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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1월 1일 자로 인쇄된 신문이 발행되었지만,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야말로 진짜 2014년 들어서 쓰는 새해 첫 글입니다. 벌써 2014년이라니, 그러고 보니 제가 ‘서른 즈음에’를 처음 연재하기 시작한 게 정확히 7년 전이었던 2007년 1월 첫 주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런던에서 언론학(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있었고, 학생비자 기한이 채 1년도 남지 않은 유학생이었습니다. 단순히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유로저널의 문을 두드렸고, 각종 기사와 칼럼들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칼럼은 지금은 더 이상 쓰지 않는 ‘시네마 천국’이라는 영화칼럼과 바로 이 ‘서른 즈음에’를 쓰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그저 제가 생각하고 느끼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써보려던 것뿐이었습니다. 처음 연재를 시작했을 때는 이렇게 7년이 넘도록 연재를 이어가게 될 줄 몰랐고, 더욱이 제가 이렇게 9년씩이나 영국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는, 아니 더 정확히는 영국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저는 영국에서 너무나 살고 싶었고 어떻게든 영국에서 정착하고 싶었지만, 아무 보잘 것 없는 유학생인 저에게는 그저 막연한 꿈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인도하심과 저를 돕는 이들의 헌신으로 기적처럼 길이 열리고, 결국 그 길이 오늘 이 순간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하듯 아무 것도 없이 시작한 영국생활이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제가 지금 어떤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남들에게는 그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여건에 지나지 않는 것들조차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하기만 합니다. 이제 고작 서른 중반을 살아온 제가 감히 지금까지 터득한 게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즉, 남들이 보기에 대단한 것이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게 아니고, 비록 남들 눈에는 별게 아닌 것일 지라도 그것이 나에게는 소중하고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나에게 차고도 넘치는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터득하면 꼭 크고 화려한 것을 가지려 발버둥치면서 살지 않아도 됩니다. 사사건건 남들과 비교할 필요도 없고, 남들 눈치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평범한 것들, 작은 것들에도 진실하게 정성을 쏟고 그것들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그리고 그 사랑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는 나만의 세상이 열리며 그 안에서 마음껏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영국에서 살면서 그렇게 사소하지만 소중한 행복들을 얼마나 많이 누렸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서른 즈음에’ 역시 그 소중한 행복들 중 하나입니다. 지난 7년 동안 매주마다 써 내려간 600자 남짓한 글 속에는 저의 희로애락과 꿈들이 담겨있습니다. 지금 다시 읽어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유치한 글도 있고, 어줍잖은 비판적인 글도 있으며, 너무나 부끄러워서 정말 지워버리고 싶은 글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유치하고, 어줍잖고, 부끄러운 모습들도 결국 모두 저의 일부분이기에 감싸 안으려 합니다. 처음에 ‘서른 즈음에’를 연재하기 시작했을 때는 과연 이런 글을 누가 읽어주기나 할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분들이 ‘서른 즈음에’를 읽고서 저를 알아봐주셨고, 심지어 제게 연락을 주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모든 것에는 전성기가 있는 법, 솔직히 ‘서른 즈음에’의 전성기는 이미 왔다가 간 것 같습니다. 인터넷판을 보면 예전에 비해 조회 수도 감소했고, 또 길다면 긴 7년 동안이나 연재를 했으니 솔직히 이제는 제 글이 식상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록 그렇게 ‘서른 즈음에’의 전성기는 지났을 지라도 저의 삶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고, 비록 이전보다는 줄었어도 여전히 제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서른 즈음에’는 적어도 제가 영국에서 사는 동안에는 계속될 것 같습니다. 영국이나 유럽에서 사시는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여기서는 별 것 아닌 것도 오래되었다는 것 만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요즘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수 많은 것들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무언가가 오랜 세월 동안 변함 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까닭 모를 감동과 아름다움을 자아낼 수 있습니다. 이제 고작 7년 지나고서 허황된 바램이겠지만 그래도 저는 ‘서른 즈음에’가 언젠가는 그렇게 오래된 향기를 자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단한 내용이 담겨있는 게 아니어도, 엄청난 인기를 누리지 못해도,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흘려 보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그 의미가 있는 ‘서른 즈음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른 즈음에’를 쓰는 동안 저는 20대에서 30대가 되었고, 영국 유학생에서 영국 교민이 되었으며, 학생에서 직장인이 되었고, 기타 레슨 강사에서 음반까지 발표한 뮤지션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서른 즈음에’를 쓰는 동안 제 삶의 모습은 또 어떻게 전개되어 갈 지... 삶이라는 여행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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