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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2013.09.10 06:21
해외 동포들의 2 세들의 결혼문제 (독일 손병원님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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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동포들의 2 세들의 결혼문제 특히 해외에서 오래 살면 누구 할 것 없이 자녀들의 결혼문제가 한층 더 무겁다. 기왕이면 사귀는 사람도 배우자도 한국인이었으면 하는 바람은 1세들의 한결 같은 마음이다. 자녀들이 누구와 사귄다면 대체로 부모님들이 이미 정해놓은 선이 있다. 수건 뒤집어쓴 아랍계 사람들이나 아프리카 흑인들 그리고 여러모로 버거운 옛 동구권 집안출신들은 무조건 아니올시다. 한인들의 유럽진출은 다른 나라들보다 상대적으로 짧고 수적으로도 적어 2세들은 한인 배우자선택의 폭이 크지 않다. 내가 여기서 오래 산 탓이다. 2 세들은 여기서 태어나고 공부하고 직장 다니며 현지 친구들과 어울리는 생활이라 굳이 한국을 나의 조국이라 여길 당위성이 약해진다. 현지인들의 사고방식과 그 질서에 익숙해져 있으니 자연스런 정서이다. 부모님들은 해외생활의 애환에 대한 보상심리 자녀들에게 공들인 교육문제와 정체성에 연결하여 배우자를 애써 한인들로 맺기를 원한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교민 1세들의 결혼은 어떤가 되돌아보자. 파 독 광부 출신들보다 한인 간호사들의 국제결혼이 많다. 특이한 것은 국제 결혼한 간호사들의 결혼 연령대가 한인들과의 맺음보다 훨씬 어리고 배우자와 나이차이가 많은 공통점도 있다. 그들의 결혼생활이 50대에서 파경을 맞는 비중이 많은 것은 당사자들의 여린 정 탓으로 너무 일찍 결혼한 이유가 큰 원인 인 것 같다. 자녀들의 독립으로 단출하게 살다 보니 중년의 나이로 부부가 부딪히는 사례가 많아진다. 내가 애용하는 컵으로 커피를 마셔야 되고 내 손떼가 뭍은 물건으로 접해야 직성이 풀린다. 나이에 걸맞게 내 것을 챙기는 습성이 자기도 모르게 붙게 된다. 내가 즐기는 것이 마누라보다 정겹다. 늙어져 가는 징조이다. 그리고 어릴 때의 정서나 습관이 스물 베어 나와 토닥토닥 싸우기도 한다. `여보 등뒤가 가려우니 좀 긁어줘요`부탁하면 한인부부는 등 어리 철썩 쳐주며 `아 목욕 언제 했어` 핀잔하며 벅벅 긁어준다. 이들은 다르다. 설합의 연고 찾기 바쁘다. 심하면 의사한테 가라는 것이다. 이들은 자전거 타고 싶어도 헬멧 없으면 못 탄다. 한인들은 제 신명으로 내달린다. 몸은 식었고 이런 사소한 것 들로 자주 상충하면 사이가 멀어진다. 국제결혼이 힘든 것은 문화적 차이가 큰 원인이다. 2 세들은 그런 부분에 대해선 마찰이 적으니만큼 무난하게 넘어간다. 2 세들은 현지 상사 주재원들의 자녀들과 어울림이 오래가지 못한다. 한글학교의 한 반이라도 그렇다. 상사직원들 아이들은 뭐라도 같이해야 한다. 같이 놀아야 한다. 친구들도 자기들끼리이다. 2세들은 이때부터도 한국과는 상관없는 독일에 사는 `나`이다가 각인된다. 사랑을 느끼는 나이가 되면 상대는 자주 만나는 사람들 ? 현지인이 된다. 한인 유학생들과의 대화도 엇갈린다. 세상읽기가 초장부터 다르다. 산수계산도 방식이 다르다. 결혼은 전적으로 당사자들의 이해와 배려가 사랑으로 묶여져야 참 사랑이 되어 행복으로 간다. 여기에서 국제결혼이니 한인부부이니 구별할 필요가 전혀 없다. 나는 아들의 결혼관에 흔쾌히 동의한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 사랑하는 연인을 내가 건너가서 맞아줘야 그들은 좀더 행복한 부부의 연을 다잡을 수 있다. 