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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9 19:24
선행학습을 법으로 금지해야 하는 나라 (2)
조회 수 1748 추천 수 0 댓글 0
아마도 정부는 선행학습 금지법을 도입하면서 이런 상상을 했을 것 같다. ‘선행학습을 금지시키면 굳이 학원에 갈 필요가 없어지고, 그래서 학교 교육만 원래 과정대로 따라가면
되도록 하여 공교육을 정상화 시키고 과열된 사교육을 안정시키게 된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시키는 진짜 목적이 순수하게 교육 그 자체라면 이런 아름다운(?) 시나리오가
가능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나라에서 교육의 목적이 진짜
교육일까? 슬프게도 우리는 이미 그 대답을 알고 있다. 자녀가 어떤 특수한 분야에서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대한민국 학부모들의 바램은 동일할 것이다, 자신의 자녀가
남보다 좋은 성적으로 남보다 좋은 대학에 입학해서 남보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 즉, 전체적으로 보면 인생의 매 단계마다 통과해야 하는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학교라는 것도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곳일 뿐이고 경쟁이 이루어지는 경기장
같은 개념이며, 학원은 그 경쟁을 더욱 잘 치르도록 조련하는 곳인 것이다.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려보면 학원이나 과외와 같은 사교육은 극히 일부 학생들에게만 국한된 것이었고, 그나마도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이 일종의 보충 차원에서 사교육을 받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우리 때는 반에서 1등을 비롯 우등생들은 전부 혼자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얻는 경우였다. 지금처럼 몇 학년 앞선 과정을 미리 공부하거나 중학생이 토플을 공부하는 발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선행학습이 존재할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 학원의 역할도 요구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우리 때만 해도 학부모님들이 별다른 사교육비 지출 없이 나름대로 저렴하게(?) 자녀를 키우던
시절이었던 셈이다. 정확히 언제부터 학원을 보내는 게 보편적인 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 어느 시점부터는 학원을 안 다니는 학생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어버렸고, 학원을 다니는 것도
학교 수업에서 미흡한 부분을 보충하는 게 아니라, 학교 수업보다 몇 학년 이상, 몇 단계 이상 앞선 교육을 받기 위함이 되어버렸다. 즉, 선행학습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학부모들이 자녀에게 선행학습을 시키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남(함께 경쟁해야
하는 같은 학년 학생들)이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짜 교육이라면 나 자신이 기준이 되어 내가 무언가를 얼마나 배우고 익히느냐가 중요할 텐데, 앞서 언급했듯
우리나라에서의 교육은 매 단계에서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게 목적이 되었고, 그렇다면 기준은 나와 경쟁해야
하는 남이 되어서 결국 어떻게 해서든 남보다 조금이라도 앞서야 하는 셈이다. 아마 선행학습은 이렇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어떤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초등학교 2학년 과정을 미리 학습해놓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옆집 학부모는 자기 자녀는 초등학교 3학년 과정까지 미리 학습시키고, 그런 식으로 모두가 자기 자녀는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도록 만들면서 선행학습은 겉잡을 수 없는 대세가 된 것일 게다. 나라에서 아무리 선행학습을 시키지 말고 학교 교육을 원래 과정대로 따라가라고 해도, 당장 옆집 애는
내 자식보다 한 학기 분량이라도 더 앞서가는데, 어떤 학부모가 자기 자식을 가만 놔두겠는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 애들은 어려서부터 영어 유치원을 다니고 방학 때마다 해외를 다녀오고 학원에서 전문 강사들에
의해 몇 년씩 앞선 과정을 공부하는데, 이런 기회를 갖지 못하는 애들이 아무리 혼자서 열심히 공부한들 과연 그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남들이 기준인 것은 비단 어린 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심지어 직장인이 되어서도 한국에서는 끊임없이 남들이 기준이 되어 남보다 조금이라도 잘났으면 우쭐거리고 남보다 조금이라도 못났으면
비참해져야 하는 미개한 정신 구조를 아직도 고수하고 있다. 타고난 대로 공부를 잘 하는 애들은 대학에 가서 학문을 좀 더 깊이 파고들고, 그렇지 않은
애들은 그 나름대로의 적성을 살려서 소신껏 진로를 펼쳐가고, 그래서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한 사람이나
고등학교만 마친 기술자나 동일하게 존중받는 사회라면 굳이 선행학습 같은 게 필요하지 않을 텐데. 학교 선생님들도 정작 자신의 자녀는 학원에 보내서 선행학습을 시키는 마당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한국에서는 제대로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삶이라는 게 사람들의 정신 구조 속에 정형화되어 있고, 그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해야만 하기 때문에, 정부가 아무리 선행학습을 금지하고,
심지어 극단적으로 학원들을 전부 폐쇄시킨다고 해도 우리 청소년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교육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또 다른 형태의 학원과 또 다른 이름의 선행학습에 내몰릴 것이다. 결국, 나를 비롯한 모든 한국 사람들의 정신구조가, 그래서
사회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아무리 법으로 선행학습을 금지한다고 해도 우리 자녀들이 겪는 비정상적인 교육(을 빙자한 경쟁에서 살아남기)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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