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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을 통해 본 유럽통합 (29)
   유럽연합집행위원회 (the Commission of the EU)

       지난 호에서는 유럽연합 주요 기구인 유럽정상회담과 각료이사회를 분석했다. 조직과 임무, 통합사에서의 역할 등을 설명했다.
       이번에는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를 분석한다. 조직과 임무는 무엇이고 통합과정에서 무슨 역할을 수행해 왔는가?
     우선 집행위원회의 일을 실례를 들어본다.

      실례 1) 지난해 12월 5일 주제 마누엘 바로수 (José Manuel Barroso)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매우 직설적으로 영국을 비난했다. 유럽정상회담과 각료이사회 후반기 순회의장국이던 영국은 2007-2013 재정전망 (financial perspective: 이 기간동안 유럽연합 예산의 규모와 용도를 한 눈에 보여주는 중기예산이다)을 제시했다. 그런데 제시한 액수가 집행위원회가 처음 제시했던 안과 비교, 최소한 몇 천억원이 삭감됐다. 영국안대로 예산안이 채택될 경우 2004년 5월 유럽연합의 신규 회원국이 된 중.동부 유럽 – 폴란드,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발트 3국, 키프로스, 몰타 – 에 대한 지원은 매우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기존 회원국보다 아주 가난한 신규 회원국은 유럽연합 가입으로 많은 지원을 기대했다. 폴란드 및신규 회원국들은 영국의 제안에 대해 매우 화가 났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 다른 회원국들도 영국이 제시한 예산안이 너무 규모가 적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바로수 위원장은 “영국이 노팅햄의 군수처럼 가난한 사람의 돈을 빼앗아 부자에게 주기를 기대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내뱉었다. 영국의 홍길동 로빈훗이 물리친 사람이 가렴주구를 일삼던 노팅햄의 군수이었다. 따라서 영국의 유명한 이야기를 인용하며 영국의 예산안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바로수 위원장의 이 말은 많은 회원국의 지지를 받았다. 회원국과 집행위원회의 비판에 직면한 영국정부는 액수를 약간 상향조정한 예산안을 다시 제출했다.

     실례 2) 자크 들로르 (Jacques Delors)는 1980년 초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역임했다. 이어 1985년부터 1995년까지 10년간 집행위원회 위원장을 연임하며 유럽통합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985년 상반기 단일시장을 이루기 위한 백서 (White Paper)를 유럽정상회담에 제출, 승인받았다. 이전에도 단일시장을 이루자는 제안과 보고서는 많았다. 그러나 이번 백서는 1992년 12월31일까지 단일시장을 이루기위해 필요한 법안과 규정, 지침의 개정 등 필요한 조치와 이행 시간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또 1984년, 5년간 유럽공동체를 마비시켰던 영국예산문제가 해결된 후, 단일시장을 이루자는 분위기가 공동체에 퍼지고 있었다. 이런 낙관적인 분위기를 적절하게 이용,  백서를 제출하고 단일유럽의정서 합의에 큰 역할을 해냈다. 이어 1987년 1988-1992년까지 5년동안의 중기예산안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실례1에서 든 중기예산안 편성과 확정도 자크 들로르 위원장이 1987년 처음 제시, 확립된 공동체 운영방식이다.  1987년 제안된 최초의 중기예산안은 여러가지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우선, 5년간 예산을 많이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7년 유럽공동체 예산은 회원국 전체 부가세 기준으로 1.4%에 불과했다. 1992년말 예산은 부가세 기준으로 1.9%이다. 유럽통합사에서 예산이 이 정도로 늘어난 적은 아직까지 없다. 예산증가를 요구하며 당시 가장 많은 예산을 쓰고 있던 공동농업정책의 지원을 줄이는 동시에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빈국에 지원하는 구조기금을 두배로 늘리자고 제안했다. 이런 요구를 일괄제안 (package deal: 하나라도 해결이 되지 않으면 다른 모든 것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으로 제시, 거의 모든 요구사항을 관철시켰다. 그 어느 누구도 들로르 위원장에게 중기예산안을 편성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전을 지니고 있던 들로르 위원장은 이를 제안, 확립시켰다.  

