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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3 01:33
바다에 잠든 다섯 송이 펴보지도 못한 꽃들
조회 수 6375 추천 수 0 댓글 0
세상에서 들려오는 모든 사고 소식이 그렇지만,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사설 해병대 캠프 사망사고는 정말 너무나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자연재해가 아닌 100% 인재(人災), 게다가 그 희생자들이 아직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꽃다운 청소년들이었다는 점에서 기가 막힐 따름이다. 그 어린 애들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까... 나는 영국에 와서 바닷물에 처음 들어가봤는데, 조금씩 더 깊이 들어가볼까 하다가 어느 순간 물이 정말 깊어지고 거기에 파도가 몰려오자 흠칫 놀래서 얼른 육지쪽으로 허둥거렸던 기억이
있다. 바다에서는 바다쪽으로(바다를 바라보고
상하 방향으로) 수영하면 안 되고, 옆으로(바다를 바라보고 좌우 방향으로) 수영을 해야 한다는 것도 몰랐었다. 그렇게 세지도 않은 파도였지만 그래도 그 파도가 왔다갔다 하는 통에 파도를 거슬러
수영을 하려니 비교적 체력이 좋은 편인 나조차 금방 기운이 빠져나갔다. 그 때 처음 알았다, 수영장처럼 고여 있는 물과
바닷물은 정말 다르다는 것을. 그렇게 위험한 바닷물에 어떻게 그 어린 애들을 안전장치도 없이 밀어넣을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그런 무모한 시도로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 했던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고 보면 이런 해병대 캠프 류의 극기훈련 자체가 왜 필요한 지 모르겠다. 그것이 만약 청소년들이 평소 경험할 기회가 없는 자연체험이나 야외활동, 아니면 안전장치가 철저히 보장된 장애물 타기와 같은 아웃도어 활동이라면 충분히 건전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하고 있는
극기훈련은 가만히 보면 결국 군대를 표방하고 있다. 그래서, 극기훈련을 담당하는 교관이나
조교들은 마치 군대 유격 훈련장의 교관이나 조교처럼 참가자들에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절대적인 권위와 명령을 앞세워 참가자들을 말 그대로 ‘굴린다’.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려봐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매년 이런 식의 극기훈련을 학교에서 시행했던
것 같다. 이런 극기훈련들은 지금도 떠올려보면 대부분 비슷비슷했던 것 같다. 교외 지역에 위치한 수련회장에 도착하면 그 때부터 선생님들은 안 보이고 수련회장에서
일하는 조교 같은 이들이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우리들을 통제한다. 목소리가 작거나 동작을 실수하면 가차없이 기합을 주고, 육체적으로 고단한 각종 야외 프로그램들을 마친 뒤에, 밤에는 촛불을 하나씩 켜놓고 부모님의
사랑을 처절히 깨달을만한 멘트(?)를 해서 감수성이 여린 친구들의 눈물을 쏙 빼놓고, 캠프 파이어 한 바탕. 떠올려보면 그런 활동들을 통해 나약한 신체와 정신을 가다듬고, 인내심과 협동심을 기르는 등의 유익한 면이 있었고, 또 그것들이 나름대로 좋은 추억으로 남기도
했지만, 그 안에 스며있는 군대문화는 여전히 거부감이 든다. 인내심과 협동심을 꼭 군대문화를 통해서만 익힐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교련이라는
미개한 과목(?)이 존재했었고, 이제는 청소년들이 해병대 캠프라는 이름을
내건 극기훈련에 참가한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것인지 몹시 혼란스럽다. 그것은 군대문화가 학창시절의 극기훈련이나 실질적인 군 복무 중에만 그쳤던 게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그리고 대한민국 회사들 안에 너무도 깊이 뿌리내려 있다는 불편한 진실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우리나라가 분단국가여서일까, 아니면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야만적인 군사정권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어서일까, 아니면 옛날부터
어른들이 종종 말하듯 한국인들은 말로 해서는 안 듣는 족속이라 그렇게 매로 다스리고 완력으로 제압해야만 했었기 때문일까? ‘극기(克己)’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자기의 감정이나 욕심, 충동 따위를 이성적 의지로 눌러 이김’이라는 너무나 좋은 뜻이다. 이러한 극기를 훈련하는 것은 분명 유익한 일인 것 같은데, 왜 그것이 군대식의 체험을 통해서여야만 하는 것일까? 이러한 군대 식의 극기훈련은 아마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다. 서양에서도 다양한 아웃도어 캠프가 있지만, 한국에서 하는 것처럼 교관이나 조교가 참가자들을 군대식으로 다루지 않는다. 더 정확히는 교관이나 조교라고 할 수도 없는 체험 도우미 정도 되는 스탭들이 참가자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프로그램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할 뿐이다. 이런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이들 역시 군대문화를 체험하려 이런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게
아니다.
군대문화를 빼고서도 심신 수양을 하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볼 수 있으며,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협동심을 기르는 등 얼마든지 극기훈련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는 이런 군대식의 극기훈련을, 그것도 어린 청소년들에게 시키는 걸까? 그렇게 꼭 군대식으로 험악한 대우를 당해보고, 군대식으로 고생을 해봐야만 제대로 된 인간이 되는 것일까? 서양의 청소년들은 그런 군대식 극기훈련을 전혀 안 하고도 얼마든지 제대로 된 인간이
되고 있지 않나? 아직도 그런 군대 방식으로 인간을 길들이는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슬프게도 대한민국은 아직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극기훈련들이 분명 장점도 있을 것이고, 이번에 발생한 사고가 반드시 이런 극기훈련의 존재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
번 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바다에 잠든 다섯 송이 어린 꽃들의 명복을 빌며, 두 번 다시는 이런 어이없는 인재가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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