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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을 통해 본 유럽통합 (34)
   경제사회위원회와 지역위원회 그리고 로비  

       지난 호에서는 유럽연합 주요 기구인 감사원을 분석했다. 유럽연합의 예산이 늘어나면서 감사원의 업무는 더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돈의 값어치만큼 (value for money) 제대로 업무를 수행했는가하는 점도 중요한 감사사항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번에는 자문기구인 경제사회위원회 (Economic and Social Committee: ESC),  지역위원회 (Committee of the Regions) 그리고 유럽연합내 로비를 분석한다.
       우선 로비의 실례를 들고 두 기구의 역할을 점검한다.

       실례 ) 지난 2월 16일 유럽의회가 있는 프랑스 국경도시 스트라스부르에는 약 3만명의 노동자들이 운집했다. 주로 독일과 프랑스 등 기존 회원국으로부터 온 노동자들은 ‘직업안정’ ‘사회적 덤핑은 안돼’라고 적힌 대형 플래카드를 휘두르며 의사당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당시 유럽의회는 서비스 시장 자유화를 골자로 하는 서비스 지침 (Service Directive)을 토론중이었다. 원래 회원국 장관들의 모임인 각료이사회는 유럽연합이 단일시장이고 또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각 종 서비스를 자유화하자는데 합의했다. 획기적인 점은 출신국 규정 (country of origin)이었다. 즉 한 나라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허가를 받았으면 다른 회원국에서도 별도의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었다. 예를 들면 폴란드의 목수나 미장이,  미용사들이 폴란드 면허를 가지고 독일이나 프랑스 등에서 마음대로 일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관련 노동조합은 이 일에 직면해서 야단났다.  가뜩이나 경기가 좋지 않아 실업이  심각한데 만약에 이웃 나라의 값싼 노동력이 들어와 일자리를 뺏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사회적 덤핑 (social dumping)을 우려했다.
       각료이사회 논의과정에서도 각 국 노동조합과 브뤼셀에 있는 노동조합연맹 등도 로비를 벌여 이를 희석시키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25개 회원국 장관들의 모임인 각료이사회는 이를 가중다수결로 통과시켰다. 공은 유럽의회로 넘어갔다. 유럽의회는 이 지침을 두고 각료이사회에 수정을 요구할 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기 때문에 각 국의 노동자들이 유럽의회 의사당에 운집하게 된 것이다. 결국 유럽의회는 논란이 된 출신국 규정을 빼고 의료서비스 분야 등을 제외한 수정안을 각료이사회에 보냈다. 물론 폴란드나 체코 등 중.동부 유럽의 신규회원국들은 출신국 규정을 뺄 경우 서비스 시장의 자유화가 말뿐이라며 반발했다. 그러나 서비스 지침의 통과가 거부보다도 그래도 나은 편이라고 판단, 결국 서비스 지침은 원래보다 많이 희석된 채 각료이사회로 보내졌다.
       실례에서 볼 수 있듯이 유럽연합 주요 기구가 있는 브뤼셀은 로비스트들의 천국이라고 불린다. 우선 경제사회위원회와 지역위원회의 업무를 분석한 후 로비를 해부한다.

1)        경제사회위원회
1958년 유럽경제공동체 (European Economic Community: EEC)를 설립하는
로마조약이 발효되었다. 협상과정에서 네덜란드와 벨기에 정부는 경제사회위원회 규정을 조약에 넣자고 요구했다. 당시 두 나라는 사회적 파트너로 고용주와 노동자를 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 참여시키고 있었다. 이른바 조합주의 (corporatism)이다. 정부의 각 종 정책에 대해 사회적 파트너의 의견을 듣고 이를 정책에 반영한다. 1998년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이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어 노사합의를 정책에 반영하려는 점과 비슷하다.
