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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30 23:05
일상생활을 통해 본 유럽통합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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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을 통해 본 유럽통합 (23) 공동어업정책 (Common Fisheries Policy) 지난 호에서는 후진국과 개도국을 지원해주는 개발원조정책을 분석했다. 유럽연합과 회원국이 미국과 일본의 원조액을 합친 액수보다 훨씬 더 많은 국제원조를 제공하고 있음을 알았다. 또 각 지역별, 나라별로 상황에 맞는 원조정책을 실시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상술했다. 이번에는 공동어업정책을 분석한다. 왜 어업을 공동정책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쟁점은 무엇인가? 우선 공동어업정책의 실례를 들어본다. 실례 1) 대서양상에 있는 아름다은 섬 아조레스 제도. 포르트갈의 땅으로 사시사철 기후가 온난, ‘대서양의 하와이’라는 불리는 유명한 휴양지이다. 제주도보다 약간 큰 섬이며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1500km 떨어져 있다. 농업과 어업, 관광업이 주요 산업이다. 지난해 봄 이 곳에서는 어부들의 시위가 몇달째 계속되었다. 한평생 고기를 잡아온 어부들이 고기를 잡지도 못하며 발을 동동구르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나라-스페인이나 영국-의 어부들이 몰래 대형 선박을 몰고와 이 곳에서 고기를 빼앗아가고 있었다. 생계터전을 잃은 어부들은 생계보전과 몰래 고기를 잡는 타국 어부들을 제대로 단속할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국제해양법에 따르면 한 국가의 배타적 경제수역은 200해리이다. 즉 이 안에서는 자국민들의 어로행위만 가능하다. 그러나 유럽연합 25개 회원국은 공동어업정책을 실시, 어장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12해리만 회원국의 독점적 어로행위가 가능하다. 이러다보니 어민의 수가 많고 좋은 선박을 지닌 나라의 어민들이 다른 회원국의 바다로 가서 고기를 잡는 일이 빈번했다. 문제는 이들의 행위가 이미 허용된 어획량을 넘은 불법 어로행위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아조레스 제도 당국은 인력과 장비가 부족, 이들 불법 어민들을 단속하지 못하고 있었다. BBC Radio Four의 시사다큐멘타리 프로그램인 ‘크로싱 콘티넌트, 크로싱 유럽’ (Crossing Continent, Crossing Europe)에서 이런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었다. 유럽통합을 공부하는 필자로서는 매우 흥미진진하게 이 프로그램을 들은 기억이 있다. 실례 2) 2004년 2월 당시 영국 보수당의 마이클 하워드 총재는 독일 베를린을 방문했다. 독일 기독교민주당 (CDU)의 주요 인사들을 만난 후 하워드 당수는 기민당의 싱크탱크라 불리는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에서 연설을 했다. 총재로 취임한지 약 4개월이 지나 유럽 몇개국을 방문하던 그는 이곳에서 공동어업정책을 실시할 필요가 없다며 자신이 집권시 협상을 통해 어업정책을 개별정책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스코틀랜드 어민들은 유럽연합이 허용한 대구 등 주요 어족의 총어획량이 너무 적은데다가 스페인의 어부들이 몰래 고기를 잡아간다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를 인식한 하워드 총재가 공동어업정책을 폐기하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당시 독일외교협회의 객원연구원으로 베를린에 체류중이던 필자는 하워드 당수의 연설을 들었다. 아데나워 재단과 기민당의 주요 인사들은 하워드 총재의 연설을 들으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유럽연합 주요회원국 영국의 야당 당수가 다른 나라에 와서 유럽연합의 비전 등을 제시하기 보다 국내 어민을 위한 인기영합성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이상의 두가지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공동어업정책은 때때로 격렬한 시위와 함께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켜 왔다. 