     위의 실례에서 알 수 있듯이 집행위원회는 유럽연합통합사에서  위원장의 역량에 따라 중요한 역할을 하곤 했다.

          1) 집행위원의 임명과 구성
     우선 집행위원회 위원장과 위원 임명은 회원국이 후보를 내세운다. 위원장의 경우 회원국들이 사전에 의견조정을 해 적합한 인물을 추천한다. 다음 호에 소개할 유럽의회가 이 과정에서 위원장과 위원 후보들의 의견을 듣고 가부를 결정한다.  만약에 의회가 위원장이나 위원의 임명을 거부하면 이들은 임명되지 못한다. 2004년 11월 당시 위원장으로 추천된 주제 마누엘 바로수는 법률담당 집행위원이 문제점이 있었다. 이태리 보수파 의원으로 동성애 등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의견을 지니고 있었다. 유럽의회는 이 사람의 임명을 거부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바로수 위원장 대리는 할 수 없이 이 사람의 집행위원 임명을 철회하고 다시 집행위원회 위원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배정했다. 물론 이태리 정부와 협의를 거쳤다.  
     현재 회원국 수대로 25명의 집행위원이 있다. 사실상 위인설관격으로 집행위원이 너무 많아 돈도 많이 들어가고 업무배정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집행위원의 수를 줄이자는 논의가 많이 있었으나 회원국들이 합의를 하지 못했다. 각 나라마다 자국 출신의 집행위원을 임명하려 한다. 물론 집행위원회와 위원들은 자국의 이익이 아닌 유럽연합의 공동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각 집행위원이 국가로 치면 ---부 하듯이 업무를 나누어 맡고 있다. 집행위원회는 부를 총국 (Directorates-General)이라고 부른다. 대외통상담당, 경제.사회문제 담당, 산업담당, 경쟁담당, 농업담당, 교육과 훈련 청소년 담당, 소비자 담당 등 모두 20개가 넘는 총국이 있다. 각 집행위원은 보통 6-7명으로 이루어진 캐비넷 (cabinet)을 거느리고 있다. 이 캐비넷은 업무를 보조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캐비넷 실장들은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정도 정기적으로 만나 각 총국의 업무를 논의하고 결정한다. 보통 각 집행위원 캐비넷 실장들이 사전에 합의한 안은 집행위원들이 별도로 토론하지 않고 통과시킨다. 집행위원의 업무를 덜어주려는 의도이다. 물론 캐비넷 실장과 이곳에서 근무하는 인력들은 주로 낙하산 인사가 많다. 아무래도 집행위원들이 자신을 잘 보좌할 수 있는 인물을 고르다 보니 낙하산 인사가 될 수밖에 없다.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집행위원회를 대표한다. 따라서 각 회원국에서 중량급 인사가 임명된다. 현재 바로수 위원장은 포르투갈의 총리를 역임했다. 바로 이전의 로마노 프로디 위원장도 이태리의 총리출신이다. 위원장은 각 집행위원의 업무를 총괄조정하며 각료이사회와 유럽의회 등 다른 유럽연합 기구와 접촉에서도 집행위원회를 대표한다. 또 사무국 (Secretariat General)과 법률 서비스 등 집행위원회 살림을 꾸려나가는 핵심 부서도 관장한다.
     비전을 지니고 치밀한 전략.전술을 구사하는 집행위원장의 경우 유럽통합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자크 들로르 위원장이나 초대 집행위원회 위원장을 지닌 독일인 발터 할슈타인 (Walter Hallstein)도 유럽통합사에 족적을 남겼다.

