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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을 통해 본 유럽통합 (9)
     지난 호에서는 프랑스와 네덜란드 국민이 국민투표를 통해 거부한 유럽헌법의 미래를 분석했다. 이번호에서는 영국이 유럽공동체 (EC)에 가입한 1973년까지 영국의 유럽통합정책에 대해 알아보자.

                <영국과 유럽공동체와의 관계>
1951년: 클레멘트 애틀리 총리 (노동당) 유럽석탄철강공동체 (ECSC)에 가입하지 않음.
1955년 11월: 영국 대표단 경제공동체 설립을 위한 회담에서 탈퇴
1961년 7월: 해롤드 맥밀런 총리 (보수당) 유럽공동체와 가입협상 개시.
1963년 1월: 프랑스 드골 대통령, 영국 가입 거부.
1967년: 해롤드 윌슨 총리 (노동당) 유럽공동체 가입협상 다시 개시.
1967년 11월: 드골 대통령, 영국 가입 재거부.
1970년: 에드워드 히쓰 총리 (보수당) 유럽공동체 가입협상 개시.
1973년1월1일: 유럽공동체 가입 (덴마크, 아일랜드도 회원국이 됨).

     2차대전이후 1973년 영국이 유럽공동체에 가입할 때 까지, 영국 정부의 유럽통합 정책은 흔히 ‘버스를 놓쳤다,’ 혹은 ‘기회를 놓쳤다’라는 말로 표현된다. 영국은 석탄철강공동체가 설립된 이후 20년이 지나 겨우 가입했다. 또 가입후 유럽공동체와 여러가지 논란을 벌였다. 그리고 아직까지 유럽통합정책은 정당간의 합의가 없이 논란의 여지가 많은 정책이다. 왜 영국은 뒤늦게 유럽공동체에 가입했는가? 그리고 가입당시 문제점은 무엇이었나?


