 힘을 가진 권력의 갑과 을의 관계가 된 사회. 하지만 세상에는 갑을 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갑을 관계의 병폐를 지켜보는 제3의 병도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지켜만 보지 않을 때, 그런 부조리에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나설 수 있을 때, 그때 진정한 진보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