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5월이다. 윤창중 사건은 국격(國格) 추락사건으로 전락했다. 청와대가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국민들의 마음까지 무너트리고 있다. 대한민국 청와대가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됐을까. 그렇게도 인물이 없는 걸까. 대통령의 눈이 과연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온갖 의심이 꼬리를 문다.
청와대가 바로 서야 정권이 산다. 그래서 청와대엔 바른 신념이 충만하고 날선 기강이 적력해야 한다. 청와대가 흔들리면 정권이 죽기 때문이다. 정권 유지의 기본은 청와대의 건강성에서 출발한다. 건강성의 기본은 도덕성이다. 그리고 비서실은 청와대의 핵심 중 핵심이다. 비서실이 건강해야 청와대가 건강한 까닭도 여기 있다.
그러나 청와대 비서실은 역대 정권에서 권위와 도덕성을 곧잘 잃곤 했다. 고위직이 뇌물수수 등으로 감옥에 간 사례도 있다. 그러다 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청와대는 '깨진 유리창'이란 비판을 받았다. 현 정부도 지금 그 전철을 밟고 있는 것 같다. 새 정부 출범 3개월도 안 돼 현직 대변인이 해외 순방 현지에서 중도하차했다. 초유의 일이다. 그것도 통역 안내를 맡은 재미교포 20대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입장과 의중을 전하는 국가대표 '입'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국격의 훼손이고, 국민의 치욕이다. 첫 여성 대통령 수행 도중 벌어져 충격은 배가되고 있다.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사건이 됐다. 한 마디로 개인의 방종이 화를 부른 사건이다. 청와대의 미숙한 대응은 화를 키웠다. 이제 청와대는 사건의 실체를 철저히 가려야 한다. 그리고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그런 다음 관련자들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그래야 유사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윤창중 전 대변인 발탁인사 당시 야당은 거세게 반발했다. 기자들 사이에선 숱한 구설이 나돌았다. 이번 사건이 '예고된 참사'라는 말도 여기에 근거하고 있다. 청와대 인사 실정(失政) 사례가 될 것이란 예측도 같은 이유에서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성폭력과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을 4대 악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척결을 약속했다. 따라서 청와대의 이번 사건의 처리 결과는 아주 중요하다. 대통령의 의지를 가늠하는 리트머스시험지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신속한 사건 규명이 급선무다. 그리고 엄중한 책임자 처벌만이 실추된 국격을 회복하는 길이다. 근거 없이 퍼져 나가는 각종 루머를 차단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피해 여성에게 사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다행이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허태열 비서실장의 대국민사과에 이어 곧바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번 방미 일정 말미에 공직자로서 있어서는 안 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끼쳐 드린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공식 사과했다.
사과 수위도 당초 예상보다 높였다. 자신의 '입'인 청와대 대변인의 충격적인 성추문에 대한 책임감을 통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직접적인 입장 표명으로 사태 처리 과정에서 볼썽사나운 혼선 등을 차단하기 위한 것 같다. 국민을 상대로 한 사과라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이다. 다만 형식적으로 공식적인 기자회견이 아니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언급하고 넘어간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더 나아가 이번 사건은 자칫 청와대를 정말로 '깨진 유리창'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 그만한 폭발력을 갖고 있다. 얼마 전 벌어졌던 남양유업 영업 사원의 막말 사건과는 급이 다르다. 포스코에너지 임원의 승무원 폭행 사건과는 격이 다르다. 재발방지를 위한 청와대의 인사 시스템 개혁을 주문한다.
'깨진 유리창' 이론은 단순하다. 사소한 무질서를 그냥 놔두면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범죄심리학 이론이다. 예컨대 고객에 대한 사소한 실수를 그냥 두면 기업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도 다르지 않다. 청와대의 가장 중요한 고객은 국민이다. 그래서 청와대 조직원 개개인의 도덕성은 아주 중요한 덕목이다. 각종 비윤리적인 행위와 비리를 통제해야 부조리를 막을 수 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을 부패에 적용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작은 무질서를 가볍게 여기면 나중에 심각한 범죄를 불러온다. 청와대 조직원 스스로 질서를 지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라는 더욱 병들어 갈 수 밖에 없다. '깨진 유리창'이 여전히 유효하고 분명한 공식이 돼 선 곤란하다. 적어도 청와대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