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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정치 3 마리아 숭배의 전통 432년 에베소 공회가 열린다. 신화 시대가 마감되고 성경의 시대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정서 가운데 아직도 우상 신들의 존재가 뿌리 깊이 내려 있다. 특히 신을 낳은 여신들 비너스나 아르테미스 같은 여신들은 다산의 여신으로 사냥의 여신으로 숭배 받는다. 아이를 낳으려는, 아니면 임신이 안 되는 여인들은 이 여신들을 찾는다.
비너스 그렇지만 그리스도교의 제사장들이 우상의 여신들에게 눈길을 돌리는 여인들을 수수 방관할 수 만은 없다. 교회에서 신자들이 예전의 우상에게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마땅치 않다. 반면 아르테미스를 만드는 장인들도 예수를 믿는 자들로 인하여 자신들이 조각한 작품들이 안 팔려서 걱정하며 모사를 꾸민다. 아르테미스 에베소에 모인 성직자들은 '예수는 인간이면서 하나님'이며 우리도 신을 낳은 어머니가 있다. "하느님을 낳은 어머니가 성모 마리아"라고 공표한다. 이제 전국의 마을 축제에서 아르테미스나 비너스를 가마에 싣고 행진을 하던 행렬에서 성모 마리아가 가마 위로 올라가게 된다. 마리아와 예수 - 루브르 중세부터 르네상스 이후까지 모든 축제 행렬의 선두에는 마리아가 앞장을 서게 되었다. 그리고 전통이 된다. 전 유럽에 특별히 프랑스에 전국적으로 마리아를 숭배하는 교회가 지어진다. 성모를 지칭하는 '노트르 담'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지는 프랑스 전국의 모든 노트르 담 교회는 에베소 공회 이후의 전통이다. 18세기 혁명 전야까지 마리아의 행렬에 절하지 않는다는 것은 실형을 언도 받고 구속당할 일이었다. 그리스도교 국가의 정립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정치적인 분열의 시대가 오자 외부의 침략이 시작된다. 이 침략과 맞서 교회의 주교들을 비롯한 성직자들이 선봉에 서서 국토를 방어하게 된다. 방어하면서 동화시켜 가면서 그리스도교는 서 유럽 국가들의 종교로 굳게 자리 잡는다. 프랑스의 중세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종교적이었다. 모든 백성들이 종교적인 엘리트 지도자들이 행하는 성서의 독점에서 기인한 착시 효과의 포로 생활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는 종교적이 아닌 것을 찾는 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중세에는 초월적인 하느님이 계시고 교회가 하나님의 대리자 역할을 감당하였다. 교회 안에 모셔진 하느님을 대신하여 하늘의 권력을 지상의 대리자인 성직자들이 행사하였다. 중세의 우주관에서 본 일반 사람들의 심리 구조는 21세기에 사는 현대인들의 구조와는 전혀 다르다. 지상의 순간적인 삶보다 중요한 사후의 영원한 삶을 보장 받고 구원을 받기 위하여, 현실의 이 세상에서 개인은 자기가 살고 있는 땅에서 천국을 얻는 착한 행위를 해야 한다. 교회는 신성한 말씀을 전하고 천국 진리의 수호자로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타 종교들을 추종하는 무리들은 방황하는 존재들이며 저주나 지옥이 준비된 자들이고 오직 이 곳 교회가 정해주는 곳만 천국이 존재한다고 설파한다. 중세 교회가 이야기 하는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신 분이었다. 인간은 그 존재 앞에 무릎 꿇고 침묵하고 순종해야 한다. 하느님을 직접 볼 수 있는 안목이 없다면 그 분의 권력을 위임 받은 성직자들에게라도 순종하고 경배해야 한다. 그것이 민간 신앙의 전통이 된다. 중세의 사상은 이분법에 기초를 둔다. 진리와 거짓 그리고 선과 악 부자와 가난, 거룩함과 타락 정의와 부정, 등등의 이분법적인 사고가 바탕을 이룬다. 선이 아니면 차선이 아니라 선이 아니면 악이다. 그래서 중세의 예술, 문화에는 독자성이나 예술성, 창의성은 의미가 없다. 중요하지도 않다 중세의 예술과 문화가 있다면 그것은 교육용이고 두려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종교의 자유나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알려지지 않은 개념이었다. 왜냐하면 진리는 나눌 수없고 진리를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양심도 진리도 하나이며 그 양심의 판단 기준은 오직 성경에서만 찾을 수 있었고 판단은 성직자가 하였다. 1684년까지 파리의 수도원에는 감옥이 있었다. 성직자인 신부가 재판관이 되어 직접 재판하고 구속할 수도 있었다. 사계절 옥탑방에서 테오 bonjourbib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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