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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신에세이
2010.02.15 02:46

7전 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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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전 8기

이번 주중에 참 행복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다름아닌 운전면허 실기시험의 통역으로 나선 일이었다. 시험당일 새벽에 일어난 나는 그분의 시험과 내 통역일을 놓고 둘 다에게 윈윈(Win-Win)이 되는 좋은 결과가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다. 사실은 겁이 많아서 시험응시자가 자칫 부주의로 사고라도 내면 어쩌나 하는 염려때문에 그동안 몇번 부탁을 받았지만, 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안했었는데 이번에는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이참에 나도 조금 용기를 내어 운전실기시험통역은 어떻게 하면 되는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설마 귀로만 듣고 통역해야하는 이론시험보다야 더 하겠어?
그러나 저러나 응시자가 시험을 잘 쳐서 붙어야 할텐데, 내가 실지 시험보는 사람이 아닌데도 괜스리 내 마음이 떨려왔다.
실지로는 운전을 제법 잘 하시는데, 저 아랫쪽(런던)에서 여러번 실패의 쓴 잔을 마신 분이었다.  
그래서 이곳 글라스고에 오시는 김에 겸해서 시험도 치르기 위해 멀리 런던에서부터 하시는 일손도 멈추고 올라오신 분인데, 이번에는 칠전팔기로 꼭 합격하도록 도와주세요.    
시험치는 날 날씨가 맑고 좋아서 일단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빗길에 운전하는 것은 실지 운전자들에게도 평소보다 더 위험한데, 시험치는 분에게는 얼마나 더 부담이 되겠나 생각하니 날씨가 맑은 것만으로도 어쨌든 한 점 먹고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되어서 운전교습학교에서 나온 교관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교관은 미리 나에게 통역하는 이의 기본자세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었다.  
언어는 달라도 통역원이 조금이라도 응시자에게 부정한 방법으로 도움이 되려고하면 오히려 해가 되는 모양이었다.  
시험시간동안 머리는 한곳으로 고정시켜야 되며 절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서도 안되고, 휴 내가 뭐 붙박이 인형이라도 된단 말이냐?  엄청 까다롭기도 하네.  
교관은 시험을 한시간 앞둔 그분에게 이런저런 사항들을 해보라고 지시하고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에는 친절하게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코치를 아주 잘 해주었다.  시험을 바로 코앞에 앞두어서 그랬는지 이분이 연습시간내내 몹시 긴장되어 있음을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시험관도 교관처럼만 지시한다면 내가 해내야 할 통역은 무난히 해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시험장에 들어가기 바로 전까지 교관은 질의응답식 문제를 냈고 그분은 답하는 연습을 했다.  
드디어 차량번호부터 읽어내는 시험이 시작되고, 질의응답식 문제도 풀고 시험 칠 차안에 들어 가자 시험관이 나에게 직접통역 외에는 아무것도 덧붙이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아까 교관에게 들었던 바 그대로 자세는 고정된 채로 절대 양옆을 내다보면 안된다고 하였다.  듣던 대로 정말 무시무시하네.
시험을 치르는 동안 아까 연습할 때보다는 운전하는 자세가 훨씬 더 좋아진 것같았다.  다만 여전히 긴장된 모습이었는지 시험관이 응시자더러 심호흡을 크게 하고 긴장을 풀라고 당부했다.  
시험치는 분이 왠만한 영어는 다 알아들으니까 나는 조금 어렵다싶은 부분만 통역을 하기로 미리 시험관과도 약속을 한 터라서 시험관이 통역이 필요하다 싶을 때에는 나에게 어떻게어떻게 지시사항을 전달하라고 알려주었다.  
고개는 안돌렸지만 시험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알아 보려고 내 손목시계를 살짝 보았더니 어느 새 시험시간 절반을 훨씬 넘어선 시각이었다.
그쯤에 시험관이 응시자더러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 합격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시험에 떨어질 사람에게 그런 느긋한 질문을 할 시험관은 아마 없을 듯했다. 시험이 끝나고, 당신 합격했습니다! 하는데 얼마나 마음이 뿌듯하던지.  
이론시험 통과한 지 1년만에 합격한 거라고 하셨다. 끝까지 포기하지않고 7전8기를 이뤄낸 그분께 축하의 힘찬 박수를 보낸다.  
이렇게 돈 벌면 돈 받는 내 손도 부끄럽지않고 참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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