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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도부터 스승의 날 즈음이면 나의 학창시절 선생님들에 대한 얘기를 써왔는데, 지난 해에 이어 고등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본다.


902-전성민 사진.JPG



 

내가 졸업한 명지남고는 주간(1) 10, 야간(2) 10, 그러니까 한 학년 당 남자반만으로 총 20반씩이나 되었고, 게다가 여선생님이 단 한 명도 없는, 그야말로 진짜 ‘남고’였다.

 

게다가 명지고는 사립학교여서 같은 선생님들이 길게는 수십 년 씩 근무하셨으니, 그야말로 혈기왕성한 남학생들을 다루는데는 이골이 난 베테랑 남선생님들로 포진된 환경이었다.

 

지금 와서 떠올려 보면 우리들에게 제법 자상했던 유순한 선생님들이나 수업을 잘 가르쳤던 선생님들은 별로 기억이 안 나는데, 우리들을 못살게 굴었거나 개성이 엄청 강했던 선생님들은 신기하게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생물을 가르쳤던 이X성 선생님은 본인이 직접 ‘풍개’라는 호를 붙였던 분이다. 인상이 제법 험악하셨는데, 수업 시간에 아무런 교재도 안 들고 들어오셔서 조금 의아했다.

 

험악한 인상과는 달리 폭력적인 분은 전혀 아니었고, 그보다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다소 시니컬한 분이셨다.

 

놀라운 것은 앞서 언급했듯 수업에 아무런 교재도 안 들고 오셨던 것은 모든 필기 내용과 수업 내용이 선생님의 머릿속에 완벽하게 저장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같은 학교에서 같은 과목을 오래 가르쳐서 그런 내공(?)이 쌓이셨던 것 같다.

 

이 선생님이 기억에 남는 것은 학기 중 두 번 정도 노트 검사를 하셨는데, 평범한 노트 검사가 아니었다.

 

노트를 들고 나가면 무조건 일단 엎드린 뒤에 각목으로 한 대를 맞는 게 기본이었고, 노트 상태가 별로인 경우에는 더 맞았다. 그러니까 노트 상태가 좋아도 무조건 한 대는 맞는 것인데, X성 선생님은 이를 놓고 ‘사제간의 정을 돈독히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각목이 언급되니 또 기억나는 선생님이 있다. 맹세코 나는 학창시절 별 말썽을 부린 적이 없고,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별로 주목받지 않는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다. 당연히 선생님들에게 맞은 기억도 별로 없다.

 

그런 내가 한 번 제대로 맞은 적이 있다, 단 한 분이었던 음악 선생님 손X규 선생님으로부터.

 

음악하는 사람들이 다소 성격이 예민하고 괴팍한 면이 있는데, 이 분이 딱 그런 성격이셨다. 기분이 좋을 때는 파격적인 농담도 하시다가, 한 번 열을 받으시면 헐크로 변하는 스타일.

 

하루는 음악 시간에 음악 감상을 했다. 가만히 앉아서 선생님이 틀어주는 클래식 음악을 감상만 하면 되는 것이니 우리들로서는 나름 편안한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음악을 틀어 놓으시더니 의자에 깊이 앉으시고 눈을 감으셔서 마치 잠이 드신 듯 했다.

 

당시만 해도 또래 친구들 중 기타를 치는 녀석이 정말 드물었는데, 마침 기타를 치는 녀석이 옆에 앉아서 우리는 기타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는데, 정말 소곤 소곤 작게 떠들었다.

 

순간 잠이 드신 줄만 알았던 선생님이 벌떡 일어나시더니 우리 둘을 앞으로 나오라고 하신다. 엎드려뻗쳐를 시키시더나 각목을 들고 와서는 일인 당 한 네 대 씩은 때리셨는데, 정말 온 힘을 다해 때리신다는 게 느껴졌다.

 

암만 생각해도 그게 그렇게까지 죽도록 맞을 일은 아니었건만, 그날 유난히 선생님의 기분이 안 좋으셨던 것인지.

 

그런데, 더 웃긴 일은 세월이 흘러 내가 대학교 2학년이던 시절 선생님이 내가 사는 일산으로 이사 오셔서 우리 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오셨다는 점이다.

 

그렇게 죽도록 맞은 기억이 있지만, 막상 세월이 흐린 뒤 선생님을 우연히 다시 만나니 왜 그리도 반가운지, 선생님을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더니 나를 기억조차 못하신다. 나를 각목을 때리신 것은 더더욱 기억 못 하시겠지.

 

우리들에게 직접 매를 드시진 않으시면서 기발한 벌칙으로 우리를 다르시렸던 선생님들도 있었는데, 영어를 가르치셨던 정X일 선생님이 바로 그런 분이셨다.

 

해병대 출신답게 떡 벌어진 어깨에 늘 남성적인 에너지를 풍기셨던 선생님이 개발한 벌칙은 바로 책상에 이마 들이받기였다.

 

단순히 이마를 쿵 찧는 게 아니라 선생님이 “337!”하시면 이마로 책상을 힘껏 받으면서 “쿵쿵쿵 쿵쿵쿵 쿵쿵쿵쿵쿵쿵쿵” 소리를 내면서 337을 구현해야 했다.

 

337외에 다양한 박치기들이 있었는데, 가령 선생님이 “기차!”하시면 기차가 시동을 걸고 출발해서 전속력에 도달하듯 처음에는 천천히 책상을 받다가 나중에는 엄청난 파워와 속도로 책상을 받아야 했다.

 

어쩌면 그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벌칙이었고, 또 남고였기에 가능했던 벌칙이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그 시절 우리들은 누가 벌칙을 받건 참 즐거운 분위기에서 벌칙을 받았던 것 같다.

 

요즘처럼 선생님이 조금만 체벌을 가해도 학생들이 이를 신고하고, 학부모가 학교를 찾아와 선생님을 폭행하고, 심지어 학생이 선생님을 폭행하기도 하는 시대에는 아마도 이런 벌칙을 도입했다가는 논란이 될 듯 하다.

 

선생님들의 체벌, 참 어려운 문제다. 선생님들도 감정을 가진 인간인데, 과연 철저히 이성에만 의지해서 ‘사랑의 매’를 실현하는 게 가능할까?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선생님들의 체벌이 과거에 비해 현격히 감소했음에도, 학생들의 학교폭력은 과거보다 더 심해졌으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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