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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9월 말이면 ‘영국 ~년차’를 쓰곤 했는데, 올해는 그만 깜빡하고서 10월 말이
된 이제서야 ‘영국 9년차’를
쓸 시기가 되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2005년 9월
26일 유학생으로 영국에 온 뒤에 매년 그맘 때면 ‘내가 영국에 온 지 또 한 해가
지났구나’하면서 새로운 감회를 느끼고 많은 생각에 잠기곤 했는데, 어느덧
이제는 내가 영국에 온 지 몇 년이 지났구나 하는 것조차 무뎌질 만큼 영국에서의 삶에 익숙해진 것일까? 영국 이민 십수 년에서 수십 년차인 영국 이민 선배님들에 비하면
나의 영국 9년차는 여전히 별 것 아닌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 스스로에게 놀라울 따름이다, 영국에서 벌써 이 만큼이나 오래(?) 살았다니. 아무 것도 모른 채 영국에 첫 발을 내딛고, 영국의 모든 게 신기하고 또 모든 게 불안했던 그 시절이 정말 엊그제 같은데,
내가 과연 영국에서 몇 년이나 살게 될 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던 그 막연했던 시절, 나는 영국에서 나보다 하루라도 더 지내본 사람들이 위대하게까지 보였는데. 심지어 영국에서 직장을 다니거나 영주권을 받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이 너무나 부러웠고, 그들의 한 마디 조언이 정말 엄청나게
들리곤 했었는데. 그랬던 내가 이제는 헤드헌터가 되어 그 시절의 나처럼 부푼 꿈을
안고 영국을 찾는 사람들의 취업과 영국 정착을 돕고 이런 저런 조언을 하고 있으니, 나 스스로도 도무지 믿기질 않는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고, 아직도 어설픈 게 참 많지만, 그럼에도 이제 막 영국에
온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지난 시절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영국에서 하루라도 더 산 내가 부러울 것이고 나의 조언이 참 중요하게 들릴 것이다. 직업 상 수 많은 사람들에게 비슷 비슷한 상담과 조언을 제공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귀찮아지고 짜증이 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지난 시절
영국에 막 왔을 때 누군가의 사소한 도움이나 조언조차 너무나 커다랗게 여겨졌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친절하게 최선을 다 해 도움을 주어야겠다.
차를 운전해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뉴몰든 근처 우스터파크를
지날 때면 초창기 유학생 시절이 떠오른다. 그 때 나는 모던(Morden)에 살았는데, 당시에는 기타 레슨이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우스터파크 지역에 두 건의 레슨이 있어서 평일 저녁에 레슨을
하러 다녔는데, 모던에서 버스를 타고 레인즈 파크로 가서, 다시 버스로
레인즈 파크에서 뉴몰든으로 간 뒤에, 다시 버스로 뉴몰든에서 우스터파크로 가야 했다. 우스터파크에서도 한 곳은 버스 정류장에서 가까웠지만, 한 곳은 주택가 골목을 한참 걸어들어가야 했다. 자가용으로는 15분이면 될 거리인데, 가뜩이나 배차 시간이 들쑥날쑥인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다니느라 편도 한 시간은 기본으로 잡고서 다녀야 했다. 2005년 겨울 우산도 안 가져갔는데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밤, 레슨을 마치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30분 넘게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는 게 아무래도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결국 우스터파크에서 뉴몰든까지 비를 맞으면서 한참을 걸었던, 그러면서도 나보다는 비를 맞는 기타 걱정이 앞섰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겨울비를 맞으며 한참을 걸어 뉴몰든 파운틴펍까지 와서
그 옆 한인 슈퍼에서 레슨비로 받은 돈으로 당시에는 불과(?) 3.5파운드밖에 안
했던 소주 한 병조차 부담스러워서 여러 번 고민하다 결국 한 병을 사들고 집으로 향했던 게 아련히 떠오른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영국 전역은 물론 다른 유럽국으로도 초청받아
연주를 다니고 있으니, 역시나 스스로도 믿기질 않는다. 가끔은 평소보다 적은 연주비를 받거나 연주 전 대기 시간이 길거나
하면 불평을 할 때가 있는데, 정말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
하는 내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워진다. 한 편으로는 이렇게 나처럼 정말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유학생으로
영국에 와서 너무나 소중한 기회들을 얻고 영국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지만, 그렇게
유학생으로 와서 영국에서 정착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음에 안타깝다. 여전히 불안하기만한 영국 및 유럽의 경제 상황과 날마다 까다로워지는
영국의 이민법, 만약 내가 요즘 시기에 영국에 왔더라면 나도 지금처럼 영국에 정착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영국에 정착해서 사는 게 또 그렇게 대단한 것만도, 좋기만한 것도 아니다. 모든 일에는 그만한 댓가가 있는 법, 영국에 오지 않았더라면 흘리지 않았을 눈물도 참 많이도 흘렸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참 힘들게도 했으며, 이런 저런 잃어버린 것들도 참 많은 것 같다. 그렇게 남다른 행복과 또 그렇게 남다른 슬픔들이 어우러져 빚어낸
수 많은 사연들 덕분에 어쩌면 이렇게 7년이라는 길다면 긴 세월 동안 ‘서른 즈음에’를 연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영국 9년차를 가능하게 해주신 하늘과 또 수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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