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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을 통해 본 유럽통합 (28)
   유럽정상회담 (European Council)과 각료이사회 (the Council of the EU)

       지난 호에서는 단일화폐 유로 분석 3번째로 유로화 출범에 대한 회원국의 논란을 분석했다. 또 유로가입을 위한 수렴조건을 한층 강화하는 안정성장조약이 추가로 필요했던 이유와 독일과 프랑스가 이 조약을 연이어 위반하고 있음을 알아보았다.
       이번에는 유럽연합을 운영하는 기구의 하나로 핵심역할을 하는 유럽정상회담과 각료이사회를 분석한다. 이 기구가 어떻게 운영되며 무슨 역할을 하는가? 또 역사적으로 어떤 발전과정을 거쳐왔는가?
     우선 정상회담과 각료이사회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의  실례를 들어본다.

      실례 1) 지난해 12월14-15일, 25개 회원국 수반들이 브뤼셀에서 모였다. 2007-2013년까지 유럽연합 예산의 씀씀이 규모와 정책 우선순위 – 공동농업정책과 지역정책 등 – 를 타결짓기 위한 모임이었다. 영국 예산환급금의 축소를 두고 이튿날 마라톤 협상을 벌였다. 결국 자정을 넘긴 16일 새벽 3시쯤 회원국 수반들은 논란이 되던 문제를 마무리 지었다. 이로써 지난해 6월 네덜란드와 프랑스 국민이 유럽헌법조약을 거부한 데 이어 6월 열린 정상회담에서 예산안이 합의되지 못해 위기에 빠졌던 유럽연합은 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돈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국제문제 등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실례 2) 25개 회원국 외무장관들은 지난 10-11일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비공식모임을 가졌다. 오스트리아는 올 해 상반기 유럽정상회담과 각료이사회의 순회의장국이다. 따라서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이 각료이사회 – 회원국 관계 장관들이 모여 유럽연합의 공동관심사를 논의하며 결정한다 – 를 주재하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지원을 계속할 것인가를 토론했다. 이스라엘의 파괴를 강령으로 내세운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선거에서 제일 정당이 되어 정부를 구성했다. 미국은 하마스가 테러를 포기하지 않는한 지원을 해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최대 원조제공국이지만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원은 얼마 되지 않는다. 유럽연합과 각 회원국이 팔레스타인자치정부에 최대 규모의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이 곳의 공무원과 교사 월급도 유럽연합에서 주고 있다. 또 병원과 식량 제공 등 각 종 인도적 지원도 포함된다.  만약에 유럽연합이 이런 인도적 지원마져 중단한다면 팔레스타인 인민은 엄청난 고통에 직면할 것이다. 따라서 유럽연합 각 회원국으로서는 정책 딜레마에 빠져 있다. 분명히 하마스에게 테러를 포기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려면 원조중단만큼 효과적인 무기가 없다. 그러나 이 카드는 단 한번 최후로 쓸 수 있는 수단이다. 그리고 부수적인 악효과가 너무 크다. 회원국간의 입장차이도 있고 미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고 이래저래 골치아픈 문제이다.

     위에서 실례를 든 것처럼 이 두 기구는 유럽연합을 대표하는 핵심 기구에 속한다.


