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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저널 와인칼럼
2014.01.06 21:26
<박 우리나라 기자의 프랑스 와인 기행 4> 단골, 친구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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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우리나라 기자의 프랑스 와인 기행 4> 단골, 친구의 다른 이름 단골. 참 정겨운 말이다. 가게에서 단순히 물건만 사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정감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대형 프랜차이즈가 골목상권을 대부분 장악했고, 친해질 만 하면 다른 “알바생”으로 바뀌는 상황 등으로 인해 그러한 관계가 점점 없어져 가고 있어서 참으로 안타깝다. 그에 반해 프랑스에서는 -이곳도 점점 그런 물결이 점점 잠식해 오고 있기는 하지만- 동네 빵집, 동네 식육점, 동네 생선가게, 동네 과일과게, 동네 카페와 식당 등 몇 년, 또는 몇십 년을 함께 알아온 친구 같은 관계의 단골 문화가 아직 이어져 오고 있다. 와인 가게(프랑스어로 캬비스트)도 그 대표적인 단골의 영역이다. 나는 오늘 내 단골 와인 가게를 소개하고자 한다. 프랑스에 와서 정말 가족처럼 지내는 가정이 있다. 그 가정의 형님은 파리 오페라 바스티유의 단원으로, 내가 프랑스에서 만나본 가장 멋진 사람이다. 어느 날 오페라 바스티유에서 바그너(R. Wagner)와 베르디(G. Verdi)의 콘서트가 있었는데, 그분이 솔리스트를 맡게 되어서 축하의 의미로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손님을 초대했으니 무슨 와인을 준비할까 생각하다가 바그너와 베르디 콘서트이니 독일산 와인 리슬링(Riesling)과 베르디의 와인이라 불리는 이탈리아산 람브루스코(Lambrusco)로 낙점했다. 마침 독일에 사는 후배가 선물해 준 잘 만든 리슬링이 있어서 람브루스코만 한 병 준비하면 되었다. 그 형님도 무척이나 와인을 좋아하는데다가 이탈리아에서 음악 공부를 했기에 좀 좋은 람브루스코를 준비하고 싶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다양한 다른 나라의 와인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아마도 프랑스인들은 자기 나라의 와인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와인의 나라 프랑스에 사는 한국인 와인 애호가들이 와인 구입과 관련하여 가장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이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마트에서는 질 좋은 외국 와인은 찾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그래서 나는 수업을 마치고 학교 근처에 있는,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 중 하나인 무프타르 거리(Rue Mouffetard)의 시장으로 갔다. 여러 가지 볼거리가 많은 시장통을 구경하면서 내려가다가 첫 번째로 나타난 와인 가게에 바로 들어갔다. 그 가게는 인심 좋아 보이는 아저씨와 밝은 미소를 지닌 할머니가 운영하는 평범한 동네 와인 가게처럼 보였다. 나는 아저씨와 가볍게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내가 준비하려던 식사가 조금 달짝지근한 메뉴라서 살짝 단맛이 도는 드미 섹(demi-sec) 람브루스코가 있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그 주인은 자기 집에는 드라이한 스타일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며, 도리어 나에게 혹시 프랑스에서 그런 람브루스코를 사 본 적이 있는지 되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단맛이 나는 스파클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스타일은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아저씨가 다른 곳에 가 봐도 내가 원하는 스타일은 구할 수 없으니 그냥 여기서 사라는 말로 이해하고는 아쉬운 표정으로 지갑을 꺼내려는 순간, “그런데 저 아래 큰길 건너에 가면 이탈리아 식료품 취급하는 곳이 있는데, 아마도 거기에는 당신이 원하는 스타일이 있을 것 같으니 한 번 가 보세요.”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당시에 프랑스어를 잘 못 알아들었었기에 꼭 저렇게 이야기했다고 확신하긴 어려우나 내 ‘눈’에는 그렇게 들렸었다. 나는 순간 당황스러워서 잠시 멈칫하며 이렇게 생각했다. ‘장사를 왜 이런 식으로 하는 걸까?’ 비싼 와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기네 가게에서 사려고 지갑을 꺼내는 손님에게 다른 가게를 권한다는 것이 납득이 잘 안 됐었다. 게다가 가까운 거리의 옆 가게라면 그곳에 갔다가 찾던 그 와인이 없으면 자기네 가게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주인이 추천한 가게는 그러기엔 너무 먼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내가 주인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손님이 원하는 스타일은 프랑스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고요, 우리 집의 람브루스코가 상당히 괜찮고 음식과도 아주 잘 어울려요.’ 라고 하며 끈질기게 내가 가진 와인을 권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주인아저씨는 왜 나에게 그렇게 권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그다음 대화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내가 그 아저씨에게 이 람브루스코는 어떠냐고 물어보니 “과실향도 향긋하고 기포도 힘차고 좋은데 손님이 원하던 스타일은 아니에요.”라고 대답했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 그렇다. 그 주인아저씨는 자기 가게에 있는 와인에 내 취향을 끼워 맞춰 팔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와인을 찾을 수 있도록 조언을 해 줬던 것이다. 비록 와인 한 병을 못 팔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 와인을 사기 위해 그 주인아저씨가 알려준 다른 가게로 갔을까? 그럴리가 있는가. 내가 원하던 믿을만한 와인 가게와 주인장을 만났는데 그깟 와인 한 병이 대수랴! 게다가 그가 추천한 와인의 맛도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와인을 사야 할 일이 있으면 주저치 않고 그 가게로 향한다. 가게에 들어서면 서로 반갑게 인사하며 안부를 묻는다. 특히 할머니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단골이 된 것이다. 내가 준비할 음식과 와인의 예산을 알려주면 그는 내게 몇 병의 와인을 추천해 주고, 나는 각각의 와인에 대해 좀 더 물어보고 그중에 하나를 선택한다. 물론 와인을 어느 정도 알면 혼자 마트에 가서 잘 어울릴 것으로 생각되는 것들로 골라올 수도 있다. 하지만 마트에는 그 수많은 와인이 각각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를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이런 캬비스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씩은 내 생각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와인을 추천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저 와인이 더 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면, 자기 믿고 한번 마셔 보란다. 약간의 의심을 갖고 마셔본 결론은 “약은 약사에게, 와인은 와인가게 주인장에게!” 믿고 마시는 자에게 즐거움이 더하리라. 단골집이 좋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나의 취향과 예산 등 나를 잘 알기 때문에 많은 설명이 필요치 않다는 것과 나를 속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나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잘 아는, 믿을 수 있는 편안한 사람. 친구가 그런 것 아닌가? 나는 오늘도 내 단골 가게에 간다. 친구들을 만나러. 프랑스 유로저널 박 우리나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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