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기 전에 3일 동안 눈을 떠서 이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어린 시절 내게 다가와 바깥세상을 활짝 열어 보여 주신 나의 애니 셜리반 선생님을 계속하여 바라 볼 것입니다. 나는 그의 얼굴과 특징을 내 손가락 그 촉감으로 알았었는데 이제 그 선생님의 피부 색깔, 그가 입고 있는 옷, 그의 몸매, 이 모든 것을 몇 시간이고 바라보며 나의 가슴속에 깊이 기억해 두며 언제나 부드러운 동정심과 인내심으로 극복해낸 생생한 증거를 선생님의 얼굴에서 찾아낼 것입니다.” 이상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헬렌켈러의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글 중의 한 대목이다. 아는 대로 태어난지 2년도 채 안되어서 시력을 상실한 헬렌켈러와 역시 어린 시절 잠시나마 앞을 보지 못했던 경험을 가진 셜리반과의 만남은 비단 헬렌켈러의 인생의 길잡이만이 아닌 그 때 그 시절, 그리고 오늘과 내일을 살며 살아 갈 모든 사람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내일이면 우리민족의 극히 부끄러운 6.25전쟁의 63주년이 되는 날이다. 지구가 63바퀴를 도는 동안에 우리는 그 혹심했던 전쟁의 참혹했던 상흔을 잊고 눈부신 국가발전과 세계 속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경제대국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그러한 우리의 대한민국을 가르켜 “한강의 기적을 만든 나라”라고 명명한다. 정말 필자가 생각해도 가슴 뿌듯하며 자랑스럽다.
이제 국민들의 사고방식도 많이 변화되어 오랜 세월들을 가부장적 제도에 익숙해 온 우리 사회에 여성 대통령을 탄생시키기까지 발전되었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감당해 내기에는 서투른 것 같다. 근간에 와서 “국민통합”이라는 말이 대통령 자신도 자주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말은 무척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주역들은 진정 살펴 보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정부 스스로가 국민통합을 저해하고 있지나 않은지 살펴야 할 것 같다.
전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그 어떤 약속이라기 보다는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라는 희망과 건설과 개척의 메시지를 가지고 호소력 있는 개혁을 했었다. 이에 그 당시 국민들은 “나도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과 “내 가족은 내가 책임 진다”는 책임감을 갖고 국내외의 산업현장에서 땀 흘리며 열심히들 뛰었다. 그 결과 우리는 세계가 놀란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냈다. 온 사회가 성공과 자립을 향한 열정으로 하나가 되어 있었다. 국민 통합은 저절로 이루어졌었다.
그런데 오늘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들은 어떠한가? 국민들에게 희망과 건설과 개척의 메시지 대신에 “빈익빈부익부”의 현상은 이제 겉으로 나타나고 서민들의 삶의 아픔은 다시 그 골이 깊어져 가고 있는 듯하다. 절망과 파괴와 무기력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국가가 도와 주겠다고 하면서 복지국가의 신화(?)를 덧입혀 간다. 육아문제, 노후대책, 질병의 치료, 학업관계, 주택구입 등등 모두를 사회와 국가의 책임이라고 말하면서 해결해 주겠노라고 한다.
국민들은 자신과 가족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대신 타인의 주머니에 기생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선거철이면 정부나 정치권에서 입을 열 때마다 가진자들은 “이번에는 또 얼마나 빼앗길 것인가?”를 걱정하고 못 가진자들은 “이번에는 얼마만큼의 떡고물이라도 떨어질 것인가?”를 기대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 현상 속에서 국민통합을 이루어 내기에는 너무나 먼 길인 것 같다. 결국 정부와 정치권 스스로가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유발자인 셈이다. 유발자 스스로가 국민통합을 이루겠다고 나서는 일도 한편의 코메디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앞을 볼 수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영찬이는 오직 촉각에만 의지하여 달팽이처럼 느린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는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본다. 그래서 영혼은 자유로운데 현실은 답답함을 느낀다. 그런 영찬이는 수영을 즐긴다 적어도 물속에서는 자신이 우주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편 순호라는 친구는 척추장애로 작은 몸집을 가진자이지만 영찬이를 만나서 그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 꿈을 향해 도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하여 눈을 감고 가장 참된 것만을 듣기 위해 귀를 닫고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해 침묵하는 두 사람의 사랑은 시간이 흐를수록 빛난다. 두 사람 다 장애자지만 그들의 감성은 아름답다. 비온 후 아파트 베란다의 물방울에서도 생동감과 더불어 행복을 느끼고 손끝으로 대화를 나누며 기차를 타고 터널을 지날때면 순호가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장면을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은 마치 서로를 치유하는 한폭의 그림과도 같이 아름답다.(영화 “달팽이의 별 중에서….)
우리국민들은 6.25라는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인해 가슴 깊은 곳에 부상을 입은 전우들이다. 이러한 국민들에게 일정한 규칙아래서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가 책임져야 되겠다는 정신을 불어 넣을 때, 그때 국민통합은 이루어 진다. 특혜와 특권을 폐지하고 법과 원칙에 충실한 정부만이 국민통합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정치인이나 국민이 다 하나가 되어 헬랜켈러와 셜리반의 만남을 이루고 영찬이와 순호의 만남처럼 서로 상처를 감싸 안으며 부상당한 전우들이 서로 사랑하게 될 때 그때 국민통합은 자연스레 우리 곁에 다가와 있으리라.
김 혜 성
사회복지법인 한국청소년봉사회 전 대표이사
한국유아교육 연합회 교수
국제 청년문화원 상임이사 (International Youngmen's Cultural Centre)
유로저널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