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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3 00:12
선행학습을 법으로 금지해야 하는 나라 (1)
조회 수 1878 추천 수 0 댓글 0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는 언론 보도를 접했다.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이제는 국가에서
선행학습을 법으로 금지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니, 21세기에 그래도 나름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고작
법으로 선행학습이나 금지하는 일이 벌어져야 한다니, 참 한심하면서도 서글퍼진다. 취지는 좋다, 과도한 사교육을 방지하고 공교육의 정상화를 이룬다는 것인데, 과연 선행학습을 금지한다고 해서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에 앞서 과연 선행학습을 실제로 금지할
수나 있는 것일까? 한국을 떠난 지 벌써 9년이나 된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런 얘기를 꺼내는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한국을 떠나기 직전까지 민족사관 고등학교, 외국어 고등학교 입시를 목표로
하는 이른바 특목고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면서, 그리고 수능 과외를 뛰면서 사교육 현장을 직접 목격했기에 실제로
그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고 있다. 우리 학원은 공부를 못해서 오는 학생들은 거의 없었고, 다들 이미 어느 정도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그래서 민족사관 고등학교나 외국어 고등학교 입시를 목표로 하는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이었다.
우리 학원에 들어오기 전에는 일종의 입학 시험 같은 게 있는데, 이 시험은 솔직히
나도 다 맞추기 힘든 엄청나게 어려운 난이도의 시험이었고, 대부분이 형편 없게 나오는 이 시험 점수로 학부모들과
상담을 하면 학원이 심리적으로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서 상담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다. 당시에 나는 토플(TOEFL) Writing을 가르쳤는데, 학생들로
하여금 매일 토플 단어 시험을 수백 문제씩 치르곤 했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르는 토플 단어들을 암기해내는 중학생들을 보면서 과연 이게 정상인가 싶기도 했다. 당연히,
이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영어나 수능 영어는 쉬운 것이었다. 평일에는 학원에서 여러 과목을 들으면서 밤 늦게나 귀가하고, 주말에도 학원에 나와서 자습까지 했던 중학생들,
나는 차마 주말까지 출근하기는 싫어서 학원과 처음 계약할 때부터 주말 근무는 안 하기로 했지만, 다른 선생님들은 주말에도 나와서 학생들의 자습을 관리하고 숙제 검사도 해줬다, 물론 그만큼의
추가 보수를 받고서. 방학 때는 ‘자물쇠반’이라는 특별반도 운영했다. 이름도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자물쇠반’이라니.
이 반은 민족사관 고등학교 입시를 목표로 하는, 저마다의 학교에서 전교 석차 최상위권에 드는 아이들만 모아서
거의 하루 종일 학원에서 지내게 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 물론, 그런 만큼 아무나 원한다고 이 ‘자물쇠반’에 들어올 수도 없고, 또 그렇게 온종일 학원에서 지내는 만큼 학원비도 엄청난 액수였다.
우리 학원이 그 지역에서는 상당히 유명했던 탓에(심지어 우리 학원은 배짱으로 학원 버스도 운영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초등부(5, 6학년 대상)까지 신설해서
나는 초등부 강의도 몇 개 맡았는데, 이들에게는 고등학교 영어를 가르쳤다. 즉, 선행학습을 한 셈이다. 당시에 가르쳤던 학생들 중 한솔이라는 이름의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모범생에 우등생이었는데, 워낙 어려서부터 사교육에 익숙해 있었고,
또 체질적으로 공부에 소질이 있어서인지, 한솔이는 늘 더 높은 난이도를 원한다고
했다. 한솔이는 참 얌전하고 착한 아이였지만, 초등학교 5학년이
고등학교 2학년 영어가 너무 쉽다면서 더 어려운 문제를 풀고 싶다니, 그런 한솔이를 가르치면서 때로는 조금 무섭다는 생각도 들곤 했었다. 그랬던 게 벌써 9년 전인데, 아마 지금 대한민국 사교육은 그 때보다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법으로 선행학습을 금지한다고 해서 과연 실제로 선행학습을 금지할 수 있을까? 학원들이 공개적으로 선행학습을 광고하는 것이 금지된다고 해도, 국가에서 일일이 수업 시간에 들어가서 어떤
교재로 어떤 내용을 가르치는지 확인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영어 같은 과목의 경우 정확히 어디까지나
선행학습에 해당하는 것인지 구분하기도 애매하다. 초등학생에게 시중에서 판매되는 고등학생 교재를 가르치면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학원에서 자체적으로 프린트물이나 교재를 만들어서 사용한다면, 어느 단어까지가 초등학교 단어인지 그 기준도
없고, 제재할 방법이 없다. 이번 선행학습 금지법을 놓고 정부에서는 무언가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다고 자화자찬할 지 모르지만, 정작 학부모들이나
학원들은 콧방귀를 끼고 있을 것이다. 선행학습 금지법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발상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선행학습 금지법이 나오기까지 그 과정에 참여한 높으신 분들은 실제로 그렇게 현실을 모르고 있을 것 같다. 그런 높으신 분들은 대부분 자녀들을 이른 나이부터 영어권 국가로 조기 유학을 보내고, 심지어 그 나라
시민권도 취득하게 하니, 한국에서 평범한 학생들이 어떻게 교육받는 지는 알 턱이 없고 별 관심도 없을 테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행학습 금지법은 아무런 효과도 가져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선행학습 금지법이 학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선행학습을 시키는 진짜 이유, 즉
우리나라에서 선행학습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진짜 이유를 모르고서 탄생한 졸속 탁상행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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