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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knews / on Jul 16, 2013 19:54
칭찬 받는 교회 계2:8-11 일반적으로 칭찬이 좋고 비난 받는 것이 나쁜 것이지만 모든 칭찬이 잘 되고 있고 모든 비난이 다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서머나 교회는 신앙 때문에 사람들과 로마 정부에게까지핍박을 받았지만 주님이 칭찬만 하는 교회였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신앙의 초점을 사람에게 두지 말고 하나님에게 두어야 한다는 교훈이다. 하나님이 초점을 둔 신앙 하나님이 칭찬하는 교회를 꿈꾸는 사람에게 성령께서 서머나 교회를 통해 들려주시는 음성이 있다. 첫째 영적인 부를 더 소중하게 여기라. 로마가 기원전 195년에 서머나에 로마의 여신을 위한 신전을 건축하고 많은 경제적 지원을 통해 서머나는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또한 황제숭배의 중심지가 되었다. 세계 곳곳에서 황제 숭배를 위해 모인 사람들은 신전에서 “가이사는 우리의 주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주님을 주인으로 고백하는 서머나의 성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로인해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국가 원수를 모독하는 자로 낙인을 찍히고 잔인한 핍박을 받게 되었다. 또 그리스도임이 밝혀지면 사회공직을 박탈당하고 직장을 잃었다. 재산이 몰수 되고 감옥에 갖히고 마지막에는 처형되어야 했다. 핍박을 받고 궁핍하고 죽어가면서도 서머나 교인들은 예수님이 주인이심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들은 영적인 부를 세상이 주는 어떤 영화로움보다 가치있게 여겼기 때문이다. 마10:37에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들째 신앙 때문에 받는 고난을 두려워 말라. 로마는 서머나의 모든 시민에게 1년에 한 번씩 신전에 가서 “가이사는 나의 주님 이십니다”라는 충성 맹세를 하게 했고 그들에게 증명서를 발급해 주었다. 이 증명서가 있을 때 시민으로서 대우를 받을 수 있었게 하였다. 증명서를 받을 수 없는 서머나의 성도들은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한 가난할 수 밖에 없었고, 핍박받고 목숨의 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성령은 이러한 고난 앞에 두려워할 수 있는 서머나 교회에게 처음이요 나중이 되시고 죽었다가 사신이의 모습으로 찾아오셨다. 신앙을 인정하고 칭찬하시며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하셨다.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하셨다. 복음 때문에 받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끝까지 믿음 지키고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신앙에 이른다는 것을 직접 가르쳐 주신 것이다. 하나님에게 칭찬 듣는 신앙이기를 바라는 사람은 믿음 때문에 고난 받을 때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셋째 죽도록 충성하자. 충성은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나온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 사랑에 대한 반응이다. 믿음의 척도이다. 충성이란 말 속에는 ‘믿을만하다.“ 처음과 나중이 같다.’ ‘정성을 다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하기 싫고, 관심이 없고, 견디기 힘든 일일지라도 주님 때문에 맡겨 주신 일에 마음을 다하는 것이 충성이다. 내게 유익이 되지 않고, 손해를 보고 고난을 당하더라고 마음 변치 않을 때 충성이이라고 말한다. 믿음을 붙들고 충성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 서머나 교회는 믿음을 비밀을 안 후부터 주님에게 충성하였다.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갑은 순교당하기 전에 총독이 그에게 예수님을 부인하고 ‘가이사가 나의 주님입니다’라고 고백만 하면 살려주겠다고 제안하였다고 한다. 이 때 폴리갑은 “내가 살아온 86년 동안 그 분을 섬길 동안 그분은 나에게 한 번도 잘못하신 일이 없는데 어떻게 내가 그 분을 배반할 수 있겠냐”고 말하며 죽음을 택했다고 전해진다. 죽기까지 충성한 것이다. 충성한 자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다. 그들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결론 하나님이 칭찬하는 신앙으로 서 가기 당신이 듣고 적용할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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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저널-김용복 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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