우선 이 정책의 주요일지를 보자. 1970년: 공동어업정책 관련 규정 채택됨. 1973년: 영국, 덴마크, 아일랜드 신규 회원국으로 유럽공동체에 가입. 노르웨이는 국민투표에서 가입 거부. 당시 공동어업정책에 대한 거부감이 국민투표가 부결된 이유중의 하나이다. 1983년: 공동어업정책이 채택됨 (그동안 어족의 공동관리, 총어획허용량, 쿼터 등의 합의가 난제였음). 회원국의 배타적 경제영역은12해리임. 2002년 12월: 개정된 공동어업정책이 실시됨. 확대와 공동어업정책 우선 공동어업정책은 1983년에서야 합의가 된 후 실시돼왔다. 공동농업정책이 1963년부터 시작된 점과 비교하면 20년 후에야 비슷한 공동정책이 합의가 됐다. 이처럼 공동어업정책의 실시가 늦게 된 이유는 주요 회원국간의 합의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공동농업정책 (Common Agricultural Policy: CAP)은 이전에 설명한 바와 같이 프랑스와 독일의 대협상으로 성립했다. 프랑스는 유럽경제공동체 설립으로 당시 경쟁력 있는 독일 제조업이 자국 시장을 석권할 까 우려했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프랑스 농업을 유럽차원에서 지원하기 위한 공동농업정책의 조기 이행을 요구했다. 이에따라 1963년 곡류 등 일부 농산품을 공동체 차원에서 지원해주는 공동농업정책이 실행돼왔다. 그러나 어업의 경우 상황이 달랐다. 프랑스와 독일, 베네룩스 3국, 이탈리아 등 유럽경제공동체 6개국은 어업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과 덴마크, 아일랜드 등 어민의 수가 많은 나라들이 회원국으로 가입할 것이 확실시 되면서 프랑스는 공동체 차원에서 수산물의 가격을 지원해주고 어족을 공동관리하는 공동어업정책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물론 영국과 덴마크, 아일랜드 등 어장이 큰 나라들이 회원국이 될 경우 프랑스 어민들이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반경도 넓어지고 자국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1970년 공동어업정책 관련 규정이 채택되었다. 회원국의 선박이 다른 회원국의 바다로 가서 고기를 잡고 수산물에 대해 가격지원을 해주며 어촌의 기반시설을 지원해주는 내용이었다. 영국 등 3개국은 1973년 1월 신규 회원국이 되었다. 신규 회원국들은 기존 회원국들이 제정한 조약과 규정, 지침, 관례 등 이른바 ‘아키 코뮤니테’ (acquis communautaire)를 준수해야 한다. 당연히 영국과 아일랜드는 당시 경기가 좋지 않아 실업률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넓은 어장을 다른 회원국 어민들을 위해 내어주려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구체적인 합의가 계속 미루어지다가 1983년에야 합의가 됐다. 회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12해리로 정하며 공동체 차원에서 공동으로 어족을 관리한다. 이를 위해 총어획허용량 (Total Allowable Catches: TACs), 각 회원국별로 어족에 따른 쿼터 설정 등에 합의했다. 해마다 총어획허용량과 쿼터를 설정하는 관련 장관들의 회의가 열린다. 회원국의 경제상황, 특히 어민들의 조직력과 로비 등에 따라 총어획허용량과 쿼터설정문제는 논란이 된다. 영국, 아일랜드, 스페인 등 어민이 많고 북해, 지중해, 대서양 등 큰 바다를 끼고 있는 회원국들은 불만이 많다. 다른 회원국 어민들이 와서 고기를 잡아가도 어쩔 수가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 설명한 마이클 하워드 당수의 공동어업정책 폐기요구도 어민들의 이런 불만에 편승한 발언이다. ‘팍터테임 사건’ (The Factortame Case) 회원국간의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사건이 팍터테임 사건이었다. 어민의 수가 많던 스페인은 포르투갈과 함께 1986년 유럽공동체 회원이 되었다. 두 나라의 어민이 많아 고기를 빼앗길 것을 우려한 기존 회원국들은 10년이 지난 1996년에야 공동어업정책이 두 나라에 완전하게 적용된다는 과도기 규정을 두었다. 비록 과도기 기간이 있었지만 스페인 어부들은 영국 해역에서 많은 고기를 잡아갔다. 스페인에게 할당된 어획허용량을 초과하게 되자 스페인 선주들은 선적을 영국으로 옮겼다. 1894년 제정된 영국 상선법 (Merchant Shipping Act)은 당시 대영제국의 상황을 반영, 다른 나라의 선주들도 영국에 선적을 등록하는데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았다. 스페인 선주들은 이를 이용, 영국 선적을 획득한 후 영국의 쿼터를 이용, 더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즉 선적을 변경, 다른 회원국의 허용 어획량 (쿼터)을 빼앗은 셈이다 (quota-hopping). 