서로 배우자의 나라 전통 습관을 배우고 따르면 좋지만 도저히 힘들다고 하면 반반씩 양보하는 게 해결책이다. 종교생활도 마찬가지이다. 문화차이는 인정하되 강요를 하면 이가 갈린다. 그런데 딱 한가지 걸리는 게 있다. 부모님이 `야 너는 가문의 장손이다` 부모님이 도저히 놔 주지 않는다면 다소 복잡해진다. 설령 내 자식에게 한인 배우자선택을 강요하여 결혼이 성사되었다 하더라도 손자 대에서도 한인 핏줄을 강요할건가. 장손의 의식도 손자 대에서는 물러진다. 그때까지 건강하게 산다는 장담도 어렵다. 내 눈 안의 범위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안목이 생긴다. 작은 바둑판에서 바둑 둔다고 판 전체를 다 읽으며 두는 건 아니다. 연애 시절의 연인은 인연으로 가는 게 수월하다. 동거 생활 후 결혼으로 가는 분위기가 커진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시대에 앞서기도 힘들지만 냄새 나는 사고방식은 더 힘 든다. 다문화사회는 필연적이고 세계적 추세이다. 더욱이 해외생활이야. 한국은 이미 고령화 시대에 접어 들었다. 출산율은 떨어진다. 이민은 주로 경제활동이 왕성한 세대이기 때문에 생산활동 인구비중을 늘리고 출산율을 높이는 만큼 고령화를 늦추는 순기능이 있다. 한국 농어촌의 노 총각들은 40% 이상 국제결혼으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이들만해도 전국적으로 60만 명을 상회한다. 2백만 명 이상의 해외근로자들과 결혼한 한국여성들도 많다. 2012년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한국 노총각들의 배우자 선택은 단연 중국출신 베트남출신이었다. 그들은 적응도가 빠르고 말을 빨리 배운다. 역사의 환경이 엇 비슷했다. 열심히 산 외국여성은 동네 이장도 됐다. 리틀 싸이도 나왔다. 한국 내에서 국제 결혼하여 이혼하는 사례는 한 해 평균 8천 쌍이다. 이혼 사유는 각자의 이해타산이겠지만 1500여 개에 달하는 국제 결혼 중개소의 영세성 탓이기도 하다. 수수료 챙기기에 급급하여 엉터리정보로 연결시켜준다. 당국은 올 8월부터 중개소의 자격을 엄하게 조치했다. 자본금 1억 원 이상이고 결혼희망자의 요건을 따진다. 자기 돈은 얼마인가 직장은 있는가 얹혀사는 자 인가. 자립도를 평가한다. 국제결혼이란 용어는 익숙한 반면 국제 이혼이라 하면 섬뜩하다. 국제 결혼의 어려움을 비견해서 느껴지는 기분 같다. 이젠 50: 1로 외국인들이 한국에 많이 산다. 인종적 편견을 넘어야 한다. 이민생활인데도 여전히 고국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다. 현지에서 성공한 이들은 원주민화된 부류들이다. 성씨 김의 영어표기는 대체로 Kim이다. 이씨 같으면 Lee Lyee Lyie 등등 멋을 부린다. Kim Lee Park은 일찍이 영어권나라에 유학했던 인텔리들이 쓴 것을 다수의 선량들이 거리낌없이 따라 사용하여 표준 표기가 되었는데 이국생활로 인해 현지나라의 시민권을 취득했다면 본인 스스로 영문표기를 창안해도 허물은 아닐 것 같다. 나는 Son이 너무 밋밋하여 Sohn으로 폼 잡아봤다. 독일 왔더니 아들의 뜻이 되어 약간 떫다. 모르지, 어떤데 가면 `아싸`인지. 자녀들의 국제결혼 ? 여기서도 부모는 자식을 이기지 못한다. 핏줄사랑은 내리사랑이다. <독자기고 : 독일에서 손병원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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