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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신에세이
2006.08.13 17:40

또 하나의 나

조회 수 3220 추천 수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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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하도 수영장에 가자고 졸라대는 바람에 기왕이면 일석이조로 아이의 요구도 채워주고 덤으로 한번 배워두면 평생을 두고 유용할 수영강습반에 넣어 주었다.  수영장 물에 소독약을 많이 넣었는지 나는 피부가 약한 탓에 수영장에만 갔다오면 손발부터 따갑고 난리가 나서 진정이 되려면 며칠씩 걸리곤 했다.  그래서 보호자는 물에 들어가지 않고 근처에서 보고만 있어도 되는 어린이 수영교실, 생각만으로는 정말 이상적이었는데 실제로 수영강습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지난 날의 내 슬펐던  모습을 또 한번 보게 되었다.  내 아이를 통해 보는 내 슬픈 자화상이라니…
  수영반에 들어가니 다른 큰 아이들에 비해 우리 아이는 나이가 제일 작은 축에 속해서 그랬는지 제일 왜소해보였다.  일단 시작하니 제일 못하는 아이가 제일 가장자리에 남는다고 그 아이가 바로 우리 아이였다.  아이고, 애가 하필이면 이런 건 안닮아도 되는데 제 엄마를 닮아가지고서리…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수영장 가장자리를 벗어나면 곧바로 죽기라도 하는 양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선생님이 두분이었는데 한 선생님은 진도대로 척척 잘 나가는 다른 아이들을 지도하고 한 선생님은 전적으로 우리 애를 지도하게 되었다.  완전히 개인교습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걸 보고 좋아라할 수만도 없었다.  제 엄마도 수영반에서 제일 꼴찌였었는데 그 아들도 꼴찌라니 대를 이어 내려오는 전통이라고 하기에는 참 씁쓸하기만 했다.  그래도 꼴찌에게 보내는 격려의 갈채를!
초등학교 6학년때 저수지에서 땅 짚고 헤엄치다 수렁에 빠져드는 바람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던 적이 있었다.  잘못하면 접시물에도 빠져죽는다더니 온갖 발버둥끝에 간신히 일어서보니 물이 내 배꼽 근처에 차는 곳이었다.  그렇게해서 안그래도 물을 무서워했던 내가 더더욱 물을 무서워하게 되었었는데 정말 큰 마음 먹고 수영강습반에 등록하게 된 것은 순전히 교통사고 후유증을 없애려고 한 이유였다.  어떤 어르신께서 수영이 물리치료에 좋다고 권해주셨기 때문이었다.  
남들은 강습 첫날에 아니면 한이틀 지나자 다 물에 떴는데 맥주병중에서도 상맥주병이었던 나는 일주일이 꼬박 다 지나고서야 물에 뜨게 되었다.  그것도 수영강습이 끝나는 대로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않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기를 쓰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덕분이었다.  와, 정말 물에 뜨는 그 순간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정말 뜨다니…  에이, 정말 물에 빠져 죽어버려야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내 몸에 그동안 기를 쓰고 주었던 힘이 다 어디로 빠져나갔는지 마침내 몸이 물위에 부웅 뜨는 것이었다.  
그때 수영선생님은 나더러 남들보다 육수(?)를 몇 배로 더 많이 먹었으니까 수영레슨비도 더 많이 내야한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놀려대곤 했다.  정말 그때 마신 물들 생각하면 어휴, 끔직하다.  
애, 너 내일은 수영장에 가서 물에 빠져 죽어 버려야지, 생각하고 해봐.  그러면 죽는 게 아니라 물에 뜨게 된다니까.  엄마도 옛날에 그랬어.  뭐든지 겁내지않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 잘 하게 되는 거야.  처음부터 다 잘하는 사람은 없어.  너 자전거 타는 것도 그랬잖아.  넘어져도 울지않고 다시 일어나서 자꾸 연습을 하니까 지금은 혼자서도 탈 수 있게 됐잖아.  수영도 마찬가지야.  하나님이 원래 아이들을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물에서 헤엄쳐다니게 만드셨기 때문에 수영장 가서도, 어 이거 우리 엄마 뱃속에 있을 때랑 비슷한데, 하고 생각하봐.  그랬더니 우리 아이 왈, 엄마가 물을 많이 마셔서 그랬겠지.  누굴 닮아서 참 논리적(!)이다.
어쨌든 너무 두려워말고 그냥 편하게 생각해.  좀 못해도 괜찮아.  걱정하지마.
하루 이틀이 지나자 겁에 질린 아이 얼굴에 간간히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여전히 발은 수영장 바닥에서 떼지않고 걸어다니지만, 다른 건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며 즐거워하는 걸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다른 엄마들도 자기 애들이 처음엔 다 우리 애같았다면서 나더러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격려해준다.   내일은 마지막 수영레슨이 있는 날이다.  선생님이 직접 물에 들어가서 아이가 물에 뜨도록 도와줄 예정이란다.   우리 애도 자신의 몸이 물에 부웅 뜨는 그 기쁨을 속히 누리게 되었으면 싶다.  꼴찌였던 엄마가 그래도 포기하지않고 마침내 해냈으니까 우리 애도 그런 엄마의 오뚝이 정신까지도 물려받았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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