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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인신문 / on Jun 01, 2009 18:12
변화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시몬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을 만난 뒤 변했습니다. 그 다음날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볼 수 없었습니다. 세리 마태는 예수님을 만난 뒤 세관에 없었고,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을 만난 후 베데스다 연못가에 다시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들에게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러한 변화는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이뤄집니까? 성경은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과 우리 생각의 차이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생각이 다르니까 목적하는 바가 다르고, 삶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다른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 쪽으로 다시 옮겨와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하지 않고 생각이 다른 그 상태에서 자꾸 뭔가를 잘 하려고 애를 씁니다.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다른 데에서부터 모든 문제가 시작됩니다. 노아 홍수 때 하나님이 물로 세상을 심판하겠다고 하셨지만, 당시 사람들은 ‘뭘 심판해? 안 하시겠지’ 하는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방주를 예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노아 홍수 당시 사람들이 살인하고 간음하고 도둑질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멸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과 다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멸하시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의 마음과 다른 마음을 멸하시지 다른 것을 멸하시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같게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하려면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사단이 우리를 속여서 그 일을 못 하게 합니다. 그저 열심히 율법을 지키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게 합니다. 사단은 그렇게 하면 우리가 복을 받을 것이라고 속여서 사람들을 행위의 길로 끌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생각은 사단으로부터 주어졌기에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를 그 곳에 살게 하신 후,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와가 하나님의 마음과 다른 뱀의 말을 들었습니다. 뱀이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마음을 버리고 뱀의 그 말을 따라갔습니다. 결국 사단에게 그들의 마음이 연결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사단은 그 연결된 마음을 통해 인간 속에 갖가지 어둡고 악한 생각들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래서 인간 속에서는 끊임없이 어두운 생각이 일어나고 죄악이 솟아납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사 55:6~7)고 합니다. 내 생각, 이것은 사단으로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자기 부인이고,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의 결정을 해야 됩니다 요한복음 2장에서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칫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거기 있는 하인들에게 빈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하인들이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자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줘라.” 하셨습니다.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합니다. 하인들의 눈에는 분명히 물입니다. 자기 경험과 지식으로 판단할 때 물이 틀림없습니다. ‘이건 내가 갖다 부은 물이야. 틀림없이 물이야!’ 그런데 예수님은 포도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때 내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가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뱀의 말을 택해서 사단에게 속했던 것처럼, 이제 거기에서 나오려면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에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많습니다.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야기를 비롯하여 모든 변화의 이야기에는 다 자기 생각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과정이 있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볼 때에는 자기는 병든 지 오래되었고 다리도 말라비틀어져서 도저히 걸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어나서 걸으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결정을 해야 합니다. 자기 생각을 믿을 것인지,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 것인지! 그것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병자가 자기 생각을 믿고 “예수님, 난 안 돼요. 내가 어떻게 걸어요?” 하고 누워 있으면 그는 그대로 병자로 지내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38년 된 병자는 자기가 볼 때에는 절대로 걷지 못하지만 자기 경험과 생각과 판단을 무시하고 ‘내가 볼 때에는 못 걷지만 예수님이 걸으라고 하시니 걷자’ 하고 걸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진정한 변화는 이렇게 형성됩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셨을 때, 그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속으로 생각이 많았습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죄를 사할 수 있어?’ 인간은 갖가지 생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자기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주님, 뭐라고 하셨습니까?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셨습니까? 중풍병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것은 내게도 하신 말씀입니다. ‘내 죄가 사해졌다’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렇다면 내 생각이 어떠하든지 나는 그 말씀을 믿겠습니다. 주님, 내가 볼 때에는 나는 죄가 많은 사람입니다. 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제 내 생각을 접습니다. 하인들이 자신들이 볼 때에는 물이지만 주님의 말씀을 듣고 포도주라고 믿었고, 38년 된 병자는 걸을 수 없었지만 주님의 말씀을 듣고 걸은 것처럼, 주님, 나도 당신을 믿습니다! 내가 볼 때 나는 더럽고 추하지만 내 죄가 사해진 것을 믿습니다! 이제 내 죄는 사함받았습니다!” 이런 믿음이 참된 믿음입니다. 내 생각에 맞으면 주님을 따라가고 맞지 않으면 따라가지 않는 것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내 생각이 어떠하든지 그 생각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그런 믿음이 임하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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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저널-박옥수목사의 연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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