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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8 22:02
스승의 날 떠오르는 얼굴들
조회 수 1283 추천 수 0 댓글 0
2010년도부터 스승의 날 즈음이면 나의 학창시절 선생님들에 대한 얘기를 써왔는데, 지난 해에 이어 이번 시간에도 고등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떤 선생님들은 참 이 분은 천생 선생님이구나 싶은 분들이 있는 반면, 어떤 선생님들은
도대체 이 분은 왜 선생님이 되셨을까 싶은, 더 심하게는 절대 선생님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선생님도 있었는데,
그런 분들 중 한 분이 지구과학을 가르쳤던 김X기 선생님이었다. 다른 과목들과는 달리 이 지구과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지구과학실로 옮겨서 수업을 받는 것이었다. 수업 첫 날
지구과학실에 갔더니 음침한 지구과학실 앞뒤로 대형 칠판이 두 개씩, 그러니까 총 네 개의 대형 칠판이 있었고,
필기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윽고 지구과학 선생님이 나타나더니 무조건 필기를 하란다. 이번 시간에 다 못하면 다음 시간에 와서도
마저 하란다. 그랬다, 지구과학 시간은 필기의 끝판왕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필기를 하라고 하고선 선생님은 책장으로 둘러싸여 마치 아지트처럼 만들어놓은 본인 자리로 사라져 버리시거나 아니면
아예 교실 밖으로 나가서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릴 때까지도 들어오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있는 지구과학 시간에 그렇게 마냥 필기만 하다가 다음 시간에도 또 필기, 그렇게
2~3주 정도 필기만 하고 나면 대부분은 네 개의 칠판에 빽빽이 적힌 내용을 거의 다 받아쓰게 되고, 그 즈음에 선생님은 필기한 내용을 한 번씩 간략하게 설명하는 식으로 수업을 이어갔다. 그리고
나면 어느새 또 새로운 내용을 빽빽하게 적혀있는 칠판, 그리고 또 시작되는 필기. 수업시간에 우리를 괴롭히지는 않으니 나름 편한 시간이면서도 참 어이가 없었다. 선생님이 그렇게
한 번 칠판 작업(?)을 하시면 그걸로 모든 반이 다 동일하게 몇 주씩 필기를 하니, 그야말로 날로 먹는 수업이었다. 나는 중학교 시절 머리가 굵어지고 사리 판단이 가능해지면서부터 이런 식의 필기나 암기과목이 너무 한심해 보였다. 그렇게 필기하고, 그렇게 암기해서 그걸 시험 보는 게, 그게 과연
교육이란 말인가? 시험을 보고 나면 몽땅 잊어버리게 될 것을, 도대체
그것들을 인생을 살면서 어디에 쓴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 강해지면서 내 암기과목 성적은 하향세를 탔더랬다. 아무리 필기 중심의 수업이라고 해도 다른 선생님들은 그날 그날 새로운 내용을 필기시켰는데, 이렇게 무식하게
칠판 네 개를 채워놓고 몇 주씩 필기만 시키는 경우는 이 지구과학 선생님이 유일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이 지구과학 선생님은 볼 때마다 인상이 찌푸려져 있고 얼굴빛이 너무 안 좋았다. 늘 짜증과 무료함이
가득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수업이 많이 잡혀있지도 않은 과목인데다가 그렇게 필기만 시키고서 본인은 어디 짱박혀
있거나 하니 도대체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뭘 하면서 지내는지, 내가 봐도 참 답답할 것 같았다.
요즘처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하면서 시간을 때울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 선생님이 한 번은 간만에 필기한 내용을 설명하는 수업을 했는데, 이 시간에 어떤
녀석이 까불다가 선생님의 뚜껑이 열렸고, 그런데 그 녀석을 응징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선생님 정말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통 몽둥이로 때리거나 아니면 차라리 따귀를 때리거나 발로 찰 텐데, 이 선생님은
몹시 흥분해서 그 떠들던 녀석에게 달려들더니 나무 몽둥이를 그 녀석의 입에 쑤셔 넣고 휘젓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본인 분에 못 이겨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응징은 초중고 12년 학창시절을 통틀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목격한 것이었을 만큼 독특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반장 녀석이 우리들에게 들려줬는데 심부름을 하라고 부르더니 본인이 먹은 사발면
그릇을 갖다 버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반장이 냄새가 이상해서
보니까 그 사발면 그릇에 토를 해놓았더라는 것이다. 나름 모범적이고 성격 온순한 반장 녀석도 너무 어이가
없었는지 “더러워 죽겠네, 왜 이런 걸 시키고 X랄이야!”하면서 투덜거렸다. 게다가 아무리 우리들에게는 인기가 없는 선생님이라도 친하게 지내는 동료 선생님 한 두 분은 계시기 마련인데, 이 지구과학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전혀 보지 못했다. 아마 그렇게 사발면으로
끼니를 때운 것도 함께 어울려 점심을 먹을 친한 동료 선생님이 없어서가 아니었을까? 나중에 들었는데 이 지구과학 선생님은 명문 K대학을 졸업한 분이라고 했다. 아마도 그 분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택한 교사라는 직업이 본인에게 너무나 안 맞았던 듯 싶다. 그러나, 그렇다고 쉽게 다른 직업으로 바꿀 수도 없고, 그래서 그렇게 늘 행복하지 않은 모습으로 학교에 남아 계셨던 게 아닐까? 내 블로그를 보고서 한국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이들로부터 교사 일이 너무 싫어서 그만두고 영국에 오고 싶다는 연락을
받는 경우가 간혹 있다. 요즘 시대에 제 아무리 교사라는 직업이 인기 직업이라도 그 일이 본인에게 맞지 않고 사명감이 없다면 비록 철밥통의
혜택은 누릴 지언정 결코 행복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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