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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을 통해 본 유럽통합 (17)
   유럽연합 예산 (EU Budget)

     지난 호에서는 공동외교안보정책 (Common Foreign and Security Policy: CFSP)을 분석했다. 유럽연합이 유엔에 발의, 채택된 대북인권결의안을 실례로 들면서 공동외교안보정책의 결정과정과 역사 등을 알아보았다. 이번에는 유럽연합의 예산을 상술한다.
     왜 회원국들은 예산안을 두고 그렇게 질긴 입씨름과 협상을 벌이는가? 예산 규모는 어느 정도이고 주로 어느 분야에 많은 돈을 쓰는가?    
     우선 지난 15일부터 이틀간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2007-2013 중기예산안을 분석하면서 설명한다.

                                    중기예산안: EU예산 청사진
     지난 정상회담은 예산타결을 위해 특별히  소집된 회원국 정상들간의 모임이었다. 그만큼 예산안 문제가 시급히 타결돼야 할 현안으로 부각됐다. 16일이 지난 17일 새벽 3시에 협상안이 타결됐다. 회원국 정상들이 16일 하루종일을 협상을 하면서 보냈다.
     중기예산안은 보통 5-7년간 유럽연합의 예산 쓰임새를 보여주는 청사진이다. 어느 정도의 수입을 거두어 어느 분야에 이 예산을 쓰는가를 결정한다. 지난 1988년 당시 유럽공동체 집행위원회 위원장이던 자크 들로르 (Jacques Delors)가 중기예산안을 제안, 채택된 후 실행돼 왔다.  들로르 1 중기예산안은 1988년부터 1992년까지 5년간, 들로르 2는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아젠더 2000은 2000-2006까지를 다루었다. 따라서 이번에 합의된 중기예산안은 유럽연합 역사에서 이런 합의로 4번째이다.
     보통 봄에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가 다음해 예산안을 편성, 각 회원국 장관들의 모임인 각료이사회와 유럽의회에 제출한다. 이들 기구간 협상을 거쳐 보통 9-10월에 다음해 예산안이 확정된다. 중기예산안은 5-7년간 전체 예산규모와 각 연도 예산규모를 정해 놓는다. 이 범위를 넘지 않는 한도내에서 예산이 편성된다. 따라서 이번에 중기예산안이 합의가 되지 않았을 경우 유럽연합은 상당한 어려움에 처했을 것이다. 내년 3월이나 혹은 상반기에 중기예산안이 합의되면 이미 예산안 편성시기를 놓쳤기 때문에 집행위원회나 각료이사회, 유럽의회가 눈코뜰새 없이 이 일에 매달려야 한다. 또 유럽연합 예산은 회원국은 물론 아시아, 아프리카, 카리브해 연안의 국가들, 이밖에 다른 가난한 나라에게도 개발원조를 해주기 때문에 이들 국가도 원조규모를 가름할 수 없어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예산규모, 영국 환급금 (British Rebate)과 공동농업정책 검토약속
     브뤼셀 EU정상회담은 위의 세 문제가 핵심사항이었다. 또 이 3가지 사항이 별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상호연계돼 있었기 때문에 동시에 해결돼야 했다.
     우선 예산규모를 보자. 유럽연합 예산의 수입과 지출은 항상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보통 한 나라 예산의 경우 정부가 돈을 빌려와 예산을 편성할 수도 있어 재정적자가 가능하다. 그러나 EU예산은 적자예산 편성을 금지하고 있다. 또 하나 유엔같은 국제기구의 예산과 다른 점은 수입의 독립성이 어느정도 보장돼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국제기구 예산은 회원국이 경제력에 상응하게 지불하는 분담금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 예산은 공동정책의 결과 발생하는 수익을 예산으로 사용한다. 이 때문에 수익은 보통 ‘자체예산’ (own resources)으로 불린다. 지금까지 유럽통합 특집 연재에서 설명해왔듯이 공동농업정책과 공동통상정책을 실시, 비회원국에서 수입되는 농산품과 공산품에 대해 회원국들이 동일한 수입관세를 메긴다. 이 관세가 유럽연합 예산의 수익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다자간 무역협상이 계속돼 수입관세가 낮아짐에 따라 유럽연합 예산의 수익이  줄어들었다. 따라서 1988년부터 회원국들이 부가가치세의 1%를 예산으로 납부했다. 그러나 부가가치세는 개인의 소비에만 부과되고 정부지출과 투자에는 부과되지 않아 보통 가난한 회원국이 국내총생산 대비 더 많은 부가세를 지불하는 모순이 있었다. 따라서 이 비율이 점점 낮아져 현재 0.5%의 부가세를 지불한다. 또 1988년부터 회원국들이 경제규모에 상응하게 분담금을 지불했다. 독일이 회원국 가운데 최대의 경제대국 (국내총생산)이기 때문에 가장 많은 예산을 지불했다.
