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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을 통해 본 유럽통합 (3)
     지난 호에서는 2차대전이후부터 1970년대말까지 전개된 각 분야의 통합사를 간단히 살펴보았다. 1970년대에는 경기침체와 함께 통합이 정체되었다. 이번에는 이런 통합의 정체를 극복하고 단일시장을 이루기 위한 1980년대의 움직임을 알아보자.

          국경없는 단일시장: 단일유럽의정서 (SEA)
     1970년대 석유파동과 경기침체로 유럽공동체 회원국에서는 실업률이 급증했다. 회원국들은 공동체에서의 협의를 통해 경기침체를 공동으로 해결하기 보다 각 종 비관세장벽을 쌓아 자본과 노동력의 자유이동을 막았다. 자국 국민의 일자리 보장도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회원국이라도 타국민의 자유진입을 반길리 없었다.
     원래 1958년 경제공동체를 설립했을 때의 목표가 단일시장이었다. 즉 회원국간에 상품과 서비스뿐만 아니라 생산요소인 자본과 노동력의 자유이동을 보장하자는 것이었다. 순차적으로 회원국간의 교역에서 관세는 없어졌지만 비관세장벽은 여전히 존재했다. 자본과 노동력의 자유이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법규를 고치고 변호사나 회계사 등 전문자격증도 각 회원국에서 상호인정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체된 유럽통합을 극복하기위한 조건이 조금씩 형성됐다. 1979년 집권한 영국의 마가렛 대처 총리는 경제문제 해결에 시장의 역할을 적극 강조하고 국가개입을 최소하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각 종 복지혜택을 축소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했다. 이런 신자유주의 정책에 기반, 유럽공동체의 원래목표인 단일시장을 이루자는 정책을 계속 제기했다. 특히 유럽공동체 회원국간에 단일시장이 형성될 경우, 다른 회원국과 비교,  런던이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금융서비스와 해상운송서비스 분야가 큰 혜택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테러가 발생한 런던지역에는 금융기관이 밀집해있다. 이곳은 보통 ‘더시티’ (The City)라고 불리며 금융서비스의 중심지역이다).
     독일과 함께 통합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프랑스는 1981년 사회당의 미테랑 대통령이 집권했다. 23년만에 첫 사회당 출신의 대통령이 된 미테랑은 프랑스식 사회복지정책을 추진했다. 사회복지에 더 많은 정부재원을 투입하고 많은 기업을 공기업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의 결과, 정부 재정적자는 누적되고 결국 1983년 프랑스는 이런 복지정책을 포기하고 긴축정책을 채택했다. 당시 실시된 각 종 지방선거에에서 패배한 미테랑 대통령은 이런 실책을 만회하기위해 유럽통합에 적극적이라는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줘야 했다. 독일도 새로 집권한 헬무트 콜 총리가 프랑스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통합정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유럽공동체 주요 3개국에서 이처럼 통합에 박차를 가하고 이를 위한 수단으로 단일시장을 이루자는 합의가 점차 형성되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1985년 행정부역할을 하는 유럽공동체집행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한 자크 들로르 (Jacques Delors) 는 통합을 촉진하기위해 야심찬 계획을 내세웠다. 즉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주요 3개국이 모두 필요성을 느끼는 단일시장 형성을 기치로 내세웠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종 비관세장벽을 제거해야만 했다. 들로르는 이를 위해 개정이나 제정이 필요한 289개의 법을 각 국 정상에게 제기했다. 각 국 정상은 1985년 12월, 1993년 1월1일부터 단일시장을 이룬다는 점에 합의했다. 또 국방을 제외한 국제문제에 대해 회원국끼리 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도록 노력하는 유럽정치협력 (European Political Co-operation)도 공동체의 일이라고 규정됐다. 즉 원래 공동체의 조약과 법규 틀 안에서 시행되온 경제협력을 강화, 단일시장을 이룩하고, 조약 틀 밖에서 실행되어온 정치협력을 공동체 업무로 규정 (물론 여전히 정부간 합의를 바탕으로 했으며 유럽재판소의 관할도 받지 않았다) 하도록 조약을 개정했다. 경제와 정치관련 협력을 모두 한 조약으로 묶는다고 해서 단일유럽의정서 (Single European Act: SEA) 라고 불린다.
