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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4 03:16
영국의 한국인 학부모님들께 (2)
조회 수 1465 추천 수 0 댓글 0
영국에서는 대졸자라고 해서 무조건
취업이 되거나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는 게 아니고, 또 굳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도 자신의 기술이나 적성에 따라 직업을 택하면 그 모습 그대로 인정받고
존중받는다. 즉, 한국에서처럼 어디 가서 그래도 인간 대접을 받으려면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영국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국에서는 무작정 대학에
진학할 게 아니라, 대학 교육과 대학에서의 전공 과목이 정말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지, 또 적성에 맞는 지를 주의 깊게 판단하여 대학 진학 및 전공을 선택해야
하며,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소질이나 적성에 따른 또 다른 진로를 열심히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인 학부모들은 한국에서와 같은 사고방식으로
대학 진학 이외의 진로는 어딘가 잘못된 것처럼, 뭐가 모자란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고, 더욱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쓴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사람들이란
당연히 누가 대학에 갔건 말건 전혀 개의치 않는 영국인들이 아니라, 영국에서 살아가는 다른 한국인들이다. 즉, 영국의 한국인 학부모들은 한국에서처럼 자녀의 대학 진학 여부를 놓고 다른
한국인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또 어떤 대학에 진학했는지를 놓고 서로 비교를 하고 자랑을 하거나 부끄러워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굳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도 되는, 심지어는 대학에 진학하지 말아야 하는 자녀를 대학에 진학시켜서 오히려 그 자녀의 진로를 망치는 불상사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헤드헌터로서 내가 보기에는 영국은
대졸자 취업이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더 어렵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서울에 있는 어지간한 대학을 졸업하면 전공 과목과 상관 없이 막말로 어디든 쑤시고
들어갈 수 있지만, 영국에서는 어설픈 대졸자가 되면 쑤시고 들어갈 곳이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더 마땅치가 않다. 토종 영국인들, 유럽인들, 그리고 전 세계에서 기회를 찾아 영국을 찾는 이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차라리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일찍부터 다른 진로를 택해서 그 분야에서 기술을 익히거나 사회 경력을 쌓은 이들이 오히려 더 나은 진로를 개척하게 된다. 대학 진학을 결정했다면 어떤
대학을 선택할 것인지, 또 어떤 진로를 선택할 것인지를 놓고 정말 그 분야에 흥미와 적성이 있는지, 그리고 정말 그 분야의 커리어에 대해 확고한 신념이 있는지 주의 깊게 검토해보고
결정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대학 간판이 중요했지
솔직히 대부분 자신의 적성이나 진로와 상관 없는 전공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냥 수능 점수에 맞춰서 그 점수로 갈 수 있는 대학과 전공을 택했을 뿐이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그렇게 대학과 전공을 선택했다가는
시간 낭비, 돈 낭비가 되는 수가 있다. 내가 접한 한국인 구직자들 중
교민 자녀들의 경우 본인 스스로 왜 그 전공을 택했는지 도무지 납득하지 못하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당연히 졸업 후에는 그 분야로 취업을 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른 분야를 택하자니 그 역시 마땅치가
않고, 그래서 대학 졸업 후 진로를 좀처럼 정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그 과정에서 학부모님들 역시
속상하셨을 것이다. 분명 남 보기에 자랑스러운 대학에 무난한 전공을 택해서 진학했는데 왜 자녀의 진로가 풀리지 않는지 답답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런 이들의 학부모님들께서 한국적인
사고방식으로 자녀의 진로를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대학에 진학시키셨다면, 더구나 그 과정에서 다른 한국인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으려고, 혹은 자랑하고 싶어서 자녀의 대학 진학을
희망하셨다면 정말 죄송하지만 그건 잘못된 것이다. 역시 언급하기 조심스러운데, 뉴몰든 한인타운에는 한국식 학원들이 여럿
운영 중이다. 그런 학원을 운영하는 분들이나 그런 학원에 보내는 분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영국에서까지 그런 한국식 사교육을 목격하는 것은 마냥 흐뭇한 일은
아니다. 평범한 영국애들은 그런 사교육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대학에 진학하거나 자기 진로를 찾아가는데, 왜 한국애들은 그런 학원에 다녀야 하는 것일까? 그런 학원들은 결국 대학 진학을 위한 것인데, 진정 그 아이들이 전부 다 대졸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또, 그렇게 대졸자가 된들 그 아이들이 전부 대학 졸업 후에는 그만한 진로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 자녀의 진로를 진심으로 생각한다면
오히려 자녀가 자신에게 정말 맞는 진로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러면서도 영국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는 독립심을 심어줘야 한다. 예전에 석사까지 마친 교민 자녀의
이력서를 받아보고 신입 채용에라도 연결해주려 이메일을 보냈더니, 그 아버지께서 전화를 주셔서 미리 일종의 점검(?)을 하신 뒤에 아드님을 연결해주신 적이 있었는데, 솔직히 참 한심해 보였다. 대학원까지 졸업한 성인 자녀의
취업에 부모가 개입해야 하다니, 안타깝게도 이 친구는 자신이 전공한 분야로 진로를 원하지도 않았고, 그러면서도 대학원 졸업자라는 이유로 희망
연봉은 턱없이 높았다. 그 당시에도 이미 대학 졸업 후 상당 기간 동안 실업 상태였는데, 부디 지금은 그 친구가 어디에서든 자리를 잡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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