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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신에세이
2008.08.04 23:32

삶의 훈장 (8월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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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훈장
최 영신(영국, Glasgow거주)

대체로 동양인들은 서로 만나서 통성명을 하게되면 언제나 뒤따르는 질문이 바로 나이를 묻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같다.  이는 연배를 따지기 좋아하는 우리 한국인 뿐만아니라 일본인도 또 중국인도 이러한 성향은 예외없이 거의 비슷하다.  
한번은 통역을 기다리고 있는데 거기에는 나처럼 통역하러 와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다른 여자분이 있었다.  서로 눈인사를 나누고 무슨 언어를 통역하느냐고 물으면 그사람의 출신 나라를 알게 된다.  결혼한 여자들은 보통 슬하의 자녀가 몇이냐고 그리고 아이들 나이를 묻게 되고 그러다보면 눈치 빠른 이들은 보통 상대방의 나이를 가늠할 수도 있게된다.  그날도 역시 중국인인 그녀와 한국인인 나 사이에 통성명이 오가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로 이어진 것이 나이를 묻는 질문이었다.  
“내가 몇살쯤 되어 보이나요?”
그녀가 나에게 되물었다.  나는 정말 대답하기가 그때처럼 난감했던 적이 없었던 것같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나 다른 사람, 특히 여성들의 나이를 판가름하는 내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보건대 그녀는 거의 할머니 수준이었다.  제법 곱상한 얼굴에 목은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손등이 어찌 그리 거칠어보이던지?  손가락 하나하나가 엉성하고 뼈마디마디가 툭 불거진 게 거의 갈퀴같아 보일 정도였다.  엄청 고생을 많이 한 손이든지 아니면 정말 허드렛일로 다져진 손 그자체였다.  
여성의 나이를 가늠하는 나만의 비법을 살짝 공개하자면, 얼굴은 둘째치고 목의 주름살과 손등을 살펴보는 것이다.  요새는 하도 성형수술이 발달되어 여기저기 감쪽같이 주름살도 없애고 쫙쫙 펴주는 비법-그래서 얼굴은 뒷전으로 미루는 것이다-도 있는 모양이지만 목의 주름살을 없앤다는 얘기는 여직껏 못들어보았다.  손등도 뭐 보톡스 주사를 맞으면 통통하게 예뻐지는지 모르겠다.  너무 무식하군!
뭐라고 대답을 해야하나?  그녀를 너무 크게 실망시키지않으려고 예상나이에서 열살을 감한 나이로 대답해주었다.  나도 외교술(!)이 제법이다.  그랬더니 그녀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자기는 내가 말한 것보다 열살이 더 많다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구, 사실은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구요.
“당신 얼굴을 보면 열살쯤 젊어보이는데, 당신 손을 보면 열살 더한 나이가 맞을 것같아 보여요.   실례지만 일을 많이 하셨나요?”
하고 조심스레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그녀는 남편을 도와 식당을 개업하고 성업에 이르기까지 온갓 허드렛일들을 도맡아 했었다며, 그러나 한번도 정부의 보조금에 의지하지않고 스스로 열심히 일하면서 이제껏 살아왔노라며 그리고 자기의 거친 두 손이 그 증거라며 아무 부끄럼없이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아들들 다 대학 졸업시키고 중국어학교에서 조금 가르치다가 우연히 어느 분의 소개로 중국어 통역을 하게되었다며 내가 묻지않은 얘기까지 술술 다 얘기해주었다.  
순간 나는 오래전 내 거칠은 손때문에 사람들과 악수하는 것을 제법 꺼려했던 내자신이 몹시 부끄럽게 여겨졌다.  전문대학에서 영어과의 다른 교수님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을 때 그중 한분의 손을 흘낏 보게된 나는 속으로 어쩌면 남자선생인 저분의 손이 여자인 내 손보다도 더 희고 고울 수가 있을까?  저분은 평생 험하고 거친 일 한번 안해보고 공부만 하면서 편히 살아왔나 보다, 하고 은근히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손이 곱고 부드러우면 편한 인생을 살아왔나보다 하고 부러워할지도 모르지만, 그분에게는 그 손등의 거칠고 엉성함이 가리고싶은 수치라기보다는 그분의 열심히 살아온 땀의 아니 삶의 훈장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도 그다지 예쁠 것도 없고 고울 것도 없는 그러나 지금껏 열심히 부지런히 일하며 살아온 내 작은 두손을 더이상 악수하기에 어울리지않는 까칠까칠한 손이라고 부끄러워하지 않아야겠다.  지금 이 글을 타이핑하는 손가락들이 달려있는 이 작은 두손을 지금껏 당연히 여기며 열심히 사용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사용하며 살아갈 터이니 내 두손을 고맙게 여기며 살아야겠다.  건강한 육신으로 열심히 일하면서 살 수 있음이 사실은 얼마나 큰 삶의 축복인지 다시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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