     단일시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각 종 비관세장벽을 철폐해야 했다. 유럽재판소 (European Court of Justice)도 1979년 이를 앞당기는 ‘카시스 드 디종’ (Cassis de Dijon)이라는 판례를 남겼다. 독일의 한 수입업자가 프랑스의 독주 ‘카시스 드 디종’을 자국에 수입, 판매하려고 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독일관계당국은 프랑스 독주의 알코올 함량이 15-20%로, 독일법이 정하는 독주함량 25%를 충족하지 못했다며 판매를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독일수입업자는 정부조처가 상품과 서비스의 자유이동을 보장하는 유럽공동체 법을 위반했다며 자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독일 관할법원은 유럽공동체 회원국간에 체결된 조약과 법규 등을 해석하고 재판하는 유럽재판소에 이를 문의했다. 유럽재판소는 한 회원국에서 합법적으로 생산된 제품은 다른 회원국에서도 그대로 판매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즉 규정이 달라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막는 것이 비관세장벽이며 이를 제거해, 상품의 자유이동을 보장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런 판결이 있기 전 유럽공동체는 각 회원국에서 모두 통용되는 유럽규준을 제정하려고 노력했다. 예컨대 특정 전기제품의 경우 갖춰야할 안전기준과 크기 등을 공동으로 제정하고자 했다. 그러나 문제는 각 국마다 규정이 상이하고 또 몇년이 지나면 기술의 진보로 기준이 변경될 수 있는데 유럽공통의 기준을 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결국 이런 공동기준의 합의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카시스 드 디종’의 판결이 있은 후 상호인증이라는 방식을 사용했다. 각 회원국이 필요한 최소한의 규정 – 안전기준 등 – 에만 합의하고 이를 총족한 제품을 다른 회원국에서도 그대로 판매를 허용하는 것이다. 당연히 많은 비관세장벽이 제거됐고 단일시장을 앞당기게 되었다.
     독일 아헨에서 룩셈부르크 수도까지는 자동차로 2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국경통제가 있었기 때문에 트럭운전자가 물건을 싣고 룩셈부르크로 가려면 보통 3-4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국경에서 짐을 검사하고 통관절차도 별도로 밟아야 했기 때문이다. 단일시장을 이루기 위해 점차적으로 독일에서 받은 통관허락서를 룩셈부르크에서도 그대로 인정해주고, 국경통제도 철폐되기 시작했다. 유럽 각 국에서 국경통제가 철폐된 것은 1992년 말부터이다.
     변호사나 회계사 등 전문직종의 경우도 한 회원국에서 자격증을 획득했으면 다른 회원국에서도 인정해주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회원국간에 전문직종의 이동도 자유롭게 됐다. 또 대학생들의 경우도 학점을 상호인정해주고 유럽공동체의 예산으로 다른 회원국에서 보통 1년정도 공부하는 것을 지원해주었다. 따라서 많은 대학생들이 다른 회원국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경제분야에서의 통합인 단일시장 형성이 사회.문화분야의 통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일시장은 단일화폐로 이르는가?
     단일시장을 이루기 위한 조치가 진행되는 가운데 점차 단일화폐의 필요성도 일부에서 제기되었다. 상품과 서비스, 자본과 노동력이 국경없이 자유롭게 이동하게 된다. 회원국간에 화폐가 달라, 교역에서 그대로 사용하게 되면 환차손에 따른 위험부담이 높다. 또 환전에 따르는 비용도 추가로 발생한다. 따라서 단일시장은 결과적으로 단일화폐를 필요로 할 것이라는 경제적.정치적 분석이 고개를 들었다.
