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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을 통해 본 유럽통합 (27)
   단일화폐 유로 (3)

       지난 호에서는 단일화폐 유로가 왜 다시 유럽통합의 의제로 등장했는가를 분석했다. 프랑스의 일관된 정책인 독일 마르크화의 패권을 견제하려는 움직임과 화폐통합의 열쇠를 쥐고 있던 독일의 정책을 해부했다. 특히 독일 통일이 단일화폐 도입을 앞당겼으며 단일화폐가 단순한 경제적 논리에서 도입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이번에는 경제화폐동맹에 합의한 유럽연합조약 (일명 마스트리히트 조약) 체결과정을 분석한다. 각 국의 단일화폐에 대한 입장은 어떠했고 어떤 합의가 이루어졌는가를 상술한다.

                                         정부간회의와 단일화폐
       1990년 12월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열린 유럽정상회담에서 회원국 수반들은 경제화폐동맹과 정치연합을 논의할 정부간회의 (Intergovernmental Conference: IGC) 를 소집했다. 각 국이 대표-때에 따라서는 외무장관이나 차관, 재무장관이나 차관-를 보내 핵심사항을 협상하고 타결한다. 협상이 어려운 문제는 정상회담으로 넘겨 이 곳에서 각 국 수반들이 보통 마라톤 협상을 통해 타결을 시도한다. 이듬해 12월 네덜란드의 조그만 국경도시 마스트리히트에서 열린 유럽정상회담에 참석한 각 회원국 수반들은  유럽연합조약에 서명했다. 3단계를 거쳐 단일화폐가 도입되며 공동외교안보정책과 내무.사법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한다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정부간 회의 소집에서 타결까지 1년이 걸렸는데 이 가운데 단일화폐와 관련된 주요 쟁점사항을 분석한다.
      
1)        단일화폐 출범시기와 수렴조건 (convergence criteria), 가입국의 수, 중앙은행의 독립성
       전회에서 소개한 들로르 보고서는 단일화폐 도입을 3단계로 건의했다. 1단계는 회원국간의 자본이동을 자유화하는 것이다. 2단계는 경제.재정정책의 조정을 강화한다. 이 단계에서 유럽중앙은행의 모태가 되는 기구가 활동을 개시할 수 도 있다. 3단계는 각국 화폐의 환율과 단일화폐의 환율을 고정시키고 단일화폐가 출범한다.
       논란의 하나는 언제 유럽중앙은행이 설립돼 활동을 개시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몇몇 회원국은 되도록이면 빠른 시기에 - 2단계에-중앙은행을 설립하고자 했다. 독일이 행사하고 있는 통화주권을 조만간에 유럽화해 프랑스도 이 권한을 행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과 네덜란드 등 이른바 화폐가치가 강한 나라의 경우 유럽중앙은행 설립시기를 3단계로 늦추려고 했다. 각 국이 경제정책의 조정을 강화, 이자율과 인플레이션율이 어느정도 수렴이 돼야 한다. 이런 바탕위에서 유럽중앙은행이 출범해야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중앙은행 출범시기는 3단계로 정해졌다. 프랑스는 단일화폐 도입시기를 조약에 명시하려고 했다. 경제여건이 어떨지 모르는데 출범시기를 조약에 명시한다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독일 마르크화를 견제하려던 프랑스의 일관된 정책을 이해하고 단일화폐 출범에 우선순위를 둔 프랑스 정부의 입장을 알면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있다. 결국 프랑스와 독일간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조약은 단일화폐가 1997년 출범하던지, 아니면 아무리 늦어도 1999년 1월 출범한다고 못박았다.  