          1) 유럽정상회담
          
     실례 1에서 약술했듯이 회원국 수반들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다. 일년에 보통 2회정도 모여 국제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장관들이 해결하지 못한 난제를 협상한다. 유럽정상회담 혹은 유럽이사회라고도 불린다. 또 특별한 문제가 있을 때 부정기적으로 임시 회담을 갖는다.
    집행위원회 위원장과 보통 집행위원회에서 대외통상을 담당하는 위원도 참여한다. 또 각 회원국 외무장관들도 이 모임에 참가한다. 통역관과 순회의장국의 공무원 등 아주 제한된 사람들만이 이 모임에 참가할 수 있다.
     25개 회원국들이 6개월마다 돌아가면서 유럽정상회담과 각료이사회의
순회의장을 맡고 있다 (rotating presidency). 정기모임은 보통 6월과 12월에 있다.
     순회의장직을 맡은 외무부 고위 관리들이 각료이사회 사무국 (Secretariat of the Council of Ministers), 집행위원회 관계자 들과 협의, 정상들이 토론할 의제를 사전에 조정한다. 또 외무장관이나 재무장관 등 의제에 적합한 회원국 각료들이 모여 정상들이 토론할 의제에 대해 어느정도 사전 조정을 한다. 물론 지난해 12월 예산과 같이 회원국간 견해차가 큰 사안의 경우 사전 모임이 더욱 빈번하다.
     보통 정상회담 전날 저녁 만찬 모임을 갖고 비공식 논의를 한다. 이어 다음날 참가자 전원이 참가하는 총회가 있다. 점심을 들며 비공식으로 논의를 하며 난제 등을 해결하려고 한다. 이런 모임이 수차례 계속된다. ‘토니,’ ‘자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참가자끼리 보통 성이 아닌 이름을 부른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서로간의 친목을 도모하자는 의도에서 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보통 의장국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지는 ‘참회의 시간’ (confessionals)이다. 수반들이라고 해도 회원국끼리 워낙 입장차이가 크고 또 국내의 언론보도를 의식, 강경한 입장을 표명해야 될 때가 많다. 이럴 때 순회의장직을 맡은 총리나 대통령, 외무장관이 회원국 수뇌들과 관계자들을 조용히 불러 이실직고를 하도록 한다. 즉 어느정도까지 협상이 가능한지 속내를 사전탐색, 첨예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는 회원국끼리 어느 정도 입장을 조율할 수 있도록 중재자 역할을 한다.
     가입을 신청한 후보국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와 집행위원회 위원장임명, 경제화폐동맹의 출범 등 유럽연합의 운영에 아주 중요한 결정들이 유럽정상회담에서 이루어진다. 또 이라크 침략전쟁에 대한 유럽연합의 입장 – 물론 미국의 정책을 지지한 영국과 신규 회원국인 중.동부 유럽국가와 반미 선봉에 선 프랑스와 독일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 이나 이란의 핵문제에 대한 입장표명 등도 정상회담 혹은 각료이사회에서 이루어진다. 이밖에 중.장기적으로 유럽연합의 나아길 방향과 진로에 대한 입장도 표명한다. 순회의장국은 6개월동안 국제무대에서 유럽연합을 대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유럽정상회담은 1957년 경제공동체를 설립하는 로마조약에 규정돼 있지 않았다. 수시로 중요한 문제가 있을 때 회원국 정상들이 만나 비공식적으로 논의해왔다. 1969년 12월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영국과 덴마크, 아일랜드, 노르웨이 등 회원가입신청을 한 나라들과 가입협상을 개시하기로 합의했다. 또 1980년까지 경제화폐동맹을 완성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1974년 파리회담에서 정기적으로 수뇌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1986년 단일유럽의정서는 정상회담이 1년에 3회 열린다고만 규정했다. 그러나 1992년 유럽연합조약은 정상회담을 유럽연합의 정식기구로 규정했고 유럽연합의 비전과 정책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못밖았다.
     문제는 정상회담이 너무 스폿트라이트를 받고 있다보니 다른 기구들은 별로 각광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유럽의회 의장도 초대를 받아 보통 회담 첫날에 연설을 하지만 회담에는 참석하지 못한다. 따라서 유럽의회가 중요한 정책결정에 방관자 역할을 한다. 물론 순회의장국은 정상회담은 결과를 유럽의회에 서면보고해야 한다.

