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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6 02:14
그들이 남겨준 교훈
조회 수 1541 추천 수 0 댓글 0
단원고 학생들이 남긴 세월호 침몰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동영상을 보면서, 곧 다가올 무시무시한
운명조차 깨닫지 못한 채 여전히 천진난만해 보이는 그들의 마지막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너무나 안타깝고 슬프면서, 또 한 편으로는 이미 그렇게 배가 기울었다면 학생들 스스로 상황을 판단해서 조금이라도
더 현실적인 대처를 할 수는 없었는지 하는 답답함과 아쉬움도 든다. 물론, 자리를 지키라는 잘못된 안내방송 때문인 것은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정도 상황이라면 마냥 안내방송만 의지하기 보다는, 사태의 심각성을 조금이라도 깨달을
수도 있었을 것도 같은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학생들은 과연 평소에도 어떤 종류의 안전 교육이나 훈련을 받아본 적이 있었을까? 그런데, 당장 나의 한국에서의 학창시절을 떠올려보니 초중고 대학시절을 통틀어 정말 단 한 번도
그 어떠한 종류의 안전 교육이나 훈련도 받아본 기억이 전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요즘에는 이런 안전 교육이나 훈련이 시행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학창시절에는 그런 것을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런 종류의 안전 훈련을 받은 것은 미국에서의 어학연수 시절이었다. 당시 우리 학교는
수녀원을 개조한 커다란 건물에 학교 교실과 기숙사가 함께 있었고, 그래서 가끔 화재 경보가 작동하면 전원이
최대한 신속하게 건물 밖으로 나와야 했는데, 몇 분 만에 소방차까지 출동하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솔직히 나를 비롯한 우리 한국 학생들은 실제로 불이 난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들 호들갑을 떠나 하는 반응이었던 것
같다. 오래 전 영화인데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유치원 교사로 나오는 ‘유치원에 간 사나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를 보면 아놀드가 부임한 유치원에서도 비상 대피 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모습이 나온다. 즉, 미국인들은 유치원 시절부터 이런 안전
교육이나 훈련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이곳 영국 역시 이러한 안전 훈련은 일상화되어 있는 듯 하다. 우리 회사가 있는 건물에서도
6개월에 한 번씩 비상 대피 훈련을 실시하는데, 일하다가 갑자기 화재 경보가 울리면
안내 방송에 따라 비상계단으로 대피해서 정해진 대피 장소에 모여야 한다. 그나마 우리 회사는
7층이지만 42층까지 있는 건물이니 높은 층 사람들은 정말 짜증나겠구나 싶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훈련을 받는다는 게 다소 귀찮은 일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실제로 위급한 사태가 생기면 이렇게 훈련 받았던 대로 하면 되는 것이니 새삼 이러한 시스템이 참 옳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거나 기차에서 누군가가 다치거나 의식을 잃은 경우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이들은 크던 작던 사고에 대한 반응이 무척이나 민감하고 고지식하리만큼 철저하다. 그렇게 심각해 보이지 않는 교통사고가 발생해도 도로를 몇 시간이나 폐쇄하고, 기차 승객 한
명이 실려갔다고 몇 시간이나 기차 운행을 지연시키니, 솔직히 나는 그런 영국의 시스템이 답답해 보여서 불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정말로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결코 대충 여겨져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어쩌면 이러한 철저한 시스템은 지난 날 다양한 재난과 테러를 겪어오면서
영국이 축적한 무형의 자산인지도 모른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안전 교육이나 훈련이 거의 없다시피 되어 있고, 사회적으로도
안전 불감증이 만연하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번 세월호 사건은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운 비극이지만, 적어도 비슷한 일을 또 겪지 않으려면 이제부터라도
우리 나라도 유치원 때부터 이러한 안전 교육과 훈련을 철저히 시켰으면 좋겠다. 우리 교육이 아무리 입시 위주의
교육이라고 해도, 이것은 입시보다도 더 중요하고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교육임이 분명하다. 학부모들 역시 자녀들을 열심히 학원으로만 실어 나르고 스마트폰만 쥐어주는 게 다가 아니다. 2005년도에
영국으로 떠나오기 전 한국 사교육 시장에 몸담았던 내가 이미 당시에 목격하기로도 우리 중고등학생들은 현실 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나 스스로
무언가를 판단하고 실천할 수 있는 독립심이 너무 부족해 보였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학생들의 안전을 1차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이들이 그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부터가
명백한 잘못이었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학생들도 어느 정도는 상식적인 선에서 자신들 스스로 판단하고 대처할
수 있었으면 조금이라도 낫지 않았을까 싶다. 앞으로도 다양한 종류의 재난이나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을 텐데, 상황에 따른 대처 매뉴얼도 중요하고 안내 방송도
중요하고 구조도 중요하지만, 사고를 직접 겪는 당사자들이 민첩한 상황 판단 능력과 지혜롭고 독립적인 대처
능력을 갖추는 것도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 국민에게 너무나 커다란 슬픔을 안겨준 이번 세월호 참사, 떠나간 이들은 우리에게 뜨거운 눈물과 함께
그 대신 소중한 교훈도 남겨준 것 같다. 그리고, 그 교훈을 통해 적어도
우리가 동일한 실수를 번복하지 않을 때 비로소 떠나간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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