     그러나 현재 독일의 경제가 11%가 넘는 실업으로 침체를 겪고 있고 프랑스나 이탈리아도 경기가 좋지 않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많은 회원국들이 유럽연합 국내총생산 대비 %로 표현되는 EU예산을 줄이려고 했다. 이번에 합의된 2007-2013 중기예산안은 유럽연합 25개 회원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1.045%이다. 보통 독일이나 영국 예산이 국내총생산의 30-40%규모인 것과 비교하면 아주 적은 액수이다. 7년간 예산총액은 약 8천620억유로 정도이다. 2007년에 823억유로 (우리돈으로 약 1백조원 정도), 2010년에 1,018 유로(억), 2013년에 1천260억유로 정도이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예산액이 증가하는 것은 2007년이나 2008년에 루마니아와 크로아티아가 가입함에 따라 이들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또 가입협상을 시작한 터키에도 점차 지원을 늘리기 때문이다. 원래 집행위원회는 국내총생산 대비 1.15%, 약 1조억유로는 넘는 돈을 중기예산안으로 제안했따. 그러나 독일 등 주요 회원국이 긴축재정을 편성하고 있는 마당에 유럽연합에 지불하는 돈을 줄이려 했다. 따라서 중기예산안이 대폭 삭감됐다.
     돈의 씀씀이를 보면 공동농업정책에 약 40%가 지원된다. 4억5천만명이 넘는 25개 유럽연합  회원국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5%에 불과하다. 영국이 늘상 주장하듯이 너무나 많은 돈이 농부를 위해 쓰인다. 그러나 유럽공동체 초창기에는 공동농업정책이 유일한 공동정책이었고 대부분의 예산-1980년대 중반까지 전체 예산의 2/3정도-이 이를 위해 사용됐다. 당시와 비교하면 공동농업정책에 쓰이는 돈이 많이 줄어들었다.
     두번째는 30%가 조금 넘는 돈이 새로 가입한 중.동부 유럽국가와 일부 기존회원국의 저개발지역을 위해 쓰인다. 회원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과 대비 75%이하인 국가의 지역발전과 경제발전을 위해 예산이 지원된다 (구조기금). 폴란드의 인구가 3천9백만명으로 신규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고 1인당 국내총생산도 10개 신규 회원국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발트3국-에스토이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키프로스, 몰타) 낮은 편이다. 따라서 폴란드가 구조기금의 지원을 많이 받는다. 나머지 예산은 유럽연합이 개도국에 지원해주는 대외원조, 대학교와 연구소에 지원하는 연구개발기금, 집행위원회와 유럽의회 등 유럽연합 기구 등의 운영비로 사용된다.
     예산규모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 영국 환급금과 공동농업정책 검토약속이었다.
     영국은 지난 1973년 당시 유럽공동체에 가입했다. 영국은 가입협상에서 해마다 일정 규모의 예산을 유럽공동체에 납부하기로 합의했다. 우선 당시 영국의 1인당 국민총생산은 9개 회원국 가운데 7위였다. 그런데 공동체에 납부하는 예산은 독일에 이어 두번째로 많았다. 나머지 7개국 (프랑스,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 덴마크, 아일랜드) 은 공동체에 납부한 예산액보다 공동농업정책 등을 통해 공동체로부터 받는 돈이 더 많았다. 독일의 경우, 당시 경제대국이어 유럽공동체에 예산을 많이 지불해도 별로 문제가 없었으나 영국은 심각했다.
     영국은 최초로 산업혁명을 이룩해 농민의 수가 가장 적었다. 또 대영제국의 유산으로 많은 농산물과 공산품을 유럽공동체 회원국이 아닌 영연방에서 수입했다. 이러다보니 영국은 유럽공동체의 ‘자체 예산’ 규칙에 따라 많은 돈을 유럽공동체 예산으로 납부해야 했다. 반면 농민의 수가 적어 농업정책 지원 차원에서 되돌려 받는 돈은 무척 적었다. 당시 EU 예산의 70%가 전체 회원국 국민의 5%도 되지 않는 농민에 지원됐다.
대처 총리는 “영국의 1인당 국민총생산이 9개 회원국 가운데 7위인데도 불구하고 영국이 너무나 많은 돈을 유럽공동체에 지불하고 있다”며 이 문제의 시정을 요구했다. 그녀는 당시 유럽공동체 회원국 총리와 대통령이 모인 자리에서 ‘내 돈 돌려줘(I want my money back)’라는 말을 직설적으로 내뱉었다. 정상회담은 보통 유럽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큰 틀을 이야기하는 자리이다. 그런데 이 곳에서 시장 아주머니가 큰소리 치듯이 ‘내돈 돌려줘’라는 말을 한 마가렛 대처. 당시 다른 회원국은 그녀의 요구가 정당함을 인정했지만 대처의 그런 스타일을 아주 혐오했다.  
