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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신에세이
2008.12.15 03:20

천사가 가져온 평안 (12월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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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영신(영국, Glasgow거주)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도 천사가 있을까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정말 천사의 마음을 지닌 선한 사람들이 지금도 분명히 있다.  내 눈으로 직접 천사를 본 건 아니지만, 그 천사가 갖다준 가방이 그 증거이다.  잃어버린 가방으로 인해 내가 깊이 절망할 때에 그 천사는 나에게 가방뿐만 아니라 내 마음의 평안까지 갖다주었다.  올 성탄선물로 이런 아름답고 따뜻한 선물을 받았는데 더 이상 무얼 바랄 것인가.
한 날, 아이 학교를 마친 후 곧장 인근의 ASDA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필요한 식품들을 한 짐 샀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마침 파를 너무 싼 가격에 팔고 있었다.  파김치를 담가야지, 하고 스무 단을 샀다.  예상했던 것보다 장 짐이 더 많아질 수밖에.  집에 오는데 가방말고도 장짐이 셋이었다.  아이 책가방은 내가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엄마따라 수퍼에 갈 때마다 온갓 애교 다 떨어서 사탕을 꼭 사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애는 그날은 분사식 사탕을 골라 버스안에서도 신나게 먹었다.  집에 차츰 가까워오자 나는 아이에게 옆에 내려놓은 제 책가방을 메라고 두어번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나도 장 짐을 잘 챙기려고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가 내릴 버스정류장에서 어떤 사람이 얼마나 급했던지 사람들-그래봐야 고작 우리뿐이었지만-이 내리기도 전에 버스에 올라타면서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인사를 했다.  짐이 무거운 내가 먼저 내리고 아이가 뒤따라 내렸다.  그런데 아이를 보니 등에 메고 있어야할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야, 네 가방은?”
그제서야 제정신이 드는지 아이는 이미 가고있는 버스 꽁무니를 따라서 막 뛰었다.  나는 원래 달리기도 잘 못하거니와 손에 든 장 짐이 무거워서 도저히 뛸래야 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 일을 어쩐담?  지나가는 자전거 탄 사람에게 좀 도와달라고 해볼까 싶기도 했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도와달라기도 이상하고 마침 지나가는 경찰 두분이 있길래 그리고 그곳이 바로 우리 동네 경찰서앞이어서 경찰에게 도움을 청했다.  사정을 말하니 자기들이 잃은 물건까지 찾아줄 수는 없고 그 버스회사의 분실물 보관소 전화번호를 알아주겠다며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나는 경찰서안에도 분명 설치되어있을 감시카메라를 의식하면서도 아이에게, 너는 엄마 말 안듣을 때마다 이렇게 사고나는 거 알지? 하면서 화를 풀고 있었다.  제 책가방을 잃어버린 것보다 엄마 말을 안들었기 때문에 더욱 속상한 일이었다.  
“엄마, 사고였어.”
아이는 울먹거리며 변명을 했지만, 언제고 크고작은 사고가 날 때마다 항상 엄마 말을 듣지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지난 일까지 주마등처럼 내 머리속에 떠오르니 아이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버스회사의 전화번호를 들고온 그 경관에게 눈을 찡긋하면서, “있잖아요, 이렇게 부모 말 안듣는 아이들 잡아가두는 데가 혹시 없나요?” 내 윙크가 제대로 먹혀들어갔더라면 그 경관이 이렇게 대답해줘야 옳았었다.  ‘그러믄요, 언제든지 아들이 엄마 말을 안들으면 당장 이리 데리고 오세요.’ 그런데 그 눈치없는 경관은 사람좋은 얼굴로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없는데요.”  아이구, 도둑도 손발이 맞아야 된다고, 서로 말이 맞아야 우리 애에게 겁을 줄 수 있었는데…
다음날 일이 끝나는대로 곧장 버스회사의 분실물셑터를 찾아갔다.  돌아온 게 없단다.  아주 값나가는 귀중품은 아니지만 학생에게 책가방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너무 허탈한 나머지 주저앉고 싶었지만, 발걸음을 돌려 아이 학교로 향했다.  아침 등교길에, 엄마가 혹시 너 연극할 때 안보이면 네 가방 찾으러가서 못오는 줄로 알어, 라고 했지만 시간맞춰 갈 수 있었다.  철없는 아이 얼굴을 보니 잃어버린 가방때문에 여전히 마음이 편치않았다.  친구 자난은 나더러 인명사고 아니니까 마음을 풀란다.
학생들 쇼가 끝나고 아이 담임을 잠시 만날 수 있었다.  “저, 아이가 가방을…”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가방이 돌아왔는데요.”
오, 주님 감사합니다.  아이 가방속에 있는 학교 이름이 적힌 숙제 공책을 보고 누군가가 이른 아침부터 사랑의 수고를 해주었던 것이다.  우리 아이 학교는 왠만해서는 참 찾기가 힘든 곳에 숨어있는데…  요새도 이런 착한 사람이 있다니, 이래서 세상은 여전히 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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