영국 어민단체를 중심으로 불만이 제기되자 영국 정부는 1988년 상선법을 개정했다. 영국 선적을 획득하려면 선주가 영국국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영국에 거주하거나, 주요 사업장이 영국에 있거나 최소한 주주와 이사의 75%가 영국 국적을 보유하고 영국에 거주하고 있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당연히 스페인 선주들의 쿼터강탈을 제지하려고 만든 법이다. 그러자 스페인 선주들은 이 법이 국적을 근거로 다른 회원국 국민의 차별을 금지한 유럽공동체 법을 위반했다며 영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회원국간에 상품과 서비스, 노동과 자본이 제한없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단일시장인데 국적규정을 두어 다른 회원국 국민의 영업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주요 원고중의 하나가 팍터테임사이다. 따라서 이 사건은 통상 팍터테임 사건이라고 불린다. 유럽연합의 기구인 유럽법원 (European Court of Justice)은 회원국 법원이 공동체 법의 해석을 의뢰하면 판결을 내린다. 모든 회원국에 공동체 법이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법을 해석하는 역할을 한다. 유럽법원은 영국의 상선법이 공동체 법을 위반했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1988년이후 스페인 선주들이 영국 상선법 때문에 고기를 잡지 못한 재산상의 손해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영국 정부와 어민들은 유럽법원의 판결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국법이 유럽공동체 법을 위반했다는 것도 불만인데 배상도 명령했기 때문이다. 다시한번 유럽공동체 법이 회원국 법에 우선하며 직접 적용된다는 점을 확인해준 사건이었다. 당시 이 판결을 지켜본 보수당의 윌리엄 캐시의원 (유명한 유럽통합 회의론자임)은 “하원이 무의미해졌다”고 불평했다. 최고의 입법기구 하원이 법을 만들어도 유럽법원이 공동체법을 위반했다고 판시하면 이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사정을 그대로 표현한 말이다. 동구권 확대와 공동어업정책 2004년 5월1일 동.중부 유럽 10개국 (폴란드,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발트3국, 키프로스, 몰타)이 유럽연합의 신규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이 가운데 폴란드의 인구는 3천9백만명으로 신규 회원국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다. 또 국민중 16%가 농수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또 발트해를 끼고 있어 어민도 꽤많다. 공산주의 시절 물려받은 노후된 소규모 선박을 이용, 바다오염 등도 큰 문제로 부상했다. 이에따라 유럽연합은 폴란드 어촌의 환경개선 사업에 많은 돈을 지원하게 되었으며 노후선박폐기에 따른 지원도 늘어나게 됐다. 현재 어업은 25개 유럽연합 회원국 국내총생산의 1%를 차지하고 있는 아주 소규모 산업이다. 그러나 해안지역의 경우 대다수가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고기잡이는 단순한 숫자나 돈놀음이 아닌 삶의 터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에따라 유럽연합은 어족보호, 어촌환경개선사업, 양식업 등에 지원을 집중하고 있다. 양식업의 경우 바다에서 어획남발을 막을 수 있고 직업을 창출할 수 있다는 이점때문에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또 공동정책이기 때문에 집행위원회가 비회원국과의 대외협상을 전담하고 있다. 모로코, 캐나다 등과 협정을 체결, 상당한 돈을 지불하고 어획권을 획득한다. 이렇게 되면 유럽연합 회원국의 어민들이 이 곳 나라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들어가 허용된 양만큼 고기를 잡을 수 있다. 다음 호에서는 가난한 회원국과 부자회원국간의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지역정책을 분석한다. 안병억 케임브리지대학교 국제정치학과 박사과정 (anpy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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