     이 문제는 5년간 지속된 논란 끝에 1984년 프랑스 파리의 교외 퐁텐블로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타결됐다. 유럽공동체는 영국이 공동체에 지불한 예산 가운데 3분의 2를 되돌려주기로 한 것. 그리고 영국이 원래 지불해야 하는 예산 가운데 일부를 특수한 사정을 감안해 되돌려준다는 의미에서 ‘영국환급금(British Rebate)’이라고 정했다. 이후 1980년대 말, 1990년대 말, EU 예산이 논의될 때마다 영국예산환급금의 삭감이나 폐지가 협상 테이블에 올랐으나 지금까지 이렇다 할 해결책을 찾지 못한 상태다. 즉 영국은 아직까지 예산환급금을 받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5월1일부터 중.동부 유럽 10개국이 회원으로 신규 가입, 현재 유럽연합은 25개 회원국이다. 또 영국의 경제상황이 아주 좋아져 현재 1인당 국민총생산이 25개 회원국가운데 상위에 들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일부 예산을 돌려받고 있다. 다른 회원국들이 불평하는 것도 당연하다. 특히 규정에 따르면 신규 회원국도 영국 환급금에 돈을 납부해야 한다. 예산의 지출규모는 정해져있는데 영국에게 돈을 돌려주는 것만큼 수입이 줄어든다. 따라서 다른 회원국들이 수입축소분을 추가로 부담한다. 영국환급금은 유럽연합 예산이 증가하고 영국의 경제상황이 아주 좋아져 유럽연합으로부터 받는 돈이 줄어들수록 증가한다. 즉 2000-2003년까지 영국은 일년에 평균 46억유로정도였다. 그런데 원래 규정대로라면 2007-2013년까지 영국은 일년에 평균 71억유로, 모두 497억유로를 유럽연합으로부터 되돌려받는다. 따라서 이런 모순을 안고 있는 영국이 예산환급금 규모를 얼마나 축소하느냐가 이번 회담의 관건이었다.
     프랑스는 공동농업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로 영국 환급금 폐지를 요구했다.그러나 영국은 아직도 예산의 40%가 농부지원을 위해 사용되면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연구개발 등에 돈을 투자할 수 없다며 공동농업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안을 약속해야 이를 줄일 수 있다고 버티었다. 공동농업정책은 2013년까지 지원규모가 이미 2003년에 결정됐다. 영국은 결국 환급금 규모를 축소하는 대신 2008-2009년 유럽연합예산 전반을 검토한다는 약속을 얻어냈다. 집행위원회가 예산수입과 지출에 대한 개혁보고서를 제출하면 이를 바탕으로 회원국들이 협상한다. 당연히 영국은 공동농업정책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려 하고 프랑스는 공동농업정책을 되도록이면 유지하려고 한다.
     영국은 원래 2007-2013년에 497억유로를 되돌려받기로 추정되는데 1백5억유로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원래 80억유로만 양보하기로 하다가 막판 협상과정에서 양보했다. 영국이 예산환급금을 양보하는 만큼 신규 회원국인 중.동부 유럽국가에 지원되는 금액이 늘어난다. 또 독일과 네덜란드, 스웨덴, 오스트리아 등 유럽연합으로부터 받는 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납부하는 국가들의 예산납부액이 조금 줄어들었다.
     이번에 중기예산안이 타결된 것은 의장국 영국의 역할과 독일의 중재노력이 효과가 컸다. 각 회원국은 6개월마다 돌려가며 유럽정상회담과 각료이사회의 의장국을 맡아 유럽연합을 대외적으로 대표하고 협상을 이끈다. 의장국은 보통 중립적인 입장에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중기예산안에서 영국은 영국환급금을 지켜야 하는 당사자의 입장에 있었다. 또 이번 환급금 축소에 대해 야당인 보수당이 ‘공동농업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약속도 얻지 못하고 환급금을 너무 많이 양보했다’고 비판하듯이 국내정치적 제약때문에 토니 블레어 총리는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의장국이기 때문에 이 정도의 환급금 양보도 제시했고 협상타결을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유럽정상회담에 첫 데뷔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영국이 당초 제시한 총 예산액 규모가 너무 적다며 이를 올리고 독일이 이를 추가로 부담하겠다고 확약, 폴란드의 불만을 잠재웠다. 결국 협상 타결에 중요한 중재자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번 예산안 타협으로 예산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다. 이번 중기예산안이 2013년에 종료되기 때문에 2011년 정도에 또 다시 새 중기예산안을 협상해야 한다. 또 다시 영국 환급금과 공동농업정책의 지원규모가 논란이 될 것이다.
       다음 호에서는 사법과 내무분야에서의 협력을 알아보자.
  안병억 케임브리지대학교 국제정치학과 박사과정 (anpy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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