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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신에세이
2008.04.09 23:05
섬기는 이가 큰 사람(4월2주)
조회 수 2142 추천 수 0 댓글 0
섬기는 이가 큰 사람 최 영신(영국, Glasgow거주) 청년부 수련회를 다녀온 젊은 청년들과 얘기를 조금 나누는데, 그중 한 청년이 하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자기는 누나의 고 3때 맨날 라면 끓여 대령했었는데, 막상 자신이 고 3이 되자 누나는 그렇게 해주질 않더란다. 남자는 그런 대접을 안받아도 누나는 공주니까 당연히 그런 대접을 받아야 되는 거야, 하는 우스개소리로 그 누나를 옹호하여 대답을 했지만 동생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사실 섭섭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한국처럼 남아선호사상이 은연중에 깊이 베어있는 나라에서 남동생이 어쩌면 당연하게 누나로부터 대접을 받았어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반대로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남동생이 모르는 게 하나 있었으니 고3 입시지옥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날개 달린 대학생이 된 누나가 언제 틈을 내어 고3동생 뒷바라지를 해주겠는가? 그 얘기를 듣다보니 내게 떠오르는 얼굴 하나가 있었다. 이름하여 수경이, 곱상하고 하얀 얼굴에 가녀린 몸을 지닌 그애가 언젠가 한번은 평소의 밝고 명랑하던 얼굴이 아니라 얼굴 가득 슬픔이 베어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속으로만 의아해하는 나에게 그녀의 단짝 친구인 혜정이가 묻지도 않은 이유를 말해줬다. 그날이 바로 수경이 엄마의 기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랬었구나! 저렇게 밝고 예쁜 얼굴을 가진 애에게도 그런 남모를 아픔이 있었구나,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찡해왔다. 그날 오후에 강의가 있었는데 점심시간에 우연찮게 혜정이와 함께 학교앞 커피숖에서 함께 커피를 마실 기회가 우연찮게 생겼다. 평소에는 강의실에서 오래 진득하게 책상에 붙어앉아 공부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않던 혜정이가 그날 이후로는 내 수업시간마다 자세가 몰라보게 좋아졌음은 바로 그날 강의실 밖에서 선생과 제자의 틀을 벗어나 인간대 인간으로서의 친밀함을 형성했던 결과의 부산물이었다. 그날 나는 혜정이를 통해서 그녀의 단짝 친구인 수경이에 대해 많이 알게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 엄마가 병환으로 돌아가신 이후 수경이는 그때 고3이던 언니의 도시락을 아침마다 두개씩 싸며 언니의 고3뒷바라지를 해서 언니는 원하던 대학의 영문과에 들어갔는데 수경이는 공부를 좀 놓쳐서 전문대학 비서과에 오게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아버지가 재혼을 해서 새엄마를 얻었는데 수경이가 유일하게 새엄마에게 살갑게 다가가는 자식이란다. 그 위로 언니와 오빠가 있는데, 언니 오빠는 새엄마 대하는 게 조금 어색한데 수경이만큼은 어려서 엄마를 잃어서인지 수경이는 새엄마를 ‘새엄마’라 부르지않고 그냥 ‘엄마’ 라고 부르면서 가끔씩 엄마가 아버지때문에 속상해하면, 엄마, 아빠때문에 속상하죠? 그래도 아빠 진짜 마음은 착해요. 그러니까 엄마가 마음 넓게 이해하세요, 하며 엄마를 위로하는 딸이란다. 그 이후로 나는 수경이에게 내가 그애의 사정을 아는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 그애를 볼 때마다 그 아이의 밝은 웃음이 그자체만으로도 고맙고 그렇게 예뻐보일 수가 없었다. 친엄마 없이 자란 아이도 저렇게 곱고 밝게 자랄 수도 있구나, 하는 사실을 수경이는 그자체로서 내게 증명해준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교수님, 저 결혼하게되면 꼭 와주세요, 하던 수경이에게 나는, 그래 꼭 갈께, 하고 약속했건만 본의아니게 그녀가 결혼하기 전에 나라를 떠나오는 바람에 그 약속은 지키지못하고 말았다. 지금쯤은 어쩌면 아이엄마가 되어있을지도 모르는 수경이, 섬김으로써 남을 배려함으로써 수경이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그녀안에 정말 큰 사람이 내재되어있음을 몸소 보여준 천사의 화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게도 수경이처럼 착한 동생이 있었음에 감사한다. 내 공부 좀 더하겠노라 대신 설거지를 시켜도 크게 불평하지않고 해준 내 동생이 바로 나를 섬겨준 큰 사람이었음을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에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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