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default_style == 'guest'"> guestbook">
“목사님은 그를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저는 그가 우리 집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목사님은 그가 정치범이라는 사실을 모르...
by 박옥수 목사 / on Jan 10, 2007 06:19
“목사님은 그를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저는 그가 우리 집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목사님은 그가 정치범이라는 사실을 모르시지요?” “아니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를 집에 데리고 계시겠단 말입니까?”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됩니다.” 사람들은 그를 떼떼 아저씨라고 불렀다. 그는 서부 아프리카 가나에서 태어나 살았다. 가난에 찌들려 살아온 가나 사람들은 잘 살아보려고 외국으로 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가나인의 입국을 환영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독일로 가서 정치범임을 자처하며 정치 망명을 신청한다. 독일 정부는 법적으로 정치 망명자를 보호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러한 방법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을 가나에 남겨둔 채 독일을 거쳐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한국의 대전으로 왔다. 그리고 판암동에 있는 작은 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그의 성실함이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일과가 끝나면 공장 구석에 마련된 부엌에서 혼자 음식을 만들어 먹고, 야간에는 회사 경비 일을 하면서 지냈다. 가나 사람들은 ‘푸푸’라는 음식을 주로 먹는다. 푸푸는 만쥬옥이라는 고구마같은 식물의 뿌리로 만드는데, 한국에는 만쥬옥이 없다. 그래서 만쥬옥 대신 밀가루로 푸푸를 만들어 먹으면서 매달 아내에게 300달러 남짓한 돈을 송금하는 것으로 기쁨을 삼았다. 그가 우연히 우리 교회의 청년과 만나면서 주일마다 예배에 참석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는 신앙 생활을 시작했고, 그러면서 나와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는 한국에 있는 동안 신앙의 세계를 더 알고 싶어했다. 나는 그가 일하고 있는 회사의 사장님께 협조를 구했다.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일이 잘 되어서 그는 한 달 동안 우리 집에 머물면서 신앙이 자라갔다. 그러다가 그가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섭섭해 했고, 나는 가나에게 선교하고 있는 선교사의 주소를 주며 신앙 생활을 잘 하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가나에 있는 선교사의 부탁으로 아프리카를 방문하여 집회를 인도했다. 가나에 있는 선교사는 예배당을 지었고, 거기서 온 교회가 기뻐하는 가운데 집회를 마칠 수 있었다. 집회 마지막 날에는 가나인들의 목사 안수식이 있었다. 다니엘, 만델라, 세뎀, 어거스틴,그리고 에벤에셀 떼떼가 명단에 들어있었다. 나는 놀랐다. ‘떼떼 아저씨가 목사님이 되다니?’ 그는 이제 망명자 생활을 마치고 검은 대륙에 빛을 밝히는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이다. 그는 겉모습만이 아니라 마음 중심이 이미 과거와는 다른 새 사람이 된 것이다. 떼떼 목사님. 그는 다른 아프리카 사람들보다 더 검고 키도 작지만, 이제 아프리카의 소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게시물을
Document Infomation
댓글 '0'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유로저널-박옥수목사의 연재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