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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신에세이
2009.10.28 03:23

딱지치기의 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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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우리집에서는 딱, 딱, 혹은 팍, 퍽 하는 소리를 내면서 누가누가 딱지의 제왕이 되는지 딱지치기놀이를 했다.
아이의 친구 롸이언이 와서 자기들만의 비밀 아지트를 만들며 함께 놀다가, 그 작업이 다 끝나자 심심해졌는지 거실로 들어왔다.  
마침 거실에는 오래전부터 아이랑 내가 만들어서 함께 갖고 놀았던 우리의 손때가 묻은 딱지가 한 보따리 있었다.  
심심할 때 사내아이 둘이서 놀기에 딱지치기만한 놀이가 어디 있을까? 드디어 딱지치기 놀이를 전파하는 문화 전도사가 되어 우리 아이는 순 토박이 스코틀랜드 친구에게 자기가 그래도 한국을 조금이라도 안다는 자부심에 자못 의기양양해져서 어떻게 딱지치기를 하는지 몸소 시범을 보여 주었다.  
처음 하는 놀이라서 그런지 평소 ‘축구’와 ‘타이 파이팅’에 단련되어 몸집이 아주 단단하고 운동신경이 뛰어난 롸이언도 딱지치기를 하는 폼이 영 어색하고 또 딱지에 잘 맞추지를 못하고 어긋나게 치기를 여러번 하였다.  
보다 못한 내가 롸이언에게 어떻게 딱지를 손에 드는지부터 바닥에 놓인 상대방의 딱지를 어디를 쳐야 쉽게 뒤집을 수 있는지 비결까지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딱지’라는 우리 고유명사를 한국어 발음 그대로 알려주고 이 딱지치기 놀이가 한국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것도 알려주었다.  
서로 승부를 가르는 딱지치기가 예상외로 매우 재미있었던 모양이었다. 롸이언은 나중에 겉옷까지 벗어제치고 딱지치기에 열을 내었다. 자기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오자 롸이언은 자기에게 딱지 몇 장만 주면 안되겠느냐고 우리 아이에게 물었다.
이미 딱지 100여장이 넘게 갖고 있던 우리 애는 자기가 애지중지하던 딱지를 주느니 차라리 만들어주는 편을 택해서 재빨리 손을 놀려 딱지를 하나둘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롸이언도 딱지 만들기를 따라했는데, 왼손잡이 구석이 여전히 남아있는 우리애가 딱지 접는 방향을 왼쪽으로 하는 바람에 오른손잡이에게는 따라하기가 제법 어색했다.  
한번 따라 할 때는 딱지를 만들 수 있을 것같았는데 나중에 혼자서 해보려니까 잘 안되는 롸이언에게 내가 오른쪽 방향을 따라 접는 방식으로 천천히 설명을 해주며 만드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우리집에서 잡지책을 찢어 만든 여러장의 딱지를 옆 호주머니가 불룩하게 넣어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롸이언은 맘에 드는 장난감을 새로 산 아이처럼 다른 날보다 더욱 행복한 얼굴을 하고 떠나갔다.  그 집에 이제 한국식 딱지가 넘쳐나면 그집 엄마가 나에게 괜한 것을 가르쳐주었다고 눈을 흘기려나?
롸이언이 가고 나서 내가 아이의 맛수가 되어 딱지를 쳤다.
이제는 좀 커서인지 엄마도 자기를 인정사정 봐주지않고 열심히 딱지를 쳐서 자기 딱지를 많이 따먹어도 예전처럼 열을 받지않는다.  
오히려 내가 딱지를 살살 쳐서 자기에게 내 딱지를 많이 따가도록 유도하면 자기도 나에게 제 딱지를 잘 뒤집을 수 있도록 내 편의를 봐준다.
이것도 어쩌면 좀 더 오래 엄마랑 함께 놀고픈 꾀돌이의 작전인 줄 뻔히 알지만 나는 모르는 체하고 아이에게 넘어가 주었다.
어려서 초등학교 시절, 있는 정성 없는 정성 다 들여 예쁘고 앙증맞은 딱지들을 만들기는 어느 누구 못지않게 아주 잘 했었건만, 정작 딱지치기에서는 실력이 영 덜떨어져서 나보다 더 나이 어린 동생들에게도 이기질 못하고 그 예쁜 딱지들 다 잃고 차마 체면상 울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울음을 삼켰던 적이 얼마나 많았었는지…  
이제 와서 나이 사십이 넘어서 어린 아들과 그때 잘 못했던 딱지치기를 하면서 가끔씩 딱지를 따는 재미를 누리기도 하니 이것을 기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철없다고 해야하나?  
그래도 우리집 딱지치기의 제왕 자리는 항상 어린 아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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