       같은 맥락에서 단일화폐를 채택하기 위해서는 회원국들이 엄격한 수렴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이자율과 인플레이션율, 정부부채 등에서 규정된 조건을 지켜야 단일화폐를 도입할 수 있었다. 유럽중앙은행에서 단일화폐 가입국에 단일한 이자율을 적용한다. 그런데 각국마다 이자율 차이가 많이 나고 정부의 부채가 과도할 경우 경제운용이 어렵다. 독일정부는 마르크화의 패권을 포기하는 대가로 엄격한 수렴조건을 제시했다. 새로 출범한 단일화폐가 마르크화처럼 안정된 가치를 유지하려면 경제여건이 충실해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너무 엄격한 수렴조건을 내세우면 단일화폐 가입국 수가 줄어들 수 밖어 없다. 특히 정부부채가 많고 경제여건이 그리 좋지 않았지만 유럽통합에 적극적이던 이탈리아는 약간의 유연성이 있는 수렴조건을 선호했다.
       마찬가지로 독일은 중앙은행이 어느 누구로부터 지시를 받지 않은다는 중앙은행의 독립성 보장조항도 강력하게 요구했다. 독일의 중앙은행 분데스방크가 이런 독립성을 보장받아 마르크화의 가치를 안정시키고 물가안정에 기여해왔다. 따라서 독일식 모델을 수용해야 마르크화를 포기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다른 나라들도 독일의 분데스방크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모델을 따라 유럽중앙은행을 설립하면 국제적으로 신뢰성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겨 독일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에따라 중앙은행의 정부정책의 수단으로 활용했던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은 중앙은행법을 수정, 독립성을 보장해야만 했다.
       구체적인 수렴조건은 다음과 같다. 인플레이션율이 가장 낮은 3개 회원국에 근접해야 한다. 또 공공부채가 국내총생산의 3%를 넘어서는 되지 않는다. 장기이자율이 가장 낮은 3개 회원국 평균보다 2%를 초과해서는 안된다. 이런 수렴조건을 지키기 위해 이탈리아는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금을 매각하고 공기업 매각 등도 서둘렀다. 독일 정부도 급속한 통일에 따른 통일비용의 급증으로 공공부문의 부채가 급증하자 3%선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주 꽉죄는 옷과 같은 조건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이런 수렴조건에 약간의 융통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요구했으나 이를 제대로 관철시키지 못했다.

2)        안정성장조약 (Stability and Growth Pact)
       경제화폐동맹을 완성하기 위한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유럽연합조약이 1993년 11월부터 발효됐다. 당시 유럽각국은 냉전붕괴이후 불어닥친 방산업체의 구조조정과 경기침체로 정부재정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경기가 좋지 않다보니 조세수입은 줄어드는데 실업급여 등 각 종 사회복지 비용은 증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유럽연합조약을 지켜 단일화폐를 채택하려면 공공부채를 국내총생산의 3% 선으로 유지해야 했다. 각 국 정부로서는 괴로운 정책 딜레마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정부는 수렴조건을 더 강화, 안정조약을 체결하자고 제안했다.
       단일화폐 도입에 따라 마르크화의 패권을 포기해야만 하는 분데스방크는 수렴조건이 헛점이 많다며 별도로 이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통화정책은 유럽중앙은행으로 이관되는데 조세를 걷고 쓰는 것은 아직도 회원국 권한이다. 아무리 재정적자 축소를 권고했지만 강제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를 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데스방크는 이런 점을 집중부각했고 당시 야당이던 독일의 사회민주당도 유럽연합조약에서 이런 점이 미비하다며 정부를 집중 공격했다. 마르크화의 가치안정을 철칙처럼 여겼던 독일인들에게 이런 논리는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당시 헬무트 콜 정부는 이런 요구를 무시할 수 없어 1996년 정식으로 다른 회원국들에게 안정조약을 체결하자고 제안했다. 원래 독일은 유럽연합조약의 관련 규정을 개정하는 또 하나의 조약을 원했으나 다른 회원국들이 반대, 각료이사회의 규정으로 독일의 요구가 수용됐다.