     물론 유럽공동체  회원국은 1979년부터 유럽통화체제 (European Monetary System: EMS)를 운용해왔다. 각 국 경제력을 기준으로 화폐의 가중치를 메긴다 (통화 바구니). 100을 기준으로 했을 때, 당시 서독의 경제력이 제일 막강했기 때문에 독일 마르크화의 비중이 제일 높았다. 마르크화를 기준으로 각 국 화폐간 ±2.25% 환율조정이 허용되었다. 예컨대 독일 마르크화 대 프랑스 프랑의 기준거래 환율비율이 1: 2라면, 프랑화의 가치는 2.025 (마르크화대 가치가 하락할 경우), 1.975 (마르크화 대비 가치가 상승할 경우) 조정이 가능하다. 만약, 이 범위를 넘게될 조짐이 있거나 넘으면, 해당 국 중앙은행은 외환시장에 개입한다. 독일 마르크화가 당시 회원국 거래에서 기준통화로 많이 통용됐기 때문에,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도 해당 은행에 마르크화를 빌려줘, 환율의 안정을 도모하도록 했다. 제한된 범위에서 환율이 안정돼 있기 때문에 환차손의 위험이 줄어든다. 어디까지나 유럽공동체 조약이라는 틀을 벗어나 중앙은행끼리 협의를 통해 이런 환율조정이 이루어졌다. 단일화폐는 이 단계를 훨씬 넘어 말 그대로 모든 회원국이 자국화폐를 포기하고 하나의 화폐를 사용함을 의미한다. 당시 독일 마르크는 회원국간의 거래에서 기축통화 역할을 해왔다. 2차대전의 책임으로 역사적 부채를 지고 있으며 정체성에 문제가 있던 서독인에게 마르크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대체 민족같은 역할을 했다. 그런 독일이 마르크화를 포기하고 단일화폐를 채택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외교정책을 실시해온 독일이 가장 중요한 국력의 원천을 왜 포기하겠는가? 같은 차원의 문제는 아니지만 만약에 프랑스나 영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유럽공동체 회원국이 함께 사용하게 하겠는가? 아주 이상적인 경우에만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독일 마르크화를 견제하려는 정책을 일관되게 실시해왔다. 자국 통화정책이 독일 중앙은행에 의해 점차 좌우되는 것을 견제하려면 유럽공동체의 중앙은행과 단일화폐가 필요하다. 따라서 1988년 1월 당시 프랑스 재무장관이던 발라뒤르는 중앙은행과 단일화폐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메모랜덤을 발표했다. 이에 대한 독일 중앙은행의 반응은 원칙적이며 차가웠다. 즉 각 국 경제정책이 상이하고 이자율과 인플레이션도 아주 다른데 이런 조건이 수렴되지 않고 단일화폐를 운운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독일은 1988년 상반기에 유럽공동체 순회의장국이었다. 따라서 당시 집행위원회 자크 들로르 위원장에게 단일화폐의 도입 필요성과 도입 방식등을 연구, 보고케 한다. 1년후 들로르는 유럽중앙은행과 단일화폐의 단계적 도입을 제안하는 보고서를 회원국 수반에게 제출한다. 독일을 비롯한 각 회원국 정부는 이 보고서를 채택했다. 문제는 언제 단일화폐를 도입하고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세부문제는 미정이었다.
     그런데 1988년과 1989년 헝가리와 폴란드 등 몇몇 동부유럽국가가  다당제를 도입하고 자유선거를 실시했다. 이런 와중에서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다시한번 독일문제가 유럽통합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다음 호에서는 독일 통일이라는 대사건으로 촉진된 단일화폐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자세히 알아보자.
  
     안 병 억 (케임브리지대학교 유럽통합전공 박사과정 anpy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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