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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신에세이
2007.03.31 00:17

호떡부인 야단났네! (4월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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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바자회’라는 걸 해보았다.  그냥 남들이 차려놓은 바자회에 들러서 한번 휘익 둘러보는 정도가 아니라 주최측의 일원이 되어 바자회를 연다는 게 정말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몸소 겪어보는 계기였다.  좋은 목적으로 사용될 기금마련을 위해서 교회의 여전도회에서 연 것이었는데 나는 음식중 하나인 호떡을 구워서 팔기로 되어 있었다.  가정교회 모임때에 몇번 만들어 갔었는데, 콩알만한 소문이 어느 새 메주항아리만큼 커져서 정말 본의아니게 내가 호떡을 기가 막히게 맛있게 잘 만드는 사람으로 알려져버렸다.  
평소에는 눈짐작으로 대충 하던 것을 이번에는 큰 일-열배의 소득을 올려야 했었다!-을 앞두고 그동안 한번도 안쓰던 계량컵까지 꺼내서 더운 물, 찬 물 비율도 제대로 맞추고 그외 자질구레한 사항까지 만전을 기해서 호떡반죽 준비를 끝냈다.  각본대로라면 일사천리, 대성공작으로 나와야 분명했다.  
그러나 인생이 어찌 각본대로 흘러간단 말인가?  하루 전날 밤 실험삼아 호떡을 하나 만들어 보았는데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할 정도로 반죽의 찰기가 알맞었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렇게 배신을 때릴 수 있단 말인가?  바자회 손님들을 위한 호떡을 만들려고 반죽통을 열어 첫번째 호떡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전날과는 달리 반죽이 너무 질었다.  너무 삭았다고 (좀 좋게 표현해서 너무 발효되었다고) 할까?  손가락 사이사이로 줄줄줄 미끄러져 내려가는 한웅큼의 반죽위에 겨우 호떡속(설탕과 땅콩가루, 계피가루의 혼합물, 비율은 안 가르쳐주지.)을 올리고 이리저리 끌어잡아 겨우 마무리를 했다.  그래도 옆구리 팍팍 터지는 호떡부인들!!!
이 많은 반죽으로 최소한 호떡 50개는 굽기로 되어 있는데  이 일을 어찌 하나?  내 얼굴은 혹시나 초장부터 찾아올지도 모르는 손님접대(!)용으로 미소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꺼이꺼이 땅을 치며 울고만 싶었다.  이미 바자회는 시작되었고 중간에 누굴 불러서 밀가루를 사오라 할 수도 없는데 타들어가는 내 속도 모르고 내 바로 옆에서 음료를 파는 김아무개 집사는 나더러, 호떡반죽을 너무 세게 당겨서 음료에 튀면 안되니까 좀 살살하란다.  마음이야 살살 하고싶어도 반죽이 내 맘대로 따라주질 않는데 어찌하란 말인가?  네다섯개까지 질디진 반죽으로 속으로는 눈물을 삼키며 초장에는 전혀 팔리지도 않는 호떡을 구울 동안 구원은 아주 멀리 있는 듯했다.  조아무개 집사님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사실 우리 교회에 나말고도 호떡을 아주 맛있게 잘 굽는 분이 조아무개 집사라고 또 하나 있다.  역시 전문가는 한눈에 척 알아본다더니 그 말이 틀림없었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조집사는 뭐가 문제인지 대번에 파악하고 밀가루-혹시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미리 준비해온 사모님께 감사-를 가져오더니 팔뚝을 착착 걷어부치고는 둘째딸까지 동원하여 그야말로 안성맞춤인 호떡반죽으로 만들어 주었다.  너무 고마워서 ‘뽀뽀’라도 한번 해줄까 했더니 사양하겠단다.  무드 없기는.  하긴  ‘뽀뽀’는 순전히 접대용으로 한 인사였는데 해달라고 했으면 큰 일 날뻔했다.  사실 나도 무드 빵점이니까.  
그 이후로는 정말 마음속의 눈물 끝,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호떡을 만드는 내 손길도 마음도 신나고 즐거웠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게다가 나중에는 호떡이 빨리 동이 나는 바람에  사먹고 싶어도 사먹을 수 없는 사람까지 생기는 행복한 아쉬움도 있었다.  
‘사람은 결코 혼자 살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달은 귀한 날이었다.  어린아이 신경쓰지않고 바자회에 전념하도록 우리 아이를 데려가 돌봐준 친구 토모코며, 초장의 질디진 반죽에서 제멋대로 떨어진 반죽방울들이 바닥에 굳어져 있는 것을 그 큰 키를 구부리고 앉아서 말끔히 닦아준 엄플비집사님도 그 본보기였다.  호떡 굽느라 지친 나를 대신해서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그분이 몸소 그런 수고를 해준 것이었다.  언제 어느 순간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할지 모른다.  도움을 받아야 할 때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도와 주워야 할 때에는 기꺼이 도와주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다.    
그러나 다음날 바자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신실하게 도와주신 김아무개 집사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하마터면 ‘꽈당’하고 뒤로 넘어지는 줄 알았다.
“집사님, 내년에도 또 바자회 열어서 그때는 호떡을 한말쯤 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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