                 ‘세개의 교차하는 원’과 영국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보수당의 윈스톤 처칠 총리는 2차대전이후 영국의 외교정책을 ‘세개의 교차하는 원’ (Three Interlocking Circles)이라는 간략하면서도 상징성있는 비유로 표현했다. 첫번째 원은 식민지와 영연방이다. 두번째 원은 미국과 캐나다 등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세번째 원은 유럽대륙이다. 영국은 세계 여러나라 가운데 유일하게 이런 세개의 원이 서로 만나는 교집합에 위치한 국가라는 것이 처칠의 분석이다. 영국의 독특함과 해가지지 않는다던 대제국을 거느렸던 자랑스러움, 혹은 자만심을 잘 드러낸 어구이다. 이 ‘세개의 교차하는 원’은 최소한 1960년대 중반까지 영국 외교정책의 기조를 이루었다. 2차대전 이후 집권한 클레멘트 애틀리 노동당 정부나 60년대 해롤드 윌슨의 노동당 정부도 이런 개념을 바탕으로 외교정책을 짰다. 이 교차하는 원에서 유럽 대륙은 우선순위에서도 세번째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교만한 영국과 유럽통합: 1950년대의 정책
     2차대전이후 영국과 유럽대륙을 한 번 상상해보자. 프랑스와 독일 등 대전의 참화를 직접겪은 유럽대륙의 상당수 국가들은 많은 시설이 파괴돼 있었다. 그러나 영국은 섬나라라는 특성상 나치독일의 공격으로부터 비교적 피해를 덜 입었다. 또 점령도 당하지 않았다. 윈스톤 처칠은 2차대전당시 미국이 연합국편에서 전쟁에 개입하기전인 1941년12월 전까지를 영국 역사의 ‘가장 자랑스러운 시간’ (finest hour)이라고 말했다. 즉 나치독일에 맞서 유럽을 지켰다는 것이다. 2차대전이후 세계질서를 짜는데도 영국은 소련, 미국과 함께 참여했다. 따라서 자랑스런 승전국으로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수호한 영국은 자신을 국제무대에서 강대국으로 인식했다. 물론 1차대전이후와 다르게, 2차대전 종결이후에는 소련과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국제무대에 등장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를 바탕으로 영국은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주요 국가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따라서 2차대전이후 집권한 클레멘트 애틀리 노동당 정부는 우선 유럽통합에 관심이 없었다. 자랑스러운 민족국가인데 왜 국가주권을 제약하는 유럽통합에 참여하겠는가? 더군다나 유럽통합에 참여한다는 것은 2차대전당시 나치독일에게 점령당한 프랑스나 베네룩스 3국같은 소국에게는 적당하겠으나 강대국 영국에게는 필요하지 않다는 자만심도 작용했다. 이때문에 영국은 프랑스 주도로 1951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 설립을 추진할 때 이 기구에 참가하지 않았다. 위에 든 이유이외에도 당시 노동당 정부는 석탄과 철도 등 주요 기간산업을 국유화하고 있었는데 이런 중요산업을 국제기구의 관할에 맡긴다는 것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여겼다. 당시 야당 총재인 윈스톤 처칠은 여당인 노동당이 석탄철강공동체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며 비판했다. 그러나 대처가 적절하지 못함을 비판한 것이지 참가하지 않음을 비난하지는 않았다. 1951년말 집권한 윈스톤 처칠은 위에서 언급한 ‘세개의 교차하는 원’을 외교정책의 틀로 삼아 정책을 폈다.
     1955년말 석탄철강동동체 6개 회원국 (프랑스, 독일, 이태리와 베네룩스 3국) 이 경제공동체와 원자력공동체 설립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영국은 장관이 아닌 차관보급의 대표를 협상단으로 보냈으나 초기 협상에 참여하다가 곧 철수했다. 대륙의 6개국이 설립하려고 하는 경제공동체와 원자력공동체 성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여겼다. 또 국가주권을 국제기구에 이양하지 않겠다는 이유도 있었다. 경제공동체를 설립, 관세동맹을 이루면 회원국간에 관세가 없고 비회원국으로부터 수입할 때 회원국이 공동관세를 메긴다. 그러나 당시 영국은 영연방과 교역하는 비중이 대륙과의 그것보다 훨씬 높았다. 따라서 구태여 경제공동체에 가입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영국의 유럽통합정책을 비판하는 학자들은 따라서 영국이 초창기에 유럽통합에 참여, 적극적인 역할을 할 ‘기회를 놓쳤다’라고 주장을 한다. 그러나 당시 영국 정부의 정책은 현실분석에 바탕을 둔 불가피한 정책적 선택이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점차 고개숙이게 되는 영국: 1960년대와 1970년대 초
     그렇지만 영국을 제외한 6개 회원국이 경제공동체를 설립, 관세동맹을 형성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영국 교역에 불리하다고 여겼다. 또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면 강대국 영국의 입지에도 불리할 수 있다고 여겨 점차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당시 해롤드 맥밀런 총리는 유럽공동체에 준회원국으로 가입하던지 혹은 회원이 아닌 다른 여러가지 방안을 검토했으나 결국 회원 가입밖에 대안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당시 보수당 내각의 상당수가 유럽공동체 가입에 반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선 내각의 반발을 무마했다. 그리고 1961년 7월 조건이 맞는다면 유럽공동체와 협상을 벌여 회원국이 되겠다고 발표했다. 곧이어 당시 6개 회원국과 가입협상을 시작했다.
     협상에서 문제점으로 부각된 것은 영국이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 등 영연방으로부터 수입하는 농산물, 유럽공동체가 농민에게 지원해주는 공동농업정책, 영국이 공동체에 납부하게 될 예산액 등이었다. 당시 영연방 국가들은 영국이 주 교역대상국이었기 때문에 영국이 유럽공동체에 가입하면 수출이 줄어들 것을 우려했다. 이제까지 영국과의 교역에서 영연방이기 때문에 낮은 관세로 수출했다. 그러나 영국이 유럽공동체에 가입하면 영연방 국가는 유럽공동체 비회원국이기 때문에 영국에 농산물을 수출할 때 관세율이 높아진다. 따라서 이런 불리한 점을 순차적으로 받아들이려 했다. 영국은 가장 먼저 산업혁명을 이룩한 나라로 농민의 수가 아주 적었고 또 정부에서 농민을 직접 보조했다. 그러나 유럽공동체에 가입하면 공동체 차원에서 농민을 지원해주게 되며 많은 공동체에 많은 예산을 납부한다. 또 농산물 가격에 비싸진다. 농민에게는 유리하겠지만 소비자에게는 물가가 비싸져 불리하다. 예산의 경우 영국의 국민총생산이 독일, 프랑스 다음으로 높았기 때문에 공동체에 납부할 예산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이런 협상진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영국의 가입을 1963년과 1967년, 2회에 걸쳐 거부했다. 영국이 유럽공동체에 가입하면 공동체가 친미쪽으로 방향전환을 하고 유럽에서 프랑스의 지도력이 손상당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2차대전이후 식민지를 잃은 프랑스는 유럽공동체에서 지도자 역할을 수행, 국제무대에서 강대국 행세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영국이 유럽공동체에 가입하면 프랑스의 입지는 좁아진다. 원래 신규 회원국 가입은 6개 기존회원국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드골은 기존 회원국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영국의 가입을 거부했다. 결국 드골이 대통령에서 물러난 1969년 이후에야 영국은 3번째로 유럽공동체 가입을 신청, 성공했다. 3수를 한셈이다.  
     당시 보수당의 에드워드 히쓰 총리는 영국 역사에서 드물게 유럽통합에 아주 적극적이었다. 또 1961년 1차 가입협상 때 외무부에서 근무하며 영국 협상대표를 역임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당시 보수당 의원가운데 상당수가 유럽공동체 가입에 반대했고, 또 야당인 노동당은 반대여론이 압도적이었다. 결국 1972년 유럽공동체 가입법안은 보수당과 야당인 노동당 의원가운데 가입을 찬성하는 의원의 도움으로 하원을 통과했다. 가입초기부터 유럽통합 문제가 정당내, 혹은 정당간 합의가 부족했음을 알 수 있다.
     다음 호에서는 영국의 유럽공동체 가입이후 일어난 여러가지 갈등을 분석한다.
안병억 (케임브리지대학교 유럽통합전공 박사과정 anpy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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