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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은 물론이고 심지어 영국 언론에서도 이번 세월호 침몰 소식이 들려오는 마당에 굳이 나까지 관련된 주제로 글을 써야 하나 싶었다.

 

원래 이번 주에 쓰려고 했던 글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런 시기에 나 혼자 엉뚱한 얘기를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것 같아서 결국은 나도 이런 얘기를 꺼내본다.

 

지난 주 목요일 회사에 출근해서 인터넷으로 사고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대형 참사로까지 이어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배가 살짝 기울어진 상태에서 이미 구조가 시작되었으니 승객 대부분이 구조되고 마무리될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지난 천안함 사건을 겪으면서 충분한 교훈을 얻었을 테니 이제는 이러한 구조와 관련된 시스템이 훨씬 향상되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하루 하루가 지날수록 현실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어 갔다.

 

급기야 사건 발생 후 닷새나 지난 이 시점에서, 실낱 같은 기적을 기대하는 간절한 마음이야 여전하지만, 솔직히 이제는 상황이 너무나 절망적으로 느껴진다. 도대체 지난 닷새 동안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배의 침몰 사고는, 이번 경우는 침몰 자체부터 인재(人災)였을 가능성도 있지만, 어쨌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고이며, 그런 만큼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인 부분이 많다.

 

하지만, 침몰 이후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거의 전적으로 우리 인간들의 책임이며, 무엇보다 국가의 책임이 막중하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그야말로 인재(人災).

 

어느 생명인들 귀하지 않겠느냐만서도 국민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더욱 크게 슬퍼하고 절망하고 분노하는 것은 희생자들의 대부분이 아직 어린 10대 청소년들이기 때문이다.

 

아직 아무런 권리도 없고 아무런 선택도 스스로 할 수 없는 그들은 전적으로 어른들의, 학교의, 국가의 이끌림에 의해서 이 순간까지 왔을 터,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상황이 좋을 때는 그야말로 서로가 좋은 게 좋은 것이니 그 본색이 드러나지 않는 법, 그러나 상황이 안 좋을 때는 결국 그 본색이 드러날 수 밖에 없다.

 

이번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는 국가와 지도자들의 본색이 드러나는 법, 급기야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대한민국의 서글픈 자화상을 마주하고야 말았다.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 그 명령을 전달하는 사람들, 그 명령을 받는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고충이 있었을 것이고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번에 보여준 우리 나라의 재난 구조 체계나 방식은 어느 후진국에서나 목격될 수준의 것이었다.

 

무엇보다 비록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세월호의 침몰을 유발하지도 않았고 그것을 바란 이도 없었겠지만, 어쨌든 사건이 발생한 이후의 사태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 수습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높으신 분들과 그들의 명령을 따라 실무를 수행하는 공무원들은 그야말로 한국 공직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무능과 거짓, 그리고 눈치보기와 보신주의(保身主義)를 여지없이 선보여 주셨다.

 

솔직히 인정하자, 대한민국 공직 사회는 절대 그 일의 본질이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윗사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윗사람을 흐뭇하게 만들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내 자리를 보전하고 나아가 내 자리를 높일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고 일을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속한 조직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그러면서 어느 누구도 어떤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 보니 그 일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그야말로 삽질을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고, 그런 만큼 그 일의 본질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놓치는 경우가 파다하다.

 

이런 얘기는 대한민국에서 이미 지난 오랜 세월 동안 그러려니 싶을 만큼 고착된 것이라 별로 새로울 것이 없을 것이고, 우리 모두는 원래 그런 것이지 뭐.”하면서 이를 묵인하고 그 속에서 우리들 역시 적응하는 법을 배워 살아가고 있는 것일 게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렇게 소중한 생명들이 걸린 일에서만큼은 본질에 충실했어야 했다.

 

이번과 같은 사태에서의 본질은 너무나도 단순하다. 세월호에 갇힌 이들을 최선을 다해, 그리고 최대한 신속히 구조해내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지난 닷새 동안 보여지는 모습은 도무지 이 본질에 충실한 것 같지가 않다.

 

내 시선이 삐딱하거나 내가 오해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높으신 양반들의 표정에서 정말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보다는 자신이 이 사태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책임을 모면하고 자신의 자리를 보전할까에 대한 고민이 묻어난다.

 

승객들을 버리고 배에서 탈출한 선장은 이미 충분한 지탄을 받고 있고 나중에 정식 처벌을 받게 되겠지만, 어떻게 보면 그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은 그야말로 나의 오버일까?

 

세월호와 함께 침몰해버린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보고 있노라니 이역만리 타국에서도 너무나 슬프고 또 슬프다.

 

이 글이 지면 신문으로 인쇄되어 나가는 시점에서는 부디 기적이 발생하여 한 생명이라도 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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