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대선개입 파문으로 끓기 시작한 정치권은 국정원이 2007년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면서 정치권이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A4 용지 108쪽에 달하는 해당 전문 속에 담겨있는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사이에 NLL(서해 북방한계선) 문제와 관련해 나눈 심도 있는 대화를 놓고 새누리당이 노 전 대통령의‘NLL 포기’발언이 있다고 폭로하면서 여야는 점입가경에 빠져들었다.
하지만,해당 전문 속에는 당초 논란의 핵심이었던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와 관련된 직접적 표현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여야는 NLL 문제와 관련한 노 전 대통령의 몇 가지 문제적(?) 표현을 두고 제각각 이현령비현령식 해석을 내놔 NLL 공방 2라운드를 이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와같은 공방은 폭로 초기에는 민주당이 곤경에 빠진 듯 했으나 시간이 경과할수록 새누리당이 진퇴양난에 빠져들면서 초반 공격적 자세에서 수비로 전환하고 있다.
이미 지난 대선 정국에서 새누리당이 NLL 갖고 충분히 실익을 거두면서 약발을 받았었지만,이제는 데 새로울 것도 없고, 충격적인 발언도 나오지 않는 내용을 다시금 터뜨려 반감 여론이 날이 지날수록 드세지고 있는 데다가 김무성의원 등이 사전 열람설로 곤경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 4월 보궐선거로 여의도에 재입성하면서 차기 당권주자 반열에 올랐고, 심지어는 대권주자로까지 거론되는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회의록을 봤고, 차마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는, 큰 말실수를 저질렀다.
국정원이 일반문서로 분류하기 전,그리고 국정원에서 일부를 공개하기 전에 이미 열람을 했다고 밝혀 회의록 사전 유출 의혹의 중심에 서게 되어 야당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이번 문건 공개로 서로를 죽여야 하는 살생 정국이 형성되면서 이슈의 특성상 여야가 타협하거나 협상을 할 사안을 넘어섰고, 일각에서는 NLL 논란에서 거론된 정치인을 대상으로 청문회가 열리거나 ‘NLL 특검’까지 가게 되면 정치생명이 끝날 사람도 여럿 나오리라 예측했다.
정치권의 한 정보통은 “박근혜 대통령도 깜깜한 정국에 답답해할 것으로 보인다. 대선 캠프 때 선대본부장을 지낸 김무성 의원이 회의록 사전 유출 이용자로 분류됐고,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던 권영세 현 주중국 대사도 ‘집권하면 (회의록을) 깔 수도 있다’고 발언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라며 “이들이 모두 청문회나 특검 증인으로 나온다든가, 해명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인사를 거론하게 되면 새누리당이 쑥대밭이 될 것이란 말도 들었다”고 전했다.
이에 민주당은 청와대의 재가 혹은 교감 없이는 국정원 자체적으로 회의록을 꺼내 보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임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실록을 열어 본 박근혜 정부가 앞으로 역사 기록을 제대로 할지 의문이라는 공세에 시달리게 될 것이고, 정쟁을 위해 외교문서 공개를 한 것에 대한 책임을 면키는 어렵게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새누리당 내부에서 조차도 이번 사안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면 다음 정권은 민주당이나 야권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후임자, 후계자를 찾는 데 관심이 없을 수 밖에 없고, 현재 여권 대선 주자로 크게 부각되는 인물이 없는 반면 민주당에서는 차기 주자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차고 넘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벌써 새누리당의 공식적인 사과, 국정원장의 해임이나 사퇴, 관련자 제명 등 야권과 국민이 수긍할 만한 대책을 새누리당이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나아가 국정원 개혁 방안에 대해서도 이참에 완벽하게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이에대해 새누리당이 출구전략을 찾느라 부심하면서 황우여 대표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여야 한목소리로 NLL 수호 의지가 변함없음을 국민 앞에 밝히면 북한도 이 문제를 갖고 무슨 합의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못하고 여러 가지 긴 말이 정리될 것이니 우리 영토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담은 여야 공동선언문을 만들자”고 제안해 “이쯤에서 문을 닫자. 이쯤에서 덮자는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상회담 배석 이재정 전 장관,'아전인수 해석이 문제'
이와 관련해 당시 배석했던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6월 27일 한 국내 언론사와 인터뷰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회담 초반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경제 협력 안을 제안하는 대목에서 “개성공단의 성공을 발판으로 남북이 함께하는 경제특구를 추가로 개발하는 것이 장애요인을 포괄적으로 해결하는 효과적인 방안일 것”이라며 “특히 해주 지역에 기계·중화학 공업 위주의 서해 남북 공동경제 특구를 설치하게 되면 ‘개성-해주-인천’을 잇는 세계적인 공단, 경제지역으로 발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이면서‘해주 특구’를 제안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개성도 군사적으로 많이 양보한 건데, 개미 한 마리 들어갈 수 없도록 군사력이 밀집돼 있는 해주는 국방위원장으로서 내 줄 수 없다”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다만 그는 “개성에서 어떤 모범을 보이고 실제 그만한 것을 희생시키면서라도 민족 번영에 이바지할 가치가 있다면, 그땐 주겠다”고 단서를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제시한 ‘공동어로 수역’에 대해 일면 공감을 표하면서 김 위원장이 “서해문제에 대한 남측의 실질적 요구는 무엇이냐”고 질문하자, 노 대통령은 “NLL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생겨 가지고, 무슨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이 돼 있다”는 논란적 발언 속에서도 “거기에 대해 말하자면 서해 평화지대를 만들어서 공동어로도 하고, 한강하구에 공동개발도 하고, 나아가서는 인천, 해주 전체를 엮어서 공동경제구역, 공동어로구역, 자유통항구역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장관은 이와같은 노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당시 기존의 해외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한계에 부딪히고 있던 조선업계, 특히 조선협회의 직접적인 요구에서 나온 것이라면서 “서해평화협력지대는 NLL 위에 안보적 개념을 넘어 경제적 개념까지 카펫 깔 듯 덮어 놓은 것”이라며 “그 부분에 있어서 해주항을 열고 특구를 만드는 것이 꼭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한 고위급 출신 탈북자는 “해주는 북한 해군력의 집결지다. 현재의 개성공단 역시 다수의 장사정포가 철수된 곳이다”라며 “인천-해주를 오가는 상시적인 항로만 운영된다면 NLL 부근의 군사적 긴장도 역시 자연스레 경감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