       공공부채가 국내총생산의 3%를 넘는 국가들은 막대한 액수의 벌금을 지불하고 이를 준수하겠다는 구체적인 일정표를 제시해야 한다. 1997년 5월 총선에서 국회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 프랑스의 총리가 된 좌파 리오넬 조스펭은 이런 안정조약이 경제성장과 고용을 촉진하기 위한 정부정책에 반한다며 고용정책도 아울러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독일 정부는 안정조약에 성장이라는 단어를 부가하는 정도만 양보했을뿐 다른 관련조문은 한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3)        탕자 독일과 예외 독일
       위에서 상세하게 분석했듯이 단일화폐를 채택하기 위한 수렴조건과 안정성장조약은 독일 모델을 따랐다. 규칙을 철칙으로 여겨, 모든 것을 규칙으로 해결하려는 독일식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드러냈다. 물론 당시 독일 여론도 마르화처럼 가치가 안정된 유로화를 강력하게 희망했음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름도 안정성장조약이라고 붙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조약을 상습적으로 위반하고 있는 나라가 독일이다.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도 이 조약을 위반했다. 독일은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연 4년동안 공공부채가 국내총생산의 3%를 넘었다. 유럽연합의 기구로 행정부 역할을 하며 조약준수를 감독하는 집행위원회는 따라서 2003년 7월 안정성장조약을 위반한 국가들에 대해 제재를 건의했다. 안정성장조약의 규정에 따라 이들 국가는 막대한 벌금을 지불하고 정부재정을 건전하게 운용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표를 제출해야 했다. 그러나 회원국 재무.경제장관들의 모인 각료이사회는 (Economic and Financial Affairs Council: Ecofin)는 이들 두고 주요 회원국과 소국으로 양분되었다. 베네룩스 3국은 왜 조약을 위반한 독일과 프랑스 등 이른바 메이저 국가에게 예외를 인정하냐며 조약준수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프랑스와 독일, 유로화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집행위원회의 이런 제재건의를 달갑지 않게 생각한 영국은 제재조치를 반대했다.
       결국 2003년 11월 각료이사회는 안정성장조약에 규정된 제재조치를 잠정적으로 보류시켰다. 이에 불만을 품은 집행위원회는 각료이사회가 유럽연합 조약을 위반했다며 유럽법원에 제소했다. 법원은 2004년 7월 판결을 통해 각료이사회와 집행위원회 양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각료이사회가 제재보류를 결정할 권한은 있다. 그러나 조기에 이 조약을 다시 준수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최근 집행위원회는 독일 정부에 올해안에 재정적자를 줄인다는 구체적인 계획표를 요구했다. 또 안정성장조약의 준수를 엄격하게 감독하겠다고 선언했다.
       독일의 실업자는 현재 5백만명이 넘고 있다. 정부가 쓸 돈은 늘어나는데 공공부채 3%선이라는 조항에 얽매인 정부는 한손이 묶여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1월말 출범한 기민당/기사당-사민당의 대연정은 이 조약을 지키기 위해 2007년부터 부가세를 16%에서 19%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세수가 늘어나 3% 상한선을 지킬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 였다. 그러나 경영자단체와 노조 모두 정부의 이런 조치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정부가 긴축재정을 짜고 민영화 등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지 애꿎게 국민을 봉으로 보고 부가세를 인상하느냐는 것이다. 부가세는 간접세로 월급이 1천만원 사람이나 2백만원인 사람이나 모두 같은 세금을 지불한다. 대부분의 물건과 서비스에 부가세가 부과된다.
       안정성장조약을 위반하는 영국 언론은 탕자 독일, 예외 독일을 언급하며 이 조약의 문제점을 집중 조명한다. 지키지도 못할 조약을 기관차처럼 밀어붙여 다른 회원국에게 들이밀고 4년동안 이 조약을 위반했다. 그리고 이 조약의 적용조차 유보해 놓았다.
       다음 호에서는 유럽연합의 주요 기구인 유럽정상회담 (European Council)과 각료이사회를 분석한다.                        
  안병억 케임브리지대학교 국제정치학과 박사과정 (anpy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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