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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신에세이
2008.03.20 02:39
꼴찌에게 박수를! (3월3주)
조회 수 2387 추천 수 0 댓글 0
최 영신(영국, Glasgow거주) 제법 덥수룩해진 아이의 머리를 이발시키러 동네 이발관에 들렀다. 마침 아이들 하교시간이라 손님이 많아 오래 기다려야되면 어떡하나 하는 내 염려와는 정 반대로 아이와 내가 이발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손님은 하나도 없고-이런 걸 파리 날린다고 해야되나?-네명의 이발사들이 앉아서 잡담을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전에도 몇번 들러서 아이를 머리를 깍아본 나는 그중 어느 분이 가장 베테랑 이발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의 머리를 깍겠다고 나선 사람은 그중 가장 나이가 적어보이는 젊은 이발사였다. 가만 보아하니 나이드신 솜씨있는 이발사들이 그 젊은 이발사를 키워줄 요량으로 먼저 손님을 받으라고 말없이 양보해주는 모양이었다. ‘댁 말고 저 베테랑 이발사로 바꿔주세요!’하는 요구가 거의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꾸욱 눌러 참았다. 하긴, 저분도 자꾸 연습을 해야 솜씨가 늘겠지. 그래, 내가 좀 봐주자. 파리만 날리고 있던 그 오후의 무료한 시간에 우리 아이랑 나는 한마리로 손님을 대거 몰고 간 구원부대나 마찬가지였다. 내 뒤로 손님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몰려들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어디를 가든지 손님을 몰고 다니는 체질이라고 하시던 가게에 손님만 없으면 나에게 전화를 걸던 분이 계셨는데 전화를 건지 1분도 안되어 반드시 손님이 오곤 했었다고 그분이 인정해주셨다. 그렇게 몰려들어온 손님들을 각각 이발사들이 분배하듯이 담당하여 머리를 깍아주었는데 그 베테랑 이발사가 더 늦게 시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두번째 손님의 머리를 깍기 시작하였을 때에도 우리 아이의 머리를 담당한 그 젊은 이발사는 그때까지도 자기 딴에 심혈을 기울이느라 낑낑대고 있었다. 그 젊은 이발사가 손이 떨릴 때, 나는 마음이 떨려왔다. 저러다가 우리 애 머리 망쳐 놓으면 어떡하나? 괜히 견습모델이 되도록 했나? 이럴 줄 알았으면 얼굴 좀 잠시 뻔뻔해지더라도 처음부터 베테랑 이발사에게 아이 머리를 맡길 걸… 그 젊은 이발사 다음으로 손님을 받은 이발사들은 벌써 한분씩 다 끝내고 다른 손님을 받기 시작했고 일하는 시간이 끝난 여성 이발사 한분은 먼저 퇴근을 하기까지 했다.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좀이 쑤신 우리 아이 보기도 좀 애처롭고 또 아이 머리 하나를 두고 거의 30분이 넘도록 씨름하는 그 이발사 보기도 힘들어져서, 이만하면 되겠느냐고 묻는 그 이발사의 질문에 나는 더이상 생각해볼 여지없이, 그만하면 됐다, 고 대답해버렸다. 내가 이것저것 요구하면 또 얼마나 시간을 끌 것이며 그 사람은 아직 솜씨가 숙련되지도 않았는데 얼마나 진땀이 흐르겠나 싶어 그렇게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요금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3파운드 50이란다. 20파운드를 주니 거스름돈으로 16파운드 50을 건네 주었다. 팁으로 50펜스를 줘도 10%는 훨씬 넘으니까 괜찮은데, 큰 맘먹고 대신 1파운드를 주었다. 다른 솜씨좋은 이발사들이 그 젊은 이발사보다 거의 두배 혹은 그 이상의 돈을 버는 동안에 그는 겨우 3파운드 50을 버는데 온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으니까 그 얼마나 애처로운 일인가? 내가 돈이 남아돌아서 후한 팁을 준 것이 아니라, 아직 서투르고 어색해도 최선을 다하는 ‘꼴찌’에게 보내는 무언의 박수갈채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었다. 누구나 날 때부터 베테랑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연습과 실수를 통해서 숙련된 기능공, 혹은 전문가가 될 터인데 그 동안의 미숙함을 누군가가 좀 참아주지않으면 어떡하랴? 나도 내 일을 할 때 내 미숙한 부분이 있었으면 누군가가 많이 참아주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나에게 거쳐간 수많은 학생들이 참으로 고맙게 여겨졌다. 다음번에 그 이발관에 들릴 때에는 그 젊은 이발사의 기술이 눈에 띄게 많이 발전해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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