          2) 각료이사회
     각료이사회는 회원국 장관들이 모여 중요 정책결정을 논의하고 결정을 내린다. 1952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 (ECSC), 1957년 경제공동체 조약에도 중요한 정책결정기구로 명문화되었다. 위에 소개한 유럽정상회담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1963년 농산물 일부품목에 대한 지원을 시작으로 공동농업정책이 시작되면서 회원국 농업장관들이 모였다. 또 중요한 국제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외무장관 들의 모임이 빈번했다.
     각료이사회 업무를 보좌하는 기구로 사무국 (General Secretariat)이 있다. 약 2천5백명 정도가 근무하고 있으며 유럽연합 공무원이다. 차후 소개할 집행위원회와 비슷하게 소관 업무별로 부처가 구분돼 있다. 대외통상을 담당하는 부처, 법률서비스, 단일시장을 맡고 있는 부처 등. 또 하나는 회원국이 브뤼셀에 파견하는 외교공관이다. 유럽연합이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상주대표부 (permanent representative)라고 불린다. 상주대표부들의 위원회 (Committee of Permanent Representatives: 프랑스어 두문자를 따 Coreper라고 불린다) 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안건을 논의한다. 사무국과 상주대표부 위원회가 수시로 의견을 교환, 각료이사회 안건을 논의하고 초안을 작성하는 등의 업무를 처리한다.
     외무장관들의 모임은 일반업무각료이사회 (General Affairs Council) 라고 불린다. 주요 국제문제뿐만 아니라 유럽연합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가 논의되기 때문이다. 경제.재무장관 각료이사회 (Economics and Financial Affairs Council: Ecofin)는 경제문제가 주요 의제로 부상함에 따라 점차 두각을 드러냈다. 또 단일화폐 유로의 출범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밖에 노동과 사회정책, 환경. 교통, 소비자 문제 등 사안마다 회원국 정부의 장관들이 모여 정책결정을 논의한다. 1989년부터 1995년까지 영국의 외무장관이던 더글라스 허드 (Douglas Hurd)는 국내에서 동료 장관들보다 회원국 외무장관들을 더 자주 만난다고 말한바 있다. 회원국 외무장관들은 최소한 한달에 한 번 정도 공식.비공식으로 만난다. 직접 만나지 않더라고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주요 문제를 수시로 협의한다. 그만큼 유럽통합이 진전되면서 외교문제에서도 회원국간의 정보교류와 사전조율 등이 강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통 집행위원회가 정책이나 법안 제안을 하면 상주대표부가 검토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사안에 따라 유럽의회의 의견을 듣거나 의회의 표결을 필요로 한다. 어느 정도 사전조율을 한 후 각료이사회에 넘기면 각료이사회가 정책결정을 한다. 표결방식은 만장일치나 가중다수결 (회원국의 인구수에 따라 투표수가 다르다. 현재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는 동일한 표를 보유), 단순 다수결 (1국 1표)이 있다. 유럽통합이 발전함에 따라 점차 많은 정책결정이 다수결로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외교와 국방, 조세, 사회복지 등 민감한 문제는 아직도 만장일치를 필요로 한다.
     각료이사회는 아직까지 비밀에 휩싸인 기구이다. 시민들에게 친근한 유럽을 만들기 위해 정책결정과정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각료이사회는 이런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물론 각료이사회 개회식 모습 정도는 텔레비전에 공개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안건 토론의 공개는 아직도 요원하다. 그리고 설령 공개된다 하더라도 모든 정책결정의 과정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중요한 결정은 복도에서 혹은 비공식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에서 많이 이루어진다.
     각료이사회에서 합의가 되지 않은 안건은 정상회담으로 넘겨진다. 예산안은 원래 경제.재무장관 각료이사회에서 타결이 돼야 한다. 그러나 장관들이 합의를 할 수 없어 수뇌모임으로 결정을 넘겼다. 회원국 수반들이 돈을 얼마내고 얼마 받을 것인가를 두고 수십시간이 넘는 실랑이를 벌이곤한다.
     신랄한 논쟁을 벌이면서도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유럽연합이라는 기구를 이끌어 나간다.
     다음호에 소개하는 집행위원회도 유럽연합을 이끄는 기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안병억 케임브리지대학교 국제정치학과 박사과정 (anpy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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