       두 나라의 요구는 반영돼 로마조약은 경제사회위원회 조항을 두었다. 노동자와 고용주, 농민, 소비자 등 각 단체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함을 목표로 했다. 각 회원국이 인구수에 비례, 위원회에서 일할 사람들을 추천하며 각료이사회가 이들의 임명을 승인한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 이태리가 각각 24명씩, 폴란드와 스페인이 21명, 가장 인구수가 적은 몰타가 5명을 보낸다. 내년에 회원국이 될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를 포함, 27개 회원국에서 온 모두 3백44명이 일한다.
       설립된지 거의 48년이 지났지만 이 기구의 역할은 유명무실하다. 우선 너무 다양한 단체가 집결하다 보니 내부에서 의견을 통일하기가 어렵다. 집행위원회는 1999년 담배농가에 대한 보조금 삭감건에 대해 경제사회이사회의 의견을 구했다. 당연히 농민단체는 보조금 삭감에 반대했다. 그러나 같은 경제사회위원회내 소비자 단체는 보조금 삭감을 주장,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다.
       또 집행위원회가 정책에 대한 의견을 묻지만 이를 반영할 의무는 없다. 그러니까 경제사회위원회는 그동안 거의 잊혀진 기구가 되버렸다. 원래 좋은 의도로 출발했으나 자문기구라는 성격, 그리고 그 구성원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고용주나 노동자, 농민단체별로 로비가 조직화되어 있어 이를 통해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따라서 경제사회위원회의 역할을 점점 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2)        지역위원회 (Committee of the Regions: CoR)
1986년 2월 단일유럽의정서가 서명되었다. 1992년 12월31일까지 당시
유럽공동체 회원국간에 국경없는 단일시장을  이룩하기 위해 각 종 비관세장벽을 철폐함을 목표로 했다. 또 환경과 교육, 문화 등의 분야에서도 유럽공동체가 정책을 제안할 수 있었다. 독일이나 벨기에 같이 연방제가 잘 발달된 나라의 경우 교육이나 문화, 환경  등은 지방정부의 고유권한이다. 그런데 지방정부가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한 채 유럽공동체에 권한의 일부를 빼앗겨 버린 셈이다. 당연히 독일 주정부는 강력히 반발했다. 국내 비준과정에서 주정부는 유럽공동체가 자신들의 고유권한을 빼앗아가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연방정부로부터 많은 것을 요구, 관철시켰다. 이전까지 연방정부는 유럽공동체 정책과 관련, 주정부와 비공식적인 협의를 주로 해왔다. 그러나 비준과정에서 유럽공동체 정책이 주정부의 권한과 관련될 경우 이를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는 조항을 얻어냈다.
       이어 1992년 2월 유럽연합조약이 서명되었다. 이 조약체결을 위한 협상과정에서 독일 주정부 대표들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벨기에 등 연방국가의 주들과 협력, 주나 지방정부의 권한을 공동체 차원에서 보장받으려 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조약은 통합과정에서 지역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또 보조성의 원칙에 따라 정책은 시민에게 가까운 차원 (즉 지방정부 등의 자치단체)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 유럽연합조약의 규정에 따라1994년 지역위원회가 업무를 시작했다. 경제사회위원회와 같은 임명절차를 따르고 있으며 동수의 위원이 일하고 있다. 경제사회위원회가 유명무실한 조직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
       교육, 훈련, 환경, 고용 등 분과위원회별로 정책보고서를 발간하며 의견을 개진한다. 경제사회위원회보다 더 활발하게 활동한다. 또 집행위원회의 경우도 지역위원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집행위원회가 지원하는 예산의 상당수는 지방정부 등의 자치단체에서 집행이 된다.  따라서 예산관리를 제대로 하려면 지방정부의 협조가 매우 필요하다.