           2) 집행위원회 직원
     집행위원회 직원은 보통 유럽관리 (Eurocrat: European bureaucrat의 합성어)라고 불리다. 대다수가 엄격한 공채를 통해 회원국 시민들이 이 곳에서 근무한다. 현재 약 2만명 정도가 브뤼셀의 집행위원회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 가운데 10%가 넘는 인력이 통.번역 업무에 종사한다. 유럽연합 모든 책과 공식회의는 20개 회원국 언어 – 25개 회원국이지만 몇 개 나라의 경우 한 언어를 사용한다. 예컨대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독일어를 구사한다. 따라서 모두 20개 언어이다 – 로 통.번역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직원들끼리 업무언어 (working language)는 주로 영어와 불어, 독일어이다.

    3) 집행위원회의 책임과 권한  
     집행위원회 업무는 아래와 같이 크게 6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가 주요 정책과 법안을 입안하는 권한이다. 실례 2에서 든 것처럼 중기예산안도 예산관련 주요 정책을 입안한 예이다. 통상과 농업정책 등 공동정책은 집행위원회가 배타적인 입안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공동외교안보정책과 내무.법부 분야의 협력은 회원국과 함께 정책과 법안을 제안한다. 아무래도 국가주권에 속하는 민감한 분야이다 보니 회원국들이 집행위원회에게 배타적인 입안권을 주지 않았다.
     두번째가 행정부 기능으로 유럽연합 정책을 관리, 감독, 집행한다. 아무래도 조약이 모든 사항을 다룰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집행위원회가 조약을 이행하기 위해 지침 (directives), 규정 (regulations), 결정 (decisions)등을 제정한다. 보통 일년에 4천개 정도의 이런 입법조치가 제정된다. 또 1천억 유로, 우리 돈으로 1백25조원이 넘는 유럽연합의 연간 예산을 관리한다. 유럽연합 예산 집행이 대부분 회원국으로 넘어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회원국 정부와 관련 부처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보통 유럽연합 예산의 10%가 사기라고 한다. 영국 언론은 주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해 이런 사기가 발생한다고 지적하곤한다. 그러나 문제는 집행위원회 인력이 겨우 2만명에 불과, 웬만한 회원국의 공무원 수보다 훨씬 적다. 이런 인력이 어떻게 25개 회원국 업무를 관리.감독하겠는가? 이 때문에 회원국 정부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막상 회원국 정부는 유럽연합 예산관리를 자국 예산처럼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는다. 만약에 유럽연합 예산을 횡령한 것이 발각되면 당장 다음해 예산이 삭감된다. 이럴경우 자국 예산에서 이를 보충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회원국들은 대개 유럽연합 예산관리를 소홀히 한다. 유럽연합의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와 집행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셋째, 유럽연합 조약이나 지침 등의 수호자역할이다. 만약에 회원국이 유럽연합 조약이나 규정, 지침 등을 위반한다고 생각되면 관련 회원국에 서면으로 답변을 요구한다. 이 단계에서 문제해결이 되지 않으면 유럽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다. 보통 많은 경우 집행위원회의 문제제기에 회원국이 반응하고 이 단계에서 문제가 해결된다.
     넷째, 대외적으로 유럽연합을 대표하고 협상한다. 이전 호에서 소개했듯이 공동무역정책의 채택으로 유럽연합의 통상담당 집행위원이 세계무역기구 (WTO)의 협상에 회원국을 대표, 협상한다. 물론 회원국과 긴밀한 접촉을 통해 각료이사회의 지침을 받고 이 범위안에서 협상한다.
     다섯째, 중재자이자 조정자 역할이다. 각료이사회에서 법안을 두고 각 회원국이 첨예한 대립을 벌일 때 집행위원회는 합의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보통 그 업무를 가장 잘 알고 있고 회원국의 입장도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어 이런 역할이 가능하다.
     여섯째, 유럽연합의 양심이다. 즉 회원국이나 개별 기구의 이익이 아닌 유럽연합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고 활동한다는 점이다.
     다음에는 유럽의회 (European Parliament)를 분석한다.
  안병억 케임브리지대학교 국제정치학과 박사과정 (anpy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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