       그러나 지역위원회 설립에 산파역을 했던 독일 등의 몇 나라가 이 위원회에 관심을 별로 두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조약에 따라 각료이사회 안건이 주정부의 권한일 경우 주정부 대표가 각료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때문에 구태여 지역위원회를 통할 필요도 없이 주정부 대표가 유럽연합 핵심기구인 각료이사회 정책결정과정에 참여,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을 제시할 수 있다. 또 각 주정부나 이하 지방정부 등도 브뤼셀에 사무실을 내고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사안에 따라 각 주정부나 지방정부의 입장이 다른 경우가 많아 개별적인 로비를 하는 경우도 많다.
       어쨌든 지역위원회는 경제사회위원회를 반면교사로 삼아 잊혀져가는 기구가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3) 로비
       유럽연합의 정책결정과정은 상당히 개방되어 있다. 각 종 정책과 법안을 입안하는 집행위원회는 여러 단체로부터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 집행위원회 전체인력이 2만명이 채 안되고 이 가운데 10%가 넘는 사람들이 통.번역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이런 인력이 25개국 4억5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의 행정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집행위원회는 어떤 정책을 제안할 때 관련 단체나 전문가의 의견을 많이 듣는다. 집행위원회는 이를 ‘공개적이고 구조화된 대화’ (an open and structured dialogue)라고 표현한다.
       1988년 당시 자크 들로르 집행위원원장은 경제관련 법안의 70%가 유럽공동체에서 지정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단일화폐를 도입하고 단일시장을 완성해가는 현재 유럽연합이 각 회원국에 미치는 영향을 대단하다. 즉 최소한 회원국의 경제와 사회정책 등에 관련되는 법안의 2/3가 유럽연합에서 만들어 진다. 또 이전호에서 소개했듯이 유럽연합의 조약이나 규정, 지침 등은 회원국에 직접 적용된다. 이렇다보니 고용주나 노동자 단체, 대기업 등은 유럽연합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공개적인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다.
       브뤼셀에 로비단체가 얼마나 있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그러나 이를 연구한 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2001년말을 기준으로 약 2천3백여개의 로비단체가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인력은 약 1만명에서 3만명 정도이다. 이 업체 가운데 2/3정도는 화학품 제조업체 혹은 다국적 기업 등 기업에서 파견된 인력이다. 그만큼 유럽연합의 제정하는 조약이나 법 등이 기업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곳에 많은 인력을 보내 사전에 정보를 수집하고 적절한 시기에 당사자들을 만나 입장을 개진한다. 이어 환경단체나 소비자단체, 여권신장 운동을 벌이는 단체, 회원국 주정부나 이하 지방정부에서 파견한 사람들, 컨설팅 회사나 법률사무소 등에서 파견된 인력등이 로비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이전 호의 기구편에서 설명했듯이 유럽연합 주요 기구간에 권한이 분산되어 있다. 즉 법안의 통과는 각료이사회와 유럽의회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물론 법안을 제안하는 집행위원회 단계로부터 로비스트들은 활동한다. 따라서 로비스트들은 집행위원회의 담당 총국, 각료이사회 사무국이나 주요 회원국 관계자, 유럽의회내 소위원회와 담당 위원들을 수시로 만나 정보를 수집하고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통계에 따르면 유럽의회는 1년간 평균 3400개의 외부인 출입증을 교부하고 있다. 의원들의 휴가를 빼고 일년에 약 2백50일간 의원들이 근무를 한다면 하루에 약 13명 정도가 유럽의회를 출입한다. 물론 이들이 모두 로비스트일수는 없으나 상당수는 그럴 수 있다고 추정된다. 유럽의회 의원의 경우 보좌관의 수가 한정되어 있어 전문성을 지닌 로비스트들로부터 정확한 정보를 입수할 필요도 종종 발생한다. 어떤  경우에는 로비스트가 유럽의회에서 발간한 보고서를 대부분 작성했다는 루머도 나돌기도 했다.
       다음 호에서는 유럽연합의 다른 기구와 각 종 에이전시 (agency)의 기능과 업무를  분석한다.
  안병억 케임브리지대학교 국제정치학